“도발 중단하면 대화 재개”
核동결 조건서 갑자기 낮춰

北核 無경험… 조급한 발언
“대화로 기조 변화 신중해야”

대북 정책의 무게 중심을 제재와 압박보다 대화와 관여 쪽에 두는 듯한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 핵심 관계자들의 발언이 쏟아지면서 주요 정책들이 혼선을 보일 징후가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제재와 대화의 병행을 공약했다 하더라도 북한이 잇단 미사일 발사 등 도발 태도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대화의 운’을 띄우는 발언들은 시점상 적절치 않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북핵 외교 경험이 없는 비둘기파’로 특징지어지는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 라인의 주요 수뇌부는 임명 후 유화 발언을 통해 대북정책 기조 변화를 시사하고 있다.

통상외교전문가 출신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22일 국회를 찾아 “연락통신망, 판문점에서의 핫라인은 빨리 재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자 출신인 김기정 국가안보실 2차장은 핵 동결을 북한과의 대화 조건으로 주장해오다가 24일에는 ‘도발 중단’을 대화 조건으로 언급하면서 오히려 문턱을 낮췄다.

남북 군사회담 전문가인 이상철 1차장은 북핵 외교를 직접 진두지휘한 경험은 없으며 한·미동맹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미군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주장을 펴왔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까지 잇단 언론 인터뷰에서 “5·24 조치는 현실적으로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핵·미사일을 동결하면 한·미군사훈련 잠정중단 검토가 가능하다”는 발언을 쏟아내면서 섣부른 유화 조치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도 유엔을 무대로 활동해 북핵을 다뤄본 경험이 없고 북한 인도주의 지원문제에는 오랜 지지 입장을 밝혀 왔다. 남북관계 주무부처인 통일부는 이러한 대화 기조하에서 대북 인도주의 지원과 민간 교류 재개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25일 오전 9시 기준 접수된 민간단체의 대북접촉 신청은 모두 19건으로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북한의 태도변화가 없는 상태에서 대화 국면으로의 전환 의지를 먼저 내비치는 것이 국제사회의 대오를 흐트러트릴 뿐 아니라 북한에도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초반 대북 제재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확인한 뒤 시차를 두고 인도주의 지원이나 대화 모색을 추진했다면 국내적으로나 주변 4강에 안정적으로 대북정책을 추진해가는 인상을 주면서 대화 병행 노선도 탄력을 받았을 것이라는 의미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정부가 대화라는 대원칙을 밝힌 것은 좋지만, 목표를 이루기 위해 조급해한다는 인상을 주면 북한이 개성공단 조기 재개 등 반대급부를 제시하면서 악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북한과의 협상 국면으로 들어가더라도 국제사회의 단일화된 움직임을 흐트러트릴 수 있는 대화 움직임이 우리에게 유리한 협상 국면을 형성하는 데 장애로 작용할 수 있다. 이춘근 이화여대 겸임교수 겸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연구위원은 “북한에 대한 지원과 교류 등의 발언은 북한이 더 피로감을 느낄 때까지 기다렸다가 꺼냈어야 했다”며 “그래야 남북관계 지렛대로서의 효과성이 극대화될 수 있었다는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인지현 기자 loveofal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