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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共存, 일본의 獨存

기사입력 | 2013-04-19 13:58

일러스트=이정학 기자

이원복/덕성여대 석좌교수

지금이야 ‘글로벌’이란 단어를 입에 달고 살 정도지만, 내가 처음 해외에 나간 40년쯤 전에는 고작 국제(國際)란 단어가 전부였다. 그것조차 대단히 추상적인 개념으로, 당시의 대한민국은 말 그대로 고립무원(孤立無援)의 경지였다. 그 20년 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시드니선언에서 ‘세계화(世界化)’란 용어가 나왔고, 2000년대 후반에 와서야 ‘글로벌’이란 말이 일상화됐다.

1975년 난생 처음 해외에 발을 디뎠을 때 유럽에서 가장 놀란 것이 바로 ‘글로벌한 세상’이었다. 요즘엔 한 끼 식사에도 여러 국적의 식재료를 접하게 되는 것이 일상화했지만 처음 유럽에 도착해서 마주한 식탁 위 식품들의 국적이 너무 다양한 것이 그 예다. 여권받기가 별 따기만큼 어려웠던 우리나라였는데 서유럽 국가에서의 월경(越境)은 이웃 동네 가듯 하는 것에 놀랐고, 내가 입주한 기숙사에 수십 개 국적의 학생들이 거주하고 있는 사실에 놀랐다.

하기야 843년 베르??Verdun)조약으로 갈라지기까지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가 모두 프랑크왕국이라는 하나의 뿌리에 속했으니 이웃나라들과 공존(共存)은 너무도 당연했던 것이다. 유럽대륙의 국가들이 토박이 민족으로 구성됐다기보다는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던 민족들이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현지 주민과 유합해 오늘의 국민국가에 이르렀다고 볼 때, 그들의 기본 세계관이 독존적(獨存的)이었다면 이웃 주변의 반발과 저항으로 생존 그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에 비해 주로 농경을 주업으로 했던 동양의 민족들은 유럽인들보다 훨씬 먼저 정착해 이동이 잦지 않아 지역별 농업공동체를 형성하고 공동체 간 네트워크가 원활치 않아 독자적인 발전을 한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한반도와 중국과 일본이다. 중국은 동아시아 대륙의 좋은 땅을 다 차지하고 변방은 오랑캐의 땅이라 넘보지 않은 채 중화사상이란 문화 방화벽을 치고 그 안에서 다양한 이방 민족들을 한문화로 융해시켜 ‘중국인’으로 재창출해 왔다. 그러니 이웃과의 공존보다는 독존적 역사관을 지니게 됐다. 한반도도 역사 속에서 수천 번에 걸친 외침을 막아내어 끝내 민족의 혈통을 지켰고 족보 존중으로 혼혈을 최대한 막고 외래 민족의 국내 이주를 완강히 저지하는 등 독존적 역사를 유지해 왔다.

일본은 이런 요소가 더욱 두드러진다. 덴노(天皇)를 구심점으로 한 정신적 결집을 도모하고 ‘니혼진(日本人)’이라는 문화적 융합체를 창출해 다양한 종족을 하나로 묶어 다른 세계와 차단했다. 일본 땅에 발을 디딘 외국 군대는 태평양전쟁 패전 뒤에 진주한 미국이 처음이었을 정도이니 그들의 독존적인 역사관이 어떠한지 가히 미뤄 짐작할 만하다.

여기에 일본의 경우, 체면을 중시하는 사무라이 문화 때문에 후손에게 부끄럽고 창피한 역사는 슬그머니 얼버무려 버리곤 한다. 그래서 중국 침략이 시작된 1931년부터 패전까지의 15년 역사는 얼렁뚱땅 대충 생략하고 넘어가거나, 남경사건(南京事件), 중국 진출 등으로 호도하며 전쟁의 흔적도 히로시마 원폭 돔과 같이 피해자의 입장을 강조하는 것이다 보니 늘 역사 문제로 이웃 나라들과 충돌을 피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독존적 역사관이 낳은 결과다.

과거의 잘못을 시인하고 사죄하는 것이 자학사관(自虐史觀)이라는 최근의 우경화는 대단히 잘못되고 비뚤어진 역사관이다. 우리는 그렇다고 반드시 일본의 과거사만 가지고 비난해선 안되며 우리 또한 이런 독존적 역사관의 지배를 받지 않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부끄러운 역사는 축소하고 자랑스러운 역사는 확대 과장하는 등 역사를 팩트 그대로 가술하지 않고 분칠하고 생략하고 확대하는 등의 독존적 역사관은 우리의 자식들을 크게 잘못 이끌 수 있다.

독일이 만약 과거사를 반성, 사과하지 않고 나치의 만행을 사죄하는 것이 자학사관이라 한다면, 유럽연합(EU)은커녕 유럽 전체의 적으로 몰려 통일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1988년 독일 항복 43주년을 맞아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전 대통령의 연설은 역사가 무엇인지, 역사가의 의무가 무엇인지 명료하게 밝히고 있다.

“독일 국가의 이름으로 저지른 사건은 변하지도, 잊히지도 않는 것입니다. 역사적 책임감이란 자신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오늘을 올바르게 살기 위해서는 과거를 정직하게 기억해야 합니다. 독일의 역사가들은 국민이 그렇게 살 수 있도록 도울 의무가 있습니다.”

역사가가 할 일은 국민이 과거를 정직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분칠하지 않은 ‘생얼’의 역사, 즉 팩트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의미다. 이런 점에서 독일 곳곳에 남아 있는 유대인수용소 유적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600만의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의 죄상, 죄 없는 유대인들의 시신이 화장되던 화로를 보며 견학 온 독일의 청소년들은 무엇을 생각할까? 그들 선조가 저지른 범죄를 두 눈으로 똑바로 보며 다시는 그런 범죄를 반복해선 안되리라고 다짐할 것이다.

일본은 피해자라는 느낌을 주는 원폭 돔을 바라보면서, 일제시대의 잘못을 반성하는 것이 자학이라는 지도자들 아래서 다음 세대는 무엇을 배우게 될까? 글로벌화하는 세상, 공존의 철학이 절실한 이 시점에 우리의 역사관도 다시 한 번 되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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