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국립극단의 신작 ‘황색여관’은 가진 자와 못가진 자, 구세대와 신세대가 갈등 끝에 공멸하는 과정을 웃음을 섞어 신랄하게 풍자했다.

극작가 이강백, 연출가 오태석, 그리고 국립극단의 배우 백성희, 오영수, 김재건, 최상설, 김종구, 이상직, 서상원, 곽명화 및 객원 김지희씨. 그야말로 당대 최고의 연극계 스타들이 모였다. 하지만 스타일이 좀 다르다.

이씨는 우화적 알레고리 속에 날카로운 풍자를 담아내는 지적인 작가다. 극단 목화를 이끌면서 국립극단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오씨는 정치, 역사 등 민감한 주제를 즐겨 다루면서도 흥겨운 신명을 잊지 않는 한국적 놀이의 연출가다.

백씨를 비롯한 국립극단 배우들은 두 말할 필요없이 기본이 탄탄한 사실주의극에 최대 강점을 갖고 있다. 이들 삼자가 황사 가득한 벌판에 위치한 ‘황색여관’에서 처음으로 만났으니 어딘지 범상치 않아 보인다.

국립극단은 2007년 신작무대로 22일부터 4월8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이강백 작, 오태석 연출로 ‘황색여관’을 공연한다. 이씨가 당초 국립극장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쓰던 작품이지만 50년 축하기념으로 작품을 올리기에는 너무 비관적이어서 3분의 1정도 쓰다가 중단, 이번에 완성했다.

한 ‘엽기적인’여관에서 벌어지는 부조리한 살육극인데 대사나 등장인물, 장면 하나 하나가 그냥 넘어가기 어렵다. 뭔가 하나를 꼬아넣어 생각을 요구하고 있다.

손님들의 싸움을 부추겨 모두 죽은 뒤 금품을 챙기는 여관 주인 부부, 싸움의 와중에 이익을 얻어온 주방장, 장관출신 은퇴자, 변호사, 사업가 등 ‘있는’ 사람과 외판원, 배관공, 배선공 등 ‘없는’ 사람, 그리고 중립지대에 위치한 학생과 창녀들이 벌이는 갈등이 잔뜩 당긴 고무줄처럼 팽팽하다. 이 여관의 일꾼인 ‘못 생긴’ 처제가 끝없이 반복되는 살육을 막기 위해 애쓰지만 오늘도 허사다.

공연을 1주일쯤 앞둔 13일 과연 이 대본이 어떻게 무대화되고 있는지 국립극장 연습장을 찾았다.

연극은 인형으로 만든 시체가 여기저기 놓여있는 2층짜리 여관 안에서 시작한다. 지하에서 주인(오광수)이 빼곡이 머리를 내밀며 “X같네”를 연발한다. 그런데 이것이 욕으로 들리지 않는다. 좋아도 X, 싫어도 X다. X는 ‘즐거운’ 최상급 부사다.

부인(곽명화)은 빨리 서둘러 시체들로부터 돈과 물건을 챙기고, 손님을 받자고 서두른다. 그러나 주방장(이상직)은 ‘자립’을 위해 그만두겠다고 주인을 위협하고, 처제는 악을 고래고래 쓰며 “매일 사람이 죽어가는 이곳이 싫다”며 떠나려 한다. 주인부부는 이들을 달래며 “살육극의 책임은 손님들에게 있다”면서 “1명만 살려내면 여관을 넘겨주겠다”고 약속, 영업을 시작한다.

연습을 보던 오태석씨는 “낯설게 해, 아예 말의 의미 전달을 포기해야 해, 일상적으로 하면 안돼, 양식화 시켜야 돼”라고 따발총처럼 쏘아댄다. “이런 불가해한 상황을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겠어요. 속도를 빠르게 하고 감정을 뒤집어요. 낯선 속도에 황당한 연기, 정말 X같네라는 말이 나오도록 해야 해요. 그래야 관객들이 (재미있게) 볼 수 있습니다.”

오씨는 극작가 겸 연출가. 이강백씨와 오씨가 작품으로 처음 만난 것은 그 때문이기도 하다. 이 작품을 하며 이씨는 오씨에게 작품을 “수정하지 말아줄 것”을 부탁했고, 오씨는 이를 그대로 수용하면서도 표현은 자신의 ‘놀이방식’을 고수, ‘흥겨운 썰렁함’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씨는 “자유가 성취된 다음 평등 문제가 대두되기 마련이다. 많은 희생을 통해 민주화를 성취한 한국이 평등을 성취하려면 더 큰 희생과 질곡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며 “젊고 가난한 인간 군상과 (풍족한) 나이든 무리가 서로 믿지 못하고 하룻밤 사이 몰살되는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와 세대간 소통의 부재를 말하고 싶었다”고 작품 배경을 설명했다.

한편 원로배우 백성희씨는 “시대를 대변하는 연극이 필요하다”면서도 “연극은 어디까지나 예술인 만큼 시사적인 점을 너무 강조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02-2280-4115

김승현기자 hye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