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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주영이 만난 ‘세상의 식탁’ - ‘채식주의자’가 불편한 이유

최근 인기 연애 프로그램에서 자신을 ‘채식주의자’라고 소개한 출연자가 화제가 됐다. 출연자는 ‘페스코테리언(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되 유제품과 달걀, 생선을 섭취하는 채식주의자)’이라고 했지만 가죽 제품을 착용하고, SNS에 자장면과 라면을 먹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온라인상에서는 “진짜 비건이 맞느냐” “가짜 비건 아니냐”는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흥미로운 점은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비건의 개념을 자연스럽게 접했다는 것이다.

누군가 비건을 선택하는 이유는 환경보호, 동물 애호, 건강관리 등 다양하다. 하지만 한국에서 비건을 실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식에는 비건 메뉴가 많을 것 같지만, 막상 비건과 식사하려면 현실의 장벽이 존재한다. 대부분의 국물 요리는 멸치나 사골 육수를 사용하며, 김치에는 젓갈이 들어간다. 달걀과 유제품은 단백질 공급원으로 흔히 쓰이며, 꿀조차도 벌을 착취한 식품이라 비건에게는 금기 식품이다.

패션에서도 마찬가지다. 비건 레더(인조가죽) 제품은 늘고 있지만, 가죽의 내구성과 고급스러움을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 운동화 역시 대부분 가죽을 사용하고, 겨울 방한용품일 경우 오리털이나 거위털을 빼고 생각하기 힘들다. 흔하게 먹는 라면에도 동물성 성분(육수 엑기스)이 포함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철저한 비건들은 외식을 피하고 도시락을 직접 준비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개인의 선택인 비건이 왜 논란이 되는 걸까? 이는 비건 개념이 내포한 ‘도덕적 우월성’이 불편함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비건이 동물을 사랑하고 환경을 지키는 것은 훌륭한 일이지만, 육식을 하는 사람에게는 상대적으로 자신이 비윤리적 존재로 보일 수 있다. 비건이 채식을 강요하지 않더라도, 존재 자체로 반발을 야기하는 구조다. 때로는 이러한 불편함을 희석하려고 ‘패션 비건’이라며 비판하기도 한다. “진짜 비건이면 가죽 가방은 왜 드는 거지?” 같은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단일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강조하며 ‘동일성’을 중시해왔다. 식당에서 메뉴 통일을 미덕으로 여기고, 복잡한 주문보다는 단순한 선택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글로벌 브랜드인 스타벅스나 맥도날드 등에서는 개인의 취향을 세분화하여 다양한 옵션을 제공하고 있다. 우유는 두유로 바꿀 수 있고, 알레르기 유발 성분인 계란이나 유제품을 포함하지 않은 소스를 선택할 수 있다. 항공사 기내식만 해도 20가지가 넘는 특별식 옵션을 제공하며, 채식만 해도 여러 가지로 제공된다. 종교나 질환, 영유아 등 다양한 승객의 필요를 아우르기 위한 선택지다. 사회가 다양성을 얼마나 수용하느냐에 따라 비건을 바라보는 태도도 달라질 수 있다.

유럽과 북미에서는 비건이 단순한 식습관을 넘어 윤리적·환경적 라이프스타일로 인정받고 있다. 영국에서는 노동재판소가 ‘윤리적 비건(Ethical Veganism)’을 법적으로 보호해야 할 신념으로 판결했으며, 독일에서는 공공기관과 학교에서 비건 옵션을 제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국에서는 비건이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이자 비즈니스로 자리 잡았고, 비욘드미트와 임파서블 푸드로 대표되는 대체육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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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환경보호와 건강한 식습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비건이 하나의 선택지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중요한 것은 비건이든, 채식주의자든, 육식을 즐기는 사람이든 서로의 선택을 존중하는 태도다. ‘완벽한 비건이 아니면 가짜’라는 시선보다는, 각자의 방식으로 지속 가능한 소비를 실천하려는 노력을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서울대 웰니스융합센터 책임연구원

■ 한 스푼 더 - 채식의 세부 유형

채식주의자(vegetarian)와 비건(vegan)은 혼용되지만, 실천 정도와 이유에 따라 다양한 유형으로 나뉜다. 위쪽의 이미지에서 보듯 채식주의자는 프루테리언, 비건, 락토, 오보, 락토-오보, 페스코, 폴로, 플렉시테리언 등으로 세분화된다. 프루테리언은 비건보다 더 엄격하게 과일만 섭취하며 플렉시테리언은 필요에 따라 육식을 한다. 이러한 유형에 정답은 없으며,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선택이 다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