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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5일 개막하는 창극단 ‘흥보씨’ 주역들이 말한다

쿠바 밴드의 음반을 사기 위해 서울 시내 레코드 가게를 모조리 뒤지고, 울적해질 땐 신나는 클럽 음악으로 에너지를 충전한다. 누굴까. 놀랍게도 이들은 국립극장(극장장 안호상) 산하 국립창극단(예술감독 김성녀)의 20∼30대 단원들. 창단 55년의 창극단이 오는 4월 5일 개막하는 신작 ‘흥보씨’를 통해 세대교체의 서막을 연다. ‘국악계 아이돌’로 불리는 창극단의 ‘젊은 피’들이 흥보, 놀보, 제비 등 주역을 모조리 꿰찬 것. ‘변강쇠 점 찍고 옹녀’로 프랑스에서도 공연해 극찬받은 고선웅(극본·연출)이 판소리 ‘흥보가’를 각색해 창극으로 선보인다. 소리꾼·인디밴드 보컬로 활동하는 이자람이 작창·작곡을 맡아 더욱 주목된다. 안호상 국립극장장은 “창극단 신구 조화가 완벽한 상태”라며 아직 연습 중인 흥보씨에 대한 만족감과 기대감을 드러냈다. 300년 판소리와 창극 100년의 역사를 짊어질 젊은 소리꾼들을 만났다. 이들이 ‘소리’하며 사는 이유는 뭘까.

◇ 김준수 = 가수 김준수와 동명이인으로, 국악계 대표 아이돌로 꼽힌다. 팬클럽까지 보유한 인기스타. 무작정 소리가 좋아 시작했고, 지금은 소리의 매력을 더 알려야겠다는 사명감도 장착했다. 그에게 창극은 ‘발견’. “여러 캐릭터를 연기하며, 저조차 몰랐던 모습을 보죠.” 지난해 ‘트로이의 여인들’에서 여자도 남자도 아닌 신비로운 헬레네로 분했다. 파격적인 여장(女裝)에 팬은 더 늘었다는 후문.

그의 흥보는 어떨까. 김준수는 “가난하지만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하는 사람”이라는 교과서 같은 답변을 했다. 하지만 “스스로 더 이롭게 했던 한 인간”이라는 고선웅 연출의 작의를 들여다보면, 그저 착하기만 한 흥보는 아닐 듯하다. 첫 완창은 ‘수궁가’로 하고 싶다. 이 소리로 이수(전남 무형문화재 29-4호)를 받아서다. 김범수 노래 등 진한 감성의 발라드곡을 자주 부르고 듣는다.

김준수가 귀띔한 ‘흥보씨’ 관람 포인트는 부채다. 그는 “모든 등장 인물이 각자 캐릭터의 특성을 살려 디자인된 부채를 들고 연기한다”며 “판소리 창자(唱者)가 늘 오른손에 들고 있는 합죽선을 그대로 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 유태평양 = 독특한 이름, 낯익다. 여섯 살 때 판소리 ‘흥보가’를 최연소로 완창해 유명해진 바로 그 ‘국악 신동’이다. 지난해 입단한 이 창극단 막내는 소리가 마냥 좋다. 유태평양은 “추임새 등 관객과 호흡할 수 있는 소리의 특색이 매력적이다”며 “창극은 소리의 연장선이고, 소리를 극대화할 수 있는 장르”라고 말했다.

올해 초 마당놀이 ‘놀보가 온다’에선 흥보로 분했던 그가 이번엔 제비다. 그런데, 흥보에게 박씨를 물어다 주는 새가 아니다. 원작에 없는 새로운 캐릭터. 한양을 주름잡던 춤꾼이자 유부녀를 꼬시고 다니는 일명 ‘강남 제비’다. 10대 시절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유학하며 타악기를 배워온 그가 평소 자주 듣는 건 재즈. 데이브 브루벡(1920∼2012)의 ‘테이크 파이브’를 제일 좋아한다고. 언젠가 ‘춘향가’를 완창해 보고 싶다. “한국인에게 가장 잘 알려진 판소리잖아요. ‘심청가’도 재도전하려고요. 한 번 해봤는데 영 마음에 차지 않아서요.”

◇ 최호성 =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의 음반을 구하기 위해 서울 시내를 다 휘젓고, 쿠바 음악을 즐겨 듣는 소리꾼. 지난해 프랑스에서도 극찬받은 ‘변강쇠 점 찍고 옹녀’의 변강쇠 최호성이다. 선 굵은 연기로 최근 창극단이 다양한 도전을 하는 데 힘이 되고 있는 그는 “소리는 내 인생의 ‘당연한 무엇’이다. 그게 밥이라면, 창극은 라면이다”고 했다.

소리는 주식, 창극은 별미라는 뜻이니 그의 인생이 이 한 문장에 다 들어 있는 셈. 이번엔 놀보를 맡았다.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는 2% 모자란 사람이라 미워할 수만은 없죠.” 완창하고 싶은 판소리는 ‘심청가’. 애틋한 면이 좋다고.

◇ 이광복 = 다섯 살 때 ‘가요무대’를 보고, ‘울고 넘는 박달재’ 음반을 사달라고 부모님을 졸랐던 이광복은 지금도 여전히 옛날 가요가 좋다. 2013년 정단원 입단 전까지 객원, 인턴으로 활동하며 작은 배역부터 주인공까지 두루 섭렵했다. ‘흥보씨’의 젊은 소리꾼 중에서는 가장 큰형이다. 안정된 연기와 소리 공력을 인정받고 있는 그에게 창극은 놀이터. 그는 “내가 ‘잘’ 놀 때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다”고 했다. 소리를 시작하며 처음 배운 작품이 ‘흥보가’이고, 언젠가 완창의 꿈도 ‘흥보가’로 실현하고 싶다.

그러니 이번 무대도 남다를 수밖에. 늘 진중한 인물로 그려지던 원님은 이광복을 만나 어떻게 바뀔까. “흥보와 놀보 사이에서 진실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면뿐 아니라, 꾀도 잘 부리는 등 해학을 가미한 캐릭터가 될 거예요.”

◇ 최용석 = “창극은 한마디로 뚝배기예요.” 관객과 배우 사이를 넘나들며 이야기를 연결하는 마당쇠 역의 최용석은 “창극은 여운이 길다. 희로애락의 감정이 식지 않고 오래 간다”며 창극을 뚝배기에 비유했다. “소리를 통해 행복을 전하고 싶어요.” 창극을 음식에 빗댄 건 요식업을 했던 부모의 영향도 있다.

그는 “부모님이 바쁘셔서 어릴 때 함께한 기억이 별로 없다. 부모와 자식 간의 그리움을 잘 안다. 그래서 ‘심청가’를 완창해 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클럽 음악을 자주 듣는다. 신나는 음악을 통해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다. “삶의 재미는 스스로 만들어야 하거든요. 좀 통통한 편인데, 날렵한 몸을 만들어 언젠가 냉소적이고 사악한 역을 한번 맡아보고 싶어요.”

공연은 4월 16일까지, 02-2280-4114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사진=국립극장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