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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女혐오주의자… 이것은 인간 품위에 관한 문제”

“뼛속까지 충격” 직격탄 날려
“여성의 지성에 대한 무례”
유튜브 조회수 300만 넘어

가족·자녀의 중요성 강조
미국인에 ‘인간 품격’ 재각인

“이건 기본적인 인간의 품위(decency)에 관한 문제입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오른쪽 사진) 여사가 올해 대선에서 핵심 논쟁으로 떠오른, 여성혐오주의자라는 의미의 ‘미소지니스트(Misogynist)’ 논란을 ‘인간의 품위’라는 단어 하나로 정리했다. 지난 13일 민주당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지원유세 연설에서 도널드 트럼프(위)의 음담패설을 “여성의 몸에 대한 수치스러운 발언이자 여성의 야망·지성에 대한 무례”라고 규정하면서 ‘트럼프=미소지니스트’라는 점을 확실히 못 박은 것. “뼛속까지 충격을 받았다(shaken me to my core)”는 직격탄도 날렸다.

이후 미셸 여사의 연설에 대한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미셸 여사의 연설 동영상 조회수는 유튜브에서만 300만 건이 넘었다. 유명 페미니스트 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 등 여성인사 4명은 미셸 여사가 표지모델로 실린 뉴욕타임스(NYT) 일요판 잡지에 “흑인으로서, 여성으로서 감사하다”는 내용의 감사 서한까지 기고했을 정도다. 특히 스타이넘은 이 서한에서 “미셸 여사는 개인적 삶을 희생하지 않으면서 공적인 삶에서도 성공한 새로운 ‘퍼스트레이디’ 모델을 만들어냈다”고 극찬했다.

미셸 여사의 ‘인간의 품위’에 대한 역설이 강력한 파급력을 가진 데에는 그 진정성 때문이다. 노동자 출신 가정에 흑인, 여성이라는 마이너리티(소수계) 요소 3개를 다 갖춘 미셸 여사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연설 내용이 트럼프의 성·인종 차별적 발언에 맞서는 마이너리티를 단합시켰다. 부계의 고조부와 모계의 5대 조부가 노예였던 미셸 여사가 지난 7월 민주당 전당대회 첫날 찬조연설에서 “매일 아침 나는 노예들이 지은 집에서 일어나 내 딸들, 아름답고 지적인 젊은 흑인 여성 2명이 백악관 잔디밭에서 개들과 노는 걸 본다”고 말했을 때 기립 박수를 받았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셸 여사 특유의 짙은 호소력도 작용했다. 클린턴은 물론 남편인 오바마 대통령도 트럼프에 맞서는 이성적 논리는 제공했지만,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지는 못했다. 하지만 미셸 여사는 공화당 성향의 보수주의자들도 인정하는 자녀·가족의 중요성을 수차례 강조하면서 트럼프 발언에 가치가 흔들리는 혼란을 경험하고 있는 미국인들에게 ‘인간의 품위’가 무엇인지를 다시 각인시켰다. 무차별적 공격을 쏟아내는 트럼프마저도 미셸 여사에 대한 비판만은 삼가는 이유다.

국내에서도 지난 5월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미소지니스트’ 논란이 거셌지만, 그 누구도 미셸 여사만큼 명확하게 ‘인간의 품위’를 짚어내면서 논란을 잠재우지 못했다. 미국만큼이나 분열된 한국에서도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여성혐오주의를 악용하는 인사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혹여 이런 유혹에 빠지고 싶은 이들에게 미셸 여사가 지난 7월 전당대회에서 밝힌, 이제는 클린턴 캠프의 캐치프레이즈가 된 이 문장으로 미리 경고하고 싶다. “그들이 저급하게 갈 때 우리는 품위 있게 행동한다(When they go low, we go high).”

워싱턴 = 신보영 특파원 boyoung22@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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