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패션위크가 다 끝났잖아요. 세계 최고의 옷들을 이미 봤는데, 과연 서울까지 오겠어요?”

오는 17일부터 22일까지 6일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는 서울패션위크에 대한 전망을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입니다. 국내 패션계에 점수가 야박한 이 잡지 에디터의 문장엔 약간의 보충 설명이 필요합니다. 우선 패션위크는 일년에 두번(봄, 가을), 디자이너들이 작품(옷)을 선보이는 패션쇼가 집중적으로 열리는 주간입니다. 4대라고 하면 파리, 뉴욕, 밀라노, 런던을 말합니다. 패션의 탄생지나 소위 ‘명품’산업에 대해 구구절절 나열하지 않아도 패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도시들. 사본 적 없어도 들어본 적은 많은 샤○, 루○○통, 에르○○도 모두 이곳에서 ‘신상’을 발표합니다. 당연히, 전세계 패션계의 이목이 집중되지요. 서울까지 ‘오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은 바로 바이어들. 패션위크는 얼핏 ‘모두의 축제’로 보이지만, 가장 중요한 건 사실 옷을 사줄 사람입니다. 늘씬한 모델들이 또각또각 런웨이를 걸으며 반 년 앞선 패션을 선보이는 대상도 바로 바이어입니다.

솔직히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패션’은 애초에 저들 4대 패션 도시에서 탄생·성장했고, 지금도 가장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디자이너와 상공업자를 중심으로 자생, 70여 년을 버텨온 4대 패션위크와 달리 서울패션위크는 관(서울시)이 주도합니다. 본보기로 삼았던 행사와 태생부터 다르기에 14년 동안 ‘방향 설정’이 애매하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고요. 2012년에야 비로소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가 공식 출범했고, 장소 변경, 참여 디자이너 선정에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습니다. 종종 거론되는 5대 패션위크로의 도약 등은 말 그대로 ‘꿈’일 뿐입니다. 드라마·케이팝(K-POP) 위주의 한류가 정체기에 접어들자, 돌파구로서 ‘패션 한류’를 주목하는 분들에겐 찬물을 끼얹는 셈이지만, 현실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번 추계 서울패션위크에선 ‘패션 한류’의 실체를 볼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늘 지적받았던 ‘방향 설정’이 제대로 이뤄졌기 때문인데요. 4대 패션위크를 무작정 따라하지도 않았고, ‘한국식 패션위크’를 지향한다는 게 명확하게 보입니다. 밤이 더욱 화려한 동대문의 특성을 살려 최초로 심야 패션쇼 ‘아시아 패션 블루밍나이트’가 열리는 게 대표적인 예. 외국 관광객들이 대거 몰리는 DDP에서 ‘패션 한류’가 전파되는 셈이지요. 시작 전부터 중국, 일본 등 아시아를 중심으로 수주가 이뤄지고 있다는 희소식도 들려옵니다. 토·일 주말을 끼워넣어 ‘나도 패션 디자이너’ 등의 시민참여 행사를 마련한 것도 좋은 아이디어. 동대문 상권 부활과 함께 ‘패션 코리아’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는 데 상당한 효과를 볼 것 같습니다.

궁궐도 야간 나들이가 유행이라는데, 우린 참 ‘밤’을 좋아하는 민족이네요. 이번엔 ‘달밤 패션쇼’입니다. 주말 저녁엔 동대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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