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치와 사회가 지금보다 더 무질서한 시절은 없었다. 민주주의가 안정됐다고 인정받던 대한민국에서 이런 불확실성과 혼란을 겪을지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대통령과 국무총리를 대행하는 1인 3역을 하고 있다. 게다가 주요 국무위원인 행정안전부·국방부·법무부 장관은 공석이다. 정치 상황을 보건대 최 대행이 장관을 지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비정상적인 국정 운영이 벌써 석 달이 넘는다.

전대미문(前代未聞)의 국가 비상사태 속에서 여야 정치권은 위기를 권력 획득의 기회로 삼겠다는 얄팍한 정략에만 매달린다. 주말마다 열리는 탄핵 찬반의 광장 집회에서 격하게 선동하는 이들이 여당과 야당 국회의원들이다. 거대 양당은 헌법재판소에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헌재의 탄핵심판 결과에 승복하는 것이 당의 공식 입장이라면서도 광장에서 헌재를 비난하는 의원들을 제지하지는 않는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당연히 헌재 결정에 승복한다고 말하지만, 장외에서는 대통령 탄핵은 국민의 뜻이라면서 그것이 정의라고 외친다. 양당은 헌재 결정 후에 당내 의원들의 주장이라며 입장을 달리할 여지를 남겨 두고 있다.

이 와중에 다수당인 민주당은 국민의힘 죽이기를 시도한다. 지난 14일 대표발의자 박홍근 의원 등 17명의 민주당 의원이 정당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주요 내용은, 현직 대통령이 파면되거나 형이 확정되면 정부가 소속 정당의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해야 한다는 것과 그 정당은 직후 선거에 후보자를 추천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법안은 헌법 가치와 질서를 훼손할 때 제한적으로 가능한 위헌정당해산 제도의 취지에 맞지 않으며, 후보자 공천을 금지한다는 것도 국민의 선택권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위헌적 요소가 다분하다.

국민의 40% 가까이가 지지하는 정당을 해산시키겠다는 의도다. 민주당이 법안을 통과시킨다 해도 거부권이 행사되고 재의결이 불가능함을 발의한 의원들은 잘 알 것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런 법안 제출에 대해 아무런 간섭도 않는다. 결국, 이 법안은 조기 대선을 대비해 국민의힘을 탄핵 책임으로 묶어두려는 이슈 전략에 불과하다. 입법이 권력 획득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 외교정책이 우려되는 터에 한국이 ‘민감국가 목록’(SCL)에 포함됐다고 한다. 지난 1월 초에 조 바이든 행정부가 민감국가로 지정하기까지 2개월 이상 우리 정부는 알지도 못했단다. 정부의 외교 능력 부재와 미국 내 인적 네트워크 실상을 보여준다. 그나마 외교 문제가 아닌 미국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의 보안과 관련된 문제라니 다행이다.

가관인 것은 여야 정당의 반응이다. 국민의힘은 국정을 장악한 이재명 대표의 친중·반미 태도가 원인이라며 민주당 탓을 한다. 민주당은 보수 세력이 핵무장론을 주장하고 계엄 사태로 인해 정국이 불안한 것이 이유라고 국민의힘을 비난한다. 모두 네 탓 타령만 한다.

여야가 공동으로 대처해야 하는 국가 이익에 대해서도 서로 비방의 기회로 삼을 뿐이다. 정치의 기능이 사회 갈등의 해결과 통합이라는 말은 한국에서는 교과서에만 있다. 정치인들에게는 권력만 보이고 국민은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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