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학예연구사는 누구인가. 전문가인가 미술행정가인가 아니면 전문인과 행정관료, 미술인과 미술인간의 상호 불신에 치이고 끼여서 욕을 뒤집어 쓰는 어정쩡한 존재들인가.’

지난 9일 만39세에 눈을 감은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사 이동석씨의 죽음이후, 고인이 남긴 ‘학예연구가 구보씨의 하루’란 글이 학예연구사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드러낸 내용으로 미술가에 긴 울림을 남기고 있다.

1999년 한 미술전문지 기고문에서 고인은 TV드라마등에서 매력적인 직업으로 묘사되는 학예연구사(또는 큐레이터)가 연구직인지 행정직인지 헷갈릴 정도로 과다한 잡무의 연속이라고 독백했다.

‘실제로 학예사는 〈잡예사〉라는 자조적 별칭이 불어있을 만큼 〈올 라운드플레이어〉로 생활한다. 연구자 디자이너 디스플레이어 출판편집전문가 교육담당자 소장품기록가 홍보담당자등 가히 〈슈퍼 큐레이터〉라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고인은 2일 새벽 출근에 앞서 자택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1주일여 의식불명끝에 9일 사망했다. 그는 지난달 기획전 ‘센스&센스빌리티’를 진행하던중 타 담당과의 마찰 및 이견으로 사표를 냈다가 거두었으며 새해 첫날 밤에도 전시 팸플릿용 글을 집필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패러디한 연작소설의 형태로 학예연구사의 일상을 낱낱이 기록한 고인의 글에도 드러나지만, 그의 죽음은 전시 기획및 조사 연구라는 전문업무외에 사무보조원없이 우편발송등의 일반업무까지 맡는 과다한 업무부담과 그에 따른 스트레스때문이라고 주위 사람들은 안타까워한다.

국내 미술관은 직제가 체계적으로 전문화 세분화하지 않은 데다가 순환 보직을 맡는 행정직 공무원과의 역할 분담이나 협조 및 교류가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다.

학예연구실의 행정인력 보강, 출판편집전문 홍보전문 등 준전문인력의 확보, 그리고 무엇보다 내부적인 장악력과 대외적인 방어력을 갖춘 관장의 일관된 의지와 역할을 일깨웠던 고인의 주장은 미술관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관계자들이 조목조목 되새겨봐야 할 고언이다.

신세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