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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관 선생은 회고록에서 자신의 성품을 두고 ‘일생 동안 사교적이지 못했고, 몇 안 되는 친한 친구들만 사귀며 끝없이 그들의 도움을 받아왔던 것 같다’고 자평했다. 지 선생이 말하는 ‘몇 안 되는 친한 친구’가 바로 고 선우휘 조선일보 주필과 고 야스에 료스케(安江良介) ‘세카이(世界)’지 편집장이다.

선우 주필은 지 선생의 고향인 평안북도 정주 동향인으로 보통학교 2년 선배였다. 지 선생은 선우 주필을 “수재에 인간적인 폭이 넓고 정의감도 강한 인물”이라고 묘사했다. 학자로 내닫던 일직선 인생에 저널리스트로의 길을 열어준 이가 바로 선우 주필이라고 그는 고백했다. “조선일보와 사상계에 정부 비판의 글이랄까,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글을 계속 쓰게 했다”는 것이다. 지 선생은 5·16군사혁명 직후인 1965년 4월 하순 선우 주필의 권유로 조선일보 1면에 ‘가두로 끌어낸 건 누군가-이제 와서 데모의 책임을 학교 측에 돌릴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칼럼을 실었던 일화를 들려주었다. 1964년 4월 사상계에 ‘5·16은 4·19 정신의 계승 아니다’란 글을 싣자 대학가에서 이를 인용한 데모가 벌어졌고, 군부가 이를 탄압할 조짐을 보이자 신문에 다시 글을 쓰게 됐다는 것. 글을 쓴 다음날 이화여대로 출강하자 동료 교수들이 “무사할 리 없다”며 걱정해주었지만, ‘현명한 선우휘’가 친구인 동아일보 편집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거의 같은 의견을 여러 대학교수들에게 받아 동아일보에 게재토록 했고, 결국 청와대의 구두경고로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야스에 편집장은 지 선생을 ‘T·K생’이란 필명으로 세카이지에 데뷔시킨 ‘예리한 편집자이자 휴머니스트’라고 그는 말한다. 거의 평생 지속된 둘 사이의 우정은 서로를 존중하는 바탕 위에서 두터워졌다. “필자의 특징과 약점을 꿰뚫어 보고 필자를 살려줬다. 필자를 아주 정중히 대하면서도 필자의 실력을 정확하게 평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필력을 자라나게 하는 것이야말로 저널리즘 종사자의 사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게 지 선생의 평이다. 그는 T·K생이란 필명은 야스에 편집장이 아무 뜻 없이 지어준 이름이라고 비화를 밝혔다. 특히 세카이지에 연재할 때 김순일, 이대선, T·K생이란 3가지 필명을 돌려쓰며 각각 다른 필체와 논조로 주장을 펼쳤다는 후일담이 이어졌다.

▲1924년 평안북도 정주 출생 ▲서울대 종교학과 졸업, 동 대학원 석사 및 박사과정 수료 ▲충주사범 부속초교 교사, 덕성여대 교수, 덕성여중고 교장 ▲월간지 ‘사상계’ 주간 ▲도쿄여대 교수 ▲한림대 일본학연구소 소장 ▲한일문화교류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 ▲한국방송공사(KBS)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