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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사자성어가 그 어느 해보다 실감 나는 세밑이다. 현실이 얼마나 기가 막힌지, 10여 년 전에 등장하여 이제는 대체 불가능한 용어가 된, 이른바 ‘막장드라마’들도 별로 화제가 되지 않을 정도이다. 익숙해져서가 아니라, 드라마보다 현실이 더 드라마틱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2016년은 드라마의 상상력을 초월하는 국정농단이 자행된 정치 현실에 기함할 수밖에 없었던 한 해였다. 정경유착이나 지하경제의 폐해를 다룬 드라마들이 오히려 약하게 느껴질 정도이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최근 몇 년 동안 비과학적이고 초자연적인 판타지 기법을 차용한 드라마들이 많았던 것도 현실에서 은폐되고 왜곡된 진실 규명에 대한 갈망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쾌락과 희열의 주이상스(Jouissance) 차원에 머물러 있던 판타지가 사회적으로 민감한 현안을 해결하는 기법으로 활용되는 경향이 방증이다. 과거의 형사와 현재의 형사가 낡은 무전기로 교신하면서 장기미제사건을 해결한다는 비과학적 설정이 독특했던 tvN ‘시그널’(사진)이 대표적이다. “세상에는 묻어도 될, 잊어도 될 범죄는 없다”는 신념으로 억울한 피해자를 외면하지 않았던 이재한(조진웅) 형사의 고군분투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을 것이다.

‘꼴통 검사’로 불리다가 ‘비리 검사’라는 누명을 쓰고 모든 것을 잃었다가 사회적 약자를 변론하는 ‘동네 변호사’로 돌아온 조들호(박신양)의 활약상을 다룬 KBS 2TV ‘동네변호사 조들호’도 문제적 현실을 포착한 드라마였다. 거대한 힘과 맞서 은폐되고 왜곡되었던 진실을 규명하여 사법 정의를 구현하는 조들호는 법치주의의 근간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현실을 보여주면서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자본권력과 정치권력 앞에서 법이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대다수 서민의 답답증을 시원하게 해소시켜 주었던 것이다.

진실을 갈구하는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을 때 우리 모두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가 돋보였던 SBS ‘원티드’는 사회적으로 민감했던 문제를 다루면서 화제가 된 드라마였다.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타인의 아픔에 관심을 갖지 않는 기득권 세력과 맞서 환자 중심의 의술을 실천하는 비주류 의사들의 활약을 그린 SBS ‘낭만닥터 김사부’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것도 의료 현실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 아닐까 싶어 씁쓸하기만 하다.

가상의 국제 분쟁 지역 재난을 매개로 사랑을 꽃피우는 청춘남녀들의 사연을 다룬 KBS 2TV ‘태양의 후예’와 조선시대 세자와 남장여자 내시의 청춘 로맨스 속에 “백성이 행복한 좋은 나라”에 대한 정치적 메시지를 풀어낸 KBS 2TV ‘구르미 그린 달빛’, 그리고 작가의 창작물인 웹툰 속의 세계를 실제 현실 세계와 교차시켜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이 만나 발생하는 사건을 다룬 MBC ‘W’와 ‘황혼 청춘들의 인생 찬가’를 표방하면서 인간과 삶의 문제를 진지하게 성찰한 tvN ‘디어 마이 프렌즈’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우리 사회의 문제적 현실을 포착한 드라마로 기억할 만하다. 드라마는 당대의 문제적 현실을 시의성 있게 즉자적으로 담아낸다. 동시에 드라마에서는 부조리한 모순과 폐해가 반드시 해결된다.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이 비정상적으로 작동하는 현실에서 보기 어려운 권선징악의 시적 정의(poetic justice)가 드라마에서 구현되는 것이다.

충남대 교수·드라마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