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이사를 하면 이웃들에게 시루떡을 돌렸습니다. 예전만큼은 못해도 요즘도 이사 온 이웃이 떡을 돌리는 풍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올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를 석권한 김효주는 31일 경기 용인의 레이크힐스골프장에서 열린 서울경제 레이디스클래식 첫날 200인분의 떡을 싸 들고 왔습니다. 바로 ‘우승 떡(Champion’s Cake)’입니다. 직전 대회 우승자가 정성껏 마련한 떡을 돌리는 건 이제 우승신고 절차로 자리 잡았습니다. 떡은 선수와 캐디, 경기위원 및 협회 관계자, 골프장 직원, 그리고 취재 기자들도 맛볼 수 있습니다. 김효주의 우승 떡은 올해만 벌써 다섯 번째입니다.

이처럼 여자 프로선수들이 떡을 돌린 것은 2000년쯤부터 시작됐습니다. 대회 상금도 늘고 동료 선수 및 대회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우승자들은 다음 대회 1라운드 때면 어김없이 떡을 들고 왔고, 몇 해 뒤부터 남자골프대회에서도 똑같이 떡을 돌리고 있습니다.

한때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활동하던 박세리와 이선화 등을 후원하던 CJ그룹은 소속 선수가 우승할 때마다 후원사나 협회, 언론사 등에 떡을 돌리며 자축해 왔습니다. 한 해에 많을 땐 대여섯 차례나 떡을 돌렸습니다. 우승 떡을 둘러싼 재미난 얘기도 많습니다. 지난해 4승과 함께 ‘상금 여왕’에 올랐던 장하나는 우승한 다음 대회 때 3~4일 내내 우승 떡을 돌리는 ‘통 큰’ 인심을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장하나가 한 해에 든 떡값만 1500만 원이 훌쩍 넘었다고 합니다.

지난 7월 중국에서 열린 금호타이어여자오픈 때는 김효주 부친이 우승 떡을 조달하려고 차로 6시간을 달려가 조선족이 운영하던 떡집을 어렵게 찾아내 대회 당일 새벽에 골프장으로 공수해오기도 했습니다. 선수들은 한국에서 먹는 떡처럼 맛있다는 찬사를 연발했습니다. 지난 23일 KB금융스타클래식 때는 두 선수가 동시에 떡을 쏘기로 해 누가 먼저 돌릴지 상의한 적도 있습니다. 합의 끝에 첫날에는 김효주가 하이트진로챔피언십 우승 떡을 돌렸고 대회 2라운드 때는 백규정이 하나·외환LPGA챔피언십 우승 떡을 돌렸습니다. KDB대우증권클래식 우승자인 전인지는 떡이 싫증 났는지 다음 대회에서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넣은 ‘간식 도시락’을 내놔 폭발적인 반응을 얻기도 했습니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메이저대회인 마스터스에서는 챔피언이 다음 해 대회 때 역대 챔피언들에게 근사한 저녁 식사를 대접하는 ‘챔피언스 디너’가 있습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한 차례도 거르지 않은 ‘챔피언의 떡’이야말로 한국 골프에서만 볼 수 있는 훈훈한 전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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