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서울 마포갑에 출마한 노웅래(왼쪽사진 왼쪽) 통합민주당 후보와 강승규(오른쪽사진 오른쪽) 한나라당 후보가 지난 31일 각각 아현동과 노고산동에서 지역 주민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곽성호기자

다리만 건너면 바로 한국 정치의 본산이라는 여의도에 닿는 서울 마포구민들마저도 선거에 시큰둥해 보였다. 지난달 31일 마포대로변은 어디를 가나 주요 후보들의 큼직한 선거 현수막이 나부꼈지만, 주민들은 도통 선거에 흥겨워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축제다’는 말이 무색하기 그지없었다. 마포갑에 출마한 후보들의 선거사무소를 돌아다녀 보아도 다른 선거구들과 마찬가지로 ‘좋은 후보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후보가 좋은 후보’라는 인식이 강한 것 같았다.

노웅래 통합민주당 후보와 강승규 한나라당 후보가 제시한 공약은 신기하게도 내용은 물론이고 공약의 우선순서까지 일치했다. 노 후보는 우수 명문고 유치, 강 후보는 자립형 사립고 유치를 제1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 공약들은 같은 개념의 다른 이름일 뿐이었다. 두 후보의 제2공약도 철도부지의 공원화로 똑같았다. 그 내용에서도 차이를 발견하기 힘들었다. 심하게 표현하면, 같은 후보를 위해 준비한 공약 A안과 공약 B안처럼 보였다. 한 후보가 다른 후보의 공약을 참고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래서인지 마포갑 지역 유권자들은 후보를 평가하면서 두 후보의 선거공약에 대해 별로 언급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지역 유권자들이 여당 안정론이나 야당견제론 등의 거대 이슈에 관심을 두는 것도 아니었다.

주민들은 대부분 이웃의 용산 지역이 재개발 되는 것을 보면서 울화가 치민다는 반응이었다. 음식점에서 만난 한 주민(55)은 “마포가 가진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정책적 지원이 제대로 되지 않아 낙후돼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현 뉴타운 사업, 산업인력관리공단 부지이용 등에 대한 지역주민의 기대가 크고, 후보들은 이구동성으로 마포개발을 약속했다. 그러나 매니페스토 운동 등을 의식해서 구체적인 실천공약에 공들였지만, 차별성을 부각시키지 못하는 것이 난제였다.

노 후보는 자신의 대표적 공약들이 사업성격상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자사고 설립문제나 한반도대운하와 같은 맥락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게 부담이었다. 일부 공약은 당론과도 충돌하고 있었다. 강 후보 역시 자신만이 마포에 할 수 있는 독보적인 이슈를 찾는 데 성공한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이 때문에 언론인 출신끼리의 대결이라지만 그다지 화려한 선거경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유권자들을 파고드는 전략에서는 두 후보가 완연히 구별됐다. 노 후보는 부친(노승환 전 의원) 때부터 마포에서 정치를 해 온 ‘토박이 정치인’이라는 점을 앞세워 마포지역에 대한 열성을 강조했다. 그의 선거운동 역시 마포 토박이들을 기반으로 구전(口傳)선거운동에 기대를 걸고 있다. 자원봉사자들 가운데는 토박이 중심의 옛 민주당 당원들이 다수였다.

반면 강 후보는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시절에 함께 일했던 경력을 바탕으로 ‘마포MB’라는 구호를 내세운다. 이 대통령의 이미지를 투영해 공약제시보다 실천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유권자들의 눈에는 신뢰성의 현직 의원과 새로운 변화를 약속하는 신진 정치인의 대결로 비쳐지고 있는 것이다.

노 후보가 개인적 능력을 강조하는데는 지난 4년간 국회 의정활동 내용이 성실했다는 판단이 들어 있다. 여기에 지지도가 낮은 소속 정당을 선거운동 전면에 내세우지 않으려는 계산이 보태져 있는 것 같았다. 이에 비해 강 후보는 낙후된 마포의 지역성과 서울시에서 익힌 실무능력의 결합에 중점을 두고 있다. 결국 마포갑 선거는 후보들의 행정능력 대결로 집약되는 양상이었다. 모두가 중앙정치의 구호로는 표를 모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선거전략이 유권자들에게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손쳐도, 선거운동의 내용면에서 국회의원 선거임에도 마치 마포구청장 선거를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는 점에선 많은 의구심을 갖게 했다. 국민 전체를 대변하는 국회의원 후보들의 선거운동은 분명히 자치단체장 선거와 달라야 한다. 하지만 마포갑에서는 전국적 정당이념 성향이 희석돼 있었다. 노 후보는 향수 속의 정통 야당 이미지에 안주하고 있었고, 강 후보는 보수이념보다 여당 프리미엄을 통한 실적을 강조한다. 선거승리를 위해 소속 정당 정체성의 해체마저 각오하고 있는 셈이다. 선거이슈가 지역 현안으로 휩쓸려갈 경우 정치영역은 점차 사라지고, 그저 효율성에만 몰입하는 행정과, 물질적 혜택에 관한 약속만이 남아 있게 된다. 그게 마포갑 선거만이 아닌 전체 4·9총선 후유증이 될까 걱정이 앞선다.

[이현우 서강대 교수]

◆ 이현우 교수 약력

▲1961년생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서강대 정치학 석사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정치학 박사 ▲현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현 한국정치학회 연구이사, 현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전문위원 ▲변화하는 한국 유권자(편저, 200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