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 공감하고 ‘깨달음’ 주니… 100년 넘은 작품도 다시 뜬다

이미지 크게보기

■ 이 책, 갑자기 왜 떴지… ‘문학서 역주행’ 추적

국내문학 ‘모순’ ‘구의증명’ ‘급류’
27년 된 양귀자 ‘모순’ 4위 차지
‘사랑’ 속에 숨겨진 인간관계 풀어

세계문학 ‘싯다르타’ ‘면도날’등
힙불교 영향에 ‘싯다르타’ 등 인기
인생의 고뇌 속에서 성장 그려내

지난해 10월 소설가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으며 그의 작품들이 베스트셀러 순위를 뒤덮었지만, 그 사이에서도 ‘역주행’ 신드롬을 일으키며 꾸준히 독자들에게 사랑받은 소설들이 있다. 5년간 역주행해 지난해 상반기에는 소설 분야 1위까지 달성한 양귀자 작가의 1998년 작 ‘모순’(쓰다)이 대표적. 베스트셀러를 넘어 이젠 스테디셀러로 가고 있지만, 출판계에서는 여전히 ‘흥행 미스터리’로 불리는 역주행 작품들을 추적해봤다.

◇‘모순’ ‘구의 증명’ ‘급류’…사랑의 외피, 청춘의 방황을 그리다

한강 작가의 작품이 수개월간 베스트셀러를 점령했던 시간이 지나고 한국문학에는 어느덧 다양한 작품이 상위권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 4위에 오른 양귀자 작가의 ‘모순’과 7위에 오른 정대건 작가의 ‘급류’(민음사), 30위권을 오르내리는 최진영 작가의 ‘구의 증명’(은행나무)은 ‘구간’이다. 1998년생이 읽는 1998년 작 소설로 유명한 양 작가의 책은 물론 최 작가의 책도 출간된 지 10년이 넘었다. 정 작가의 작품은 나온 지 3년이 되어 간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이 작품들이 다시 사랑받는 이유는 뭘까. 우선 내용적 측면에서 공통점이 보인다. 바로 ‘사랑’이다. 세 작품 모두 전면에 청년의 사랑을 내세웠다. ‘모순’ 속 주인공 ‘안진진’은 두 명의 상반된 성격과 배경을 지닌 남자 사이에서 사랑을 고민하고, ‘구의 증명’을 이끌어 나가는 두 주인공 ‘구’와 ‘담’ 역시 서로를 향한 절절한 사랑을 진술한다. ‘급류’ 속 두 주인공도 10∼30대까지 이어지는 길고 긴 첫사랑의 궤적을 보여준다.

그러나 사랑이 전부는 아니다. 세 권의 소설 모두 20∼30대 독자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이에 대해 백다흠 은행나무 편집장은 “청춘을 대변하는 새 시대의 아이콘과 같은 작품들”이라고 말했다. 민음사 편집부장인 박혜진 문학평론가는 “사랑이라는 외피를 쓰고 있지만 결국 사랑이란 인간관계의 다양한 측면을 종합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라며 “처음엔 사랑하는 관계에 몰입하게 되지만 나중엔 모두가 겪는 관계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고 설명했다. 좌충우돌하는 사랑 이야기는 관계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청춘들에게 공감을 자아내고, 입소문을 타게 된다는 것이다.

이미지 크게보기

◇‘싯다르타’ ‘면도날’ ‘자기 앞의 생’…방황하라, 그럼 마침내 깨달음을 얻으리니…

그럼 세계문학 작품들은 또 어떨까. 출간된 지 최소 수십 년, 심지어 100년도 넘은 작품들 중 계절마다 새롭게 발굴돼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책이 있다. 심지어 초역도 아니다. 지난 한 해 동안 꾸준하게 월간 베스트셀러 상단에 자리했던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 지난 여름부터 시작된 인기가 계속되고 있는 서머싯 몸의 ‘면도날’(이상 민음사), 프랑스의 국민작가 로맹 가리가 필명 에밀 아자르로 쓴 ‘자기 앞의 생’(문학동네)이 그 주인공이다. 세 작품 모두 흥행 자체는 외부 요인에서 시작됐다. ‘싯다르타’는 지난해를 강타했던 ‘힙불교’에서 영향을 받았고 ‘면도날’도 배우 문가영의 추천이 도화선이 됐다. ‘자기 앞의 생’도 여러 명사나 유튜버 등의 추천이 있었다.

하지만 조금 더 들어가 보면, 세계문학 3편의 교집합에는 ‘성장’이 숨어 있다. 카스트 제도 최상위 계층인 브라만으로 태어났지만 싯다르타는 고통스럽게 진리를 찾아 헤매다 깊은 가르침을 얻는다. 자신을 이해하지 못했던 스승 석가모니처럼 자신도 아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고 자각한다. ‘면도날’의 주인공 ‘래리’는 1차 세계대전에서 동료를 잃고 돌아와 10년 넘도록 탄광, 수도원 등을 전전하며 깨달음을 좇는다. 이는 안정적인 결혼을 선택한 그의 전 약혼녀 ‘이사벨’과 대비되며 어떤 삶이 더욱 가치 있는 것인가에 대한 고뇌를 전해준다. ‘자기 앞의 생’은 또 어떤가. 어린 화자 ‘모모’와 그를 돌봐주는 ‘로자 아줌마’의 관계를 통해 상실과 사랑의 의미를 짚는다. 명쾌한 설명의 유튜브 영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민음사의 박혜진 세계문학 편집자는 “추천으로 시작된 열기가 ‘역주행’으로 이어지는 것은 독자 스스로 읽어야 할 이유를 찾았기 때문”이라며 “쇼펜하우어와 니체를 다룬 자기개발서를 넘어 독자들이 문학에서도 인생의 의미를 찾았다고 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

문화일보

문화일보

‘방황’ 공감하고 ‘깨달음’ 주니… 100년 넘은 작품도 다시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