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당당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5일 아테네 총리실에서 대국민연설을 하고 있다. 이날 치러진 국민투표 결과 채권단 긴축안 반대표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나자 치프라스 총리는 “반대 결정은 민주주의는 협박받을 수 없음을 보여준 것”이라며 즉시 채권단과의 협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AFP 연합뉴스

채권 만기 연장 · 구제금융
채권국들 관용 가능성 희박
유로존 붕괴 우려 일부국가
佛·伊 등 유화적 태도 희망

유럽중앙銀 자금줄 끊기면
자체 통화 도입해야할수도
유로화 대신 드라크마화땐
인플레이션 · 혼란 불가피

그리스 국민들이 5일 열린 국민투표에서 채권단의 긴축안 반대쪽에 표를 던짐으로써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이른바 ‘그렉시트’가 구체화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1차적 위기는 유럽중앙은행(ECB)의 채무 만기가 돌아오는 오는 20일이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채권단 국가들과 협상을 통해 그렉시트라는 최악의 상황은 피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국가 부채를 제대로 상환하지 못하면서 채권국의 긴축안을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기 위해서는 유로존 탈퇴라는 고육책밖에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6일 관련 외신 보도 등에 따르면 그리스는 오는 2주 후인 20일 ECB의 부채를 상환해야 디폴트(채무상환 불이행)를 피할 수 있다. 이번에 만기가 돌아오는 ECB의 채권은 지난달 말 그리스가 국제통화기금(IMF)에 일괄 상환하기로 했던 15억3000만 유로(약 1조9000억 원)의 배 이상 많은 35억 유로(약 4조4000억 원)에 달한다.

그리스 정부는 새로운 협상단을 구성해 이번 채권 만기 등에 대한 연기 또는 추가 구제금융 협상 등을 벌인다는 계획이지만, 협상이 성사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리스 정부는 지난 6월 5일 만기가 돌아왔던 3억 유로의 IMF 채권을 상환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포함한 부채 15억3000만 유로를 6월 말 일괄 상환할 계획이라고 밝혔음에도 결국 상환하지 못했고 구제금융 연장에도 실패했다.

이후 세계 주요 투자은행과 신용평가사들은 그리스의 4대 주요 은행에 대해 ‘선택적 디폴트’ 또는 사실상 디폴트로 신용등급을 강등했다. 내부적으로도 은행과 주식시장이 폐쇄되고 있는 만큼 채권을 상환할 수 있는 자체 능력이 ‘제로’에 가까운 그리스 정부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ECB 채권국의 만기 연장 또는 추가 구제금융뿐이다. 그러나 국민투표에서 채권국의 긴축안에 반대한다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에 채권국들이 그리스에 대해 이 같은 관용을 베풀 것이란 기대를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그렉시트로 인한 유로존 붕괴를 우려하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이 채무 탕감(헤어컷)을 요구하는 그리스에 상대적으로 유화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다는 점이 협상 타결 가능성의 여지로 남아 있다.

한편 이번 채권 협상에 실패하고 그렉시트가 현실화될 경우, 그리스에서는 더 이상 유로존 화폐인 유로화가 통용되지 않는다. 대신 그리스 정부는 새로운 화폐를 도입해야 하며 이는 과거에 사용하던 ‘드라크마’화 내지는 ‘신(新)드라크마’화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문제는 이 화폐의 가치가 유로화에 비해 크게 평가 절하될 것이란 점이다. 화폐 가치의 급락은 통상 수입 물품 가격 상승과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그리스 국민들은 극심한 물가 상승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다. IMF는 그렉시트 및 새 통화 도입 시 그리스의 물가상승률이 35%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리스 정부로서는 새로운 화폐를 도입할 경우 당장 필요한 만큼 통화를 찍어내 국민연금과 공무원 임금을 지급함으로써 최소한의 경제 순환을 유지하는 임시방편의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NYT)는 “지나치게 (새 화폐를) 많이 찍어내 가치가 급격히 떨어지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준희 기자 vinke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