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민/사회부장

6·4 지방선거를 전후해 고리원전 1호기의 폐쇄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고리 1호기와 인접한 부산, 울산의 시장선거와 기장군수 선거에서는 여야 후보들이 고리 1호기 폐쇄를 한목소리로 주장했다. 앞서 지난 2일에는 시인 고은, 소설가 황석영, 최열 환경재단 대표, 법륜 스님,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등 각계 유명인사 56명이 고리 1호기의 폐쇄를 촉구하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이 고리 1호기 폐지를 주장하는 핵심 논거는 두 가지다. 첫째는 고리 1호기가 30년의 설계수명을 넘겨 37년째 사용된 오래된 원전으로 각종 사고가 잦다는 것이고, 둘째는 고리 1호기가 위치한 지역은 현재 6기의 원전이 가동중이고 2기가 건설중인 원전 밀집지역으로 사고가 발생하면 엄청난 재앙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방사능에 대해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는 거의 원초적이다. 원전사고의 확률이 ‘제로’가 아닌 이상 이 공포를 자극하는 주장을 배척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포가 이성을 압도하기 전에 원전의 사고발생 가능성과 경제적 필요성에 대해 보다 솔직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고리 1호기가 낡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2011년까지 전 세계에서 폐쇄된 143기 원전의 평균 가동연수가 23년이란 점을 든다. 그러나 2014년 3월 말을 기준으로 전세계에서 가동중인 원전 435기 중 150기(34.5%)가 계속운전 승인을 받았으며 이중 30년 이상 운전중인 것이 194기(44.6%), 40년 이상 운전중인 원전도 48기(11%)에 이른다. 고리 1호기가 오래된 원전이어서 무려 130차례 사고가 발생하는 등 국내 원전 사고의 20% 가량이 고리 1호기에서 발생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러나 1978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이후 사고내역을 보면 고리 1호기는 나이를 먹어갈수록 안정적인 가동상태를 보였다. 130건의 사고 중 79건(61%)이 원전 운영기술력이 부족한 초기 10년간 발생했으며, 수명이 연장된 2007년 12월 이후에는 단 5건의 사고만 발생해 동기간 국내 원전 사고 80건의 6%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고리 1호기가 핵폭탄처럼 폭발하고 그 결과 인근 원전의 연쇄폭발로 이어져 대재앙이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은 근거가 있을까. 원자력발전소의 연료로 사용되는 우라늄은 웬만해서는 핵분열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우라늄-238이 96% 이상이고, 원자폭탄에 사용되는 우라늄은 핵분열을 잘 일으키는 우라늄-235가 90% 이상이다. 즉 알코올 농도가 95%이상인 알코올 램프가 원자폭탄이라면, 알코올 농도가 4~6%인 맥주가 원자로인 셈이다. 따라서 원자로가 원자폭탄처럼 순식간에 폭발하는 일은 물리학적으로 불가능하다.

원전은 이미 우리 사회에 필요불가결한 에너지원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우리는 에너지 자원의 97%를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으며 세계 10위의 에너지 다소비 국가이자 석유소비량 세계 7위(원유 수입 세계 4위) 국가다. 더구나 에너지 확보와 관련한 국제적 발언권이 약한 상황에서 강대국인 중국 등 인접국가와 에너지 확보를 위해 경합하는 등 에너지 안보가 대단히 취약한 상태다. 이에 반해 원전은 국내 전력생산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고, 발전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 역시 석탄 등 화석연료에 비해 현격히 적어 청정에너지원으로 꼽힌다. 따라서 원전을 포기하면 우리 경제와 국민 개개인은 엄청난 경제적 대가를 치러야 한다.

원전의 이 같은 현실에 비춰 이 문제를 다루는 정부의 자세는 지나치게 수세적이다. 사실 고리 1호기 폐기 주장은 궁극적으로 원전의 완전한 폐기를 지향한다. 현안에 대한 의견 제시가 아니라 환경 우선주의적 이념에 근거한 전략적 공세 성격이 없지 않다. 이에 맞서 고리 1호기의 안전성에 대한 과학적 데이터만을 제시하는 식의 대응은 패착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정부는 고리 1호기 폐쇄 문제를 원전의 필요성과 안전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국민적 공감대는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있어야 가능하다.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면 비록 고리 1호기 수명연장의 과학적 안전성이 입증되더라도 기꺼이 폐쇄를 선택하는 역발상을할 수 있어야 한다. 고리 1호기 폐쇄는 과학적 선택이 아니라 정치적 선택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