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서울 종로구에 출마한 손학규(왼쪽사진 오른쪽) 통합민주당 후보와 박진(오른쪽사진 오른쪽) 한나라당 후보가 1일 각각 평창동과 숭인동에서 선거운동을 벌이고 있다. 김호웅기자

1일 오전 9시 서울 종로구 선거 분위기를 취재하려고 동대문 지하철역에 도착했을 때 예상외로 한산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 시각이면 지하철역 출구마다 출근하는 시민들에게 한 표를 호소하는 선거운동원들이 있을 법도 한데, 어느 당에서도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손학규 통합민주당 후보와 박진 한나라당 후보의 선거사무소를 방문했을 때도 이런 분위기는 그대로 이어졌다. 양측의 선거사무소는 당초 예상했던 만큼 분주하지 않았다. 좋게 보자면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선거활동에 임하고 있었다.

종로구는 이른바 ‘정치 1번지’로 불린다. 그만큼 종로구의 정치적 상징성이 크다. 이것은 손학규 후보와 박진 후보 진영 모두 각인하고 있는 사실이다. 정치적 상징성 때문인지 두 후보 진영은 ‘견제냐, 안정이냐’는 이슈 전선에서 대립하고 있다.

전략적으로 종로구를 택한 손 후보는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을 견제해야 된다는 논리로 지역구민들에게 호소하고 있는 반면, 박진 후보는 ‘여당 프리미엄’이라는 안정된 기반 위에서 지역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일꾼’의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치 1번지다운 열띤 선거 분위기가 고조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선거 이슈에 대해 주민들의 생각은 양 후보측과 많이 달랐다. 종로 거리에서 만난 이모(46)씨는 대뜸 “정치 1번지이면 뭐 하느냐. 먼저 지역이 발전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이씨를 포함해 이날 종로 지역에서 만난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종로구가 타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발전 상태에 놓여있는 점에 대해 가장 많은 불만을 토로했다. 특히 이들은 종로구가 문화재·관공서가 많아 지역개발에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언제까지 정치·문화의 중심지라는 데 자족하고 있어야 하느냐”는 분위기였다.

이들은 지역 국회의원이 지역개발, 민생문제처럼 자신들의 지역적 이해를 철저하게 대변해 주기를 원하고 있었다. 종로구 주민들에게 정치 1번지라는 상징성은 지역적 이해와 비교할 때 커다란 의미가 없는 부차적인 이슈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손 후보와 박 후보의 선거사무소 측 관계자들도 이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양측의 선거 공약은 모두 종로구가 갖는 정치·문화적 특수성을 유지하면서, 이를 어떻게 경제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지역개발과 연결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를 실현시키고자 하는 양 측 진영의 공약 및 정책이 거의 유사하다는 데 있었다. 두 후보가 역사문화 특구 개발, 교육환경 개선, 상업 환경 개선 등과 같이 대동소이한 공약을 내세우고 있을 뿐 소속 정당의 정체성을 살리는 공약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었다.

후보들의 공약에서 차별성을 찾기 힘들다는 사실은 이들의 선거 전략이 지역적 이해관계에 철저하게 종속돼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또한 종로구가 언론이 주목하듯이 전국적인 이슈의 대결장이라는 ‘빅 매치’의 성격이 크게 희석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전국적인 영향력과 위상을 지닌 정치인을 배출한다는 측면보다는, 누가 더 지역구민들의 이해를 관철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물인지가 선거의 중요한 요소로 부각하고 있는 셈이다.

주민들 사이에선 그런 인물론이 중요한 선거 화두였다. 손 후보는 경기도 지사 시절의 업적과 경험, 야당 대표라는 정치적 위상이 강점으로 꼽히고 있었다. 이에 박 후보는 종로구 현역위원으로서 지역현안을 꿰뚫고 있다는 점과 집권여당 소속으로 행정적 지원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 후한 점수를 받고 있었다. 야당 대표라는 거물 정치인이냐, 현역 의원의 여당 프리미엄이냐가 인물 평가의 초점이 되고 있었다.

그간 종로에선 한국정치의 현주소를 대변한다는 이유로 많은 정치적 거물들이 대결해왔으며, 그 결과에 커다란 정치적 의미를 부여해왔다. 이번 선거 역시 손학규 후보와 박진 후보의 대결을 이런 전통적 맥락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불구, 바닥에서 살펴본 종로의 선거는 그런 정치적 상징성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었다. 이런 정서 변화에 각 후보 진영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선거의 승패가 달려 있는 것이다.

[한영빈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상임연구원]

◆ 한영빈 연구원 약력

▲1962년생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서강대 정치학 석사 ▲독일 자유 베를린대 정치학 박사 ▲현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상임연구원 ▲스위스의 전자투표(논문, 2007년), 정보화와 스웨덴의 국가전략(논문, 200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