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5일 갑작스럽게 퇴임한 김세용 전 경기주택도시공사 사장

경기도 최대 지방공기업이자 택지·산업단지 개발 및 주거복지 업무를 전담하는 경기주택도시공사(GH)의 수장이 이달 초부터 공석 상태다. 김세용 전 사장이 지난 5일 임기 10개월을 남긴 상황에서 돌연 퇴임했기 때문이다. 업무에 의욕적으로 임하던 김 전 사장의 구체적인 퇴임 사유는 아직까지도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공사 안팎에선 ‘경기도와의 갈등’이 유력한 조기 퇴임 이유로 회자되고 있다.

31일 문화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김 전 사장은 지난 5일 수원시 영통구 공사 2층 강당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그동안 경기도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신뢰받는 공기업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생각한다”며 “경기도의 행동대원처럼 행동하는 게 아니고 독립성을 갖고 전문성과 자율성을 꾸준히 확보할 것으로 기대한다”는 말을 남겼다. 통상의 기관장 퇴임사가 자신의 업적을 돌아보며, 임직원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는 내용으로 구성되는 점을 감안하면, ‘경기도’를 직접 언급한 김 전 사장의 ‘워딩’은 상당히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졌다.

1965년생인 김 전 사장은 고려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컬럼비아대 건축대학원에서 석사학위, 고려대에서 건축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중앙도시계획위원, 대통령 직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 한국도시설계학회장,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 등을 역임하며 업무적, 정치적으로 검증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에 대해 공사 안팎과 건설업계에서는 “김 전 사장이 자신의 오랜 건축 분야 노하우와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지분적립형 분양주택 도입을 골자로 한 주택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쳤지만, 지난해 말과 올해 초 본부장·보직 간부 인사 문제를 놓고 경기도와 갈등이 커지자 더 큰 파국을 막기 위해 사퇴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무성하게 퍼졌다. 경기도는 김 전 사장의 사임이 도 집행부와의 갈등 때문이라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부인했다. 하지만 김동연 경기지사가 직접 영입했던 김 전 사장의 사표가 제출 직후 빠르게 수리된 점, 김 전 사장이 퇴임을 미리 준비한 듯 고려대 건축학과 교수로 바로 복귀한 점 등이 의혹을 키우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김 전 사장은 박원순 서울시장 시절 SH사장을 지냈으며 2021년 박영선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의 주택공약 설계에도 참여하는 등 민주당 인사들과 교류가 폭넓은 인물”이라며 “민주당 도지사와 함께 일하다 퇴임하는 데, 흔한 감사와 격려의 인사도 없는 모습이 뭔가 부자연스럽다.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지난 2022년 12월 GH의 12대 사장으로 취임한 김 사장은 ‘지분적립형 주택’과 ‘모듈러 주택’ 도입에 앞장서며 경기도 주택정책에 새바람을 불어넣었다. 지분적립형 주택은 소득 중간계층인 4∼6분위의 무주택 서민들이 장기간에 걸쳐 적금을 넣듯 지분을 취득해 내 집 마련 기회를 제공하는 공공분양주택으로, 경기 광명시 학온주택지구와 3기 신도시 등에 확대 공급될 예정이다. 모듈러주택은 건설업계에 만연한 부실공사를 막을 수 있는 탈현장공법(OSC)으로 주목을 받았다. GH는 2023년 7월 용인 영덕 경기행복주택을 국내 최고층(13층) 모듈러주택으로 준공했으며, 3기 신도시에도 모듈러 특화단지를 조성해 1만 모듈 이상 공급할 계획이었다.

또한, 김 사장 재임 기간 GH의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10% 이상 늘었고, 고객만족도 평가에서도 역대 최고 점수를 기록했으며, 청렴도 등급도 높아졌다. 리츠 자산관리회사 겸영인가를 받아 부동산금융사업 기반을 다져놓은 점도 평가받아야 할 성과다.

한편, GH는 신임 사장이 선임될 때까지 이종선 부사장이 사장 직무대행을 맡아 운영된다. 신임 사장 공모 절차 진행과 검증·도의회 인사청문회 통과에만 수개월이 소요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GH의 사장 공백 상태는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노기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