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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년 연속 매진 ‘향연’ 연출

“젊은 관객 많아 고무적
관객과 무대 서로 영향
그래야 발전할 수 있어”

“난 새롭게 만드는 사람
‘전통의 현대화’가 아닌
‘전통의 진화’ 촉진시켜”

“연말이 되면 다들 ‘호두까기 인형’을 보잖아요. 특정한 때가 되면 사람들이 꼭 보고 싶어하는 한국무용이 있으면 참 좋겠다 싶었죠. 그런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벌써 세 시즌을 보냈으니 뿌듯합니다.”

전통 춤을 보려고 20∼30대가 표를 샀다. 아쉽다는 사람들이 많아 국립극장 측은 해마다 회차를 늘렸고, 올해는 이례적으로 해오름극장 3층까지 열었다. 지난 11일 막을 내린 국립무용단 ‘향연’이다. 전통 춤의 반란, 혹은 한국 무용 신드롬이라 할 만 하다. 누가 봐도 ‘한국 무용은 이런 것이구나’ 할 만큼 쉽고, 누가 봐도 ‘우리 춤이 이렇게 아름답구나’ 감탄한다. 무엇보다 한복을 입고 추는데 엄청나게 ‘모던’하다. 무형문화재 조흥동이 안무했지만, 정구호 연출이 없었다면 탄생하기 어려웠을 작품이라는 게 공연계의 공통된 목소리. ‘향연’ 돌풍의 주역, 정 연출을 16일 서울 중구 장충동 국립극장 내 국립무용단 연습실에서 만났다.

“출장 가느라 이번 공연 못 봤는데, 반응이 좀 있었나 봐요. 문자 정말 많이 받았어요. 표 좀 구해달라고, 하하.”

귀국하자마자 향연의 3년 연속 매진 소식을 들었다. 내년에는 예술의전당 오페라 극장에 오른단다. 더 많은 관객을 만날 생각에 벌써 설렌다. 여독이 절로 풀린다. 정 연출은 “1차적으로 보여지는 ‘미(美)’를 만들어 내는 건 자신 있었고, 대가(조흥동)가 안무를 해 훌륭한 작품이 나올 거라는 확신도 있었다”며 “어느 정도 호응은 예상했지만, 젊은층이 늘었다고 해 더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향연’은 말 그대로 한국 춤의 향연, 한국적인 아름다움의 향연이다. 총 4막 12장으로 구성된 옴니버스 형태로 살풀이, 바라춤, 동래학춤, 한량무, 장구춤, 소고춤, 태평무 등 한국 춤 12종을 엮어 사계절의 흐름과 함께 펼쳐 보인다.

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2013년 12월 초연한 국립무용단 ‘묵향’ 의상(왼쪽). 항아리를 연상케 하는 한복 치마를 더욱 과장되게 부풀렸다. 국내뿐 아니라 홍콩, 프랑스 등 유수의 해외 축제에서 호평받으며 국립극장 레퍼토리로 안착했다. 최현(1929∼2002)의 군자무(君子舞)를 제자인 윤성주가 새롭게 안무했으며 정 연출이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냈다. 앞서 같은 해 4월 탄생한 ‘단’ 의상(가운데). 한국 무용인데 한복이 없다. 현대 무용가 안성수(국립현대무용단 단장)가 안무한 작품으로, 콘셉트 사진이 공개되자마자 무용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향연과 묵향에 비해 대중적 호응은 덜했으나 정 연출이 가장 애착을 보이는 작품이다. 2015년 첫선을 보이고 3년 연속 매진 기록을 세워 화제가 된 향연 의상(오른쪽). 한국 춤 12종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나오고, 총 202벌의 옷이 투입된 대규모 공연이다. 세련된 무채색으로 시작해 막과 장이 달라질 때마다 화려해지며, 마지막에는 붉은색과 청색이 하모니를 이룬다. 국립극장 제공

“사람들은 익숙한 걸 새롭게 보고 싶어해요. ‘향연’은 한국 무용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했다는 의미가 큰 거 같아요. 더 나아가 보다 완성도가 높고, 실험적인 작품을 제시해야죠. 관객과 무대가 서로 영향을 끼치면서 발전한다고 믿어요. 창작자들은 대중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순수예술의 목적이 대중화는 아니라는 것도 직시해야죠.”

‘향연’ 이야기에 환하게 웃었지만, 지난 해엔 세간에 이름이 알려지고 난 이래 가장 힘든 나날을 보냈다. 평창동계올림픽 개·폐막식 총연출을 맡았다가 송승환 총감독과 불화설이 터지며 사임했고,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여파 속에 난데없이 ‘차은택 라인설’도 불거졌다. 그는 “의혹이나 루머들이 자연스럽게 해소됐지만, 내 안에는 약간 변화가 있었다”면서 “솔직히 정치나 시사 문제에 대해 잘 모르고 관심도 없었다. 어쩌다 이런 저런 나랏일에 끼여 치이다 보니, 요즘 분개하는 일이 잦아졌다”고 말했다. “지인들이 놀라요. 매일 정치 이야기 하는 친구가 오히려 저더러 ‘진정하라’고 하니 재미있는 일이죠.”

‘향연’뿐 아니라 이미 포이즈, 단, 묵향 등 여러 편의 무용 연출을 맡았으나 아직은 패션 디자이너로 더 유명하다. 10년간 삼성물산 패션 부문(구 제일모직)에 몸 담았고, 그의 이름을 딴 브랜드 ‘구호’가 여전히 이 회사 여성복을 대표하고 있으니 당연하다. 그러나 스스로 생각하는 본업은 패션도 공연도 아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철저히 무용계에선 외부인이죠. 그래서 틀을 깰 수 있는 거고요. 원로나 대가들의 칭찬과 쓴소리를 전부 듣고 있고, 다양한 시선도 이해해요. 그들이 쌓아 놓은 걸 무너뜨리려는 사람이니까요. 문화가 발전하려면 전통을 고수하는 사람, 그걸 다시 새롭게 만드는 사람, 그리고 완전히 실험을 하는 사람. 이 셋이 고르게 존재해야 하죠.”

그가 무엇을 하는지 여전히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무용 연출’이 낯설기도 하고, 이해와 인정에 인색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주제와 콘셉트를 총괄하는 일인데 무대나 의상 디자인에 국한된 걸로 오해도 한다. “제 작업을 ‘전통의 현대화’라고들 하시는데, 이미 진행되고 있는 ‘전통의 진화’를 촉진하는 사람이라는 게 더 맞습니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사진 = 신창섭 기자 bluesk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