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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1 좌천(左遷)-8

기사입력 | 2012-11-13 14:15

자, 이젠 박서현이다. 오후에 텅 빈 고속도로를 달려 올라오면서 서동수의 머릿속에 울린 말이다. 같이 중국으로 갈 수는 없다. 어머니한테 말했던 것처럼 박서현과 미혜는 서울에 남는다. 갑자기 준비도 없이 중국으로 떠날 수는 없는 것이다. 미리 예행 연습을 한 셈이 되었으므로 서동수의 가슴은 조금 가벼워졌다. 그렇다. 전자에서 섬유 공장으로 옮긴 이유는 중간 간부급 이상에게 타 사업장도 경험토록 하라는 최고 경영진의 특별지시라고 하면 되겠다. 회사 내부일은 말해주지도 않았고 궁금해하지도 않았던 박서현이었으니 그러려니 할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비행기를 타면 한 시간 거리 아닌가? 물론 공항에 가고, 입출국 심사, 비행기 기다리는 시간까지 합하면 대여섯 시간은 걸리지만 그쯤은 넘어가자. 미혜 보려고 일주일에 한 번 날아오면 될 것이다. 비행기 요금이 좀 나오겠지만 당분간은 감수해야지. 그때 핸드폰의 벨이 울렸으므로 서동수는 집어들고 발신자를 보았다. 그렇지. 정은지다. 그젯밤 이후로 전화를 하지 않았고 오지도 않았다. 섹스 파트너 삼은 지 4개월, 어느 정도 성향(性向) 파악이 된 상태라 어제 전화가 안 올지 알았다. 뒤가 구리면 오히려 세게 나가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그것이 오래 못 간다. 지금처럼. 벨이 여섯 번 울리고 났을 때 서동수는 핸드폰을 귀에 붙였다.

“어, 너냐?”

“자기야, 오늘 시간 있어?”

정은지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물었으므로 서동수는 소리 죽여 숨을 뱉는다.

“오늘은 안돼.”

침묵. 아직 어려서 그렇다. 조금 나이가 들면 이럴 경우에 대비해서 차분하고 조금 냉정하게 묻겠지. 그래. 너도 나를 스파링 파트너로 삼아 경륜을 쌓으려무나. 서동수가 침묵을 깨뜨렸다.

“지금 시골 어머니한테 내려와 있어.”

“시골?”

“응, 그래서 그런다.”

“오늘 회사 안 나갔어?”

정은지의 목소리에 생기가 살아나고 있다. 그젯밤, 오피스텔에 같이 있던 놈이 누구일까? 또 다른 스폰서일까? 아니면 돈 안 내고 엉키는 애인일까? 머릿속 생각과 따로 대답이 나간다.

“응, 휴가 내고 갔어.”

했다가 창밖을 스쳐 지나는 풍경을 보고는 말을 바꿨다.

“왔어.”

“그럼 언제 올라와?”

“내일.”

“내일 밤 올 거야?”

“그래.”

“자기야, 사랑해.”

문득 머리끝이 서는 느낌이 든 서동수가 심호흡을 하고 나서 대답했다.

“전화 끊는다.”

핸드폰의 덮개를 닫은 서동수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문득 어수선한 사생활이 이번 사건으로 정리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전화위복이다.”

칭다오에 가면 새 생활이 시작될 수 있겠다. 새옹지마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때 갑자기 정은지의 알몸이 떠올랐다. 정은지는 아직 어리다. 그리고 요즘 그만 한 가격에 그런 상대를 만나기 어렵지 않았던가? 이제 서동수의 머릿속은 정은지의 정리 문제로 어수선해졌다. 강정만에게는 오피스텔 월세 보증금이나 넘겨주고 손을 뗀다고 했지만 아깝다. 문득 꼭 정리하고 자시고 할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이 떠올랐으므로 서동수의 눈에 생기가 띠어졌다. 맞다. 당분간은 해외 출장으로 해 놓는 것이 낫겠다. 한 달 용돈을 준 지 10일밖에 안 되었으니 유용기간이 20일이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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