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타이 탱크, 깡통 지뢰밭… ‘무기가 된 일상’ 겨누다

이미지 크게보기 허보리의 ‘부드러운 K9’. 양복과 이불솜을 사용해 바느질해 완성한 총길이 5m의 탱크다. 무기의 형식과 목적을 탐구한 작품들이 군사주의적 문명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서울대미술관 제공

■서울대미술관 ‘무기세 展’

허보리·최재훈·갈린도 등 국내외 작가 120개 작품
일상 오브제-살생 도구 결합시켜 ‘현대 폭력성’ 비판
미디어 속 전쟁·종교적 갈등에 관한 물음 던지기도

친근한 미키마우스 인형을 찬찬히 보니 방독면이다. 앤디 워홀의 캠벨을 오마주한 듯한 깡통들은 지뢰였다. 첨단 장비로 무장하고 서로 마주한 두 군인. 손에 든 상징물에서 각각 가톨릭·이슬람 신자임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넥타이와 양복으로 만들어진 탱크, 실탄 자국이 가득한 스테인리스 거울까지….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무기세(武器世)’는 무기를 통해 우리의 현재를 성찰하는 날카로우면서도 흥미로운 전시다.

무기세는 미술관이 고안해 낸 말로, 인간의 활동이 지구 생태계를 변화시키는 지질시대라는 뜻의 ‘인류세(人類世)’, 자본주의 체제의 팽창이 사회와 자연에 끼치는 영향을 조명하기 위한 ‘자본세(資本世)’와 더불어 21세기를 규정하는 ‘시대적 개념’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즉, 현재를 무기 생산, 기술 개발, 전쟁 등 복잡한 군사-산업 복합체가 환경과 인류에 광범위하게 작동하는 시대로 바라본 것이다. 국내외 작가 18명이 참여해 120여 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무기의 형식과 목적을 탐색하고, 질문을 던진다.

이미지 크게보기 안성석의 ‘꺼지지 않는 알람 소리’. 서울대미술관 제공

◇우리를 향한 무기… 우리 안에 도사린 무기 = 군사주의적 문명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또 경고하기 위해 ‘무기세’라는 개념의 고안에서 출발한 전시는 우리를 향한 무기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 도사린 무기까지 끄집어내 실체를 밝히려 한다. 그 지점이 바로 ‘무기를 들지 않게 하는 힘’ 즉, 진정한 ‘예술의 힘’이 발현되는 자리다. 살생을 위한 무기가 얼마나 자주, 그리고 많이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 한 장면이 되는가. 전시의 1부는 일상적 사물과 무기의 형식을 결합한 작품들로 우리의 현실, 즉 ‘무기화된 일상’을 폭로한다.

예컨대 허보리 작가의 ‘부드러운 K9’과 ‘부드러운 M2’는 남성의 양복과 넥타이로 만든 탱크와 총을 통해 전쟁과 폭력을 야기하는 현대 사회의 치열함과 경쟁을 꼬집는다. 의복으로 제작된 무기들은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이미지를 벗어나 말랑말랑한 형태로 변형되는데, 작가는 이를 통해 폭력적 체제 비판과 함께 평화와 부드러움을 제시한다. 안성석의 영상 ‘꺼지지 않는 알람 소리’는 전쟁 기념비의 영웅 이미지를 반전시켜 경각심을 준다. 탄피가 떨어지는 총소리와 시계 알람 소리가 겹쳐지고, 군복을 입고 생을 마감한 처참한 군인들의 모습을 부각시킨다.

이미지 크게보기 최재훈의 ‘나의 역사적 상처 시리즈’ . 서울대미술관 제공

◇뉴스, 영화, 소셜미디어…‘볼거리’가 되는 무기 = ‘스펙터클로서의 무기’를 보여주는 전시 2부에선 최재훈과 이용백, 노영훈 등의 작품이 눈길을 끈다. 무기의 시각적인 형식과 기능에 집중한 작품들은 무기의 파괴력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고찰하고, 상업적 콘텐츠로 소비되는 무기가 전쟁과 폭력을 오락화하는 데 일조한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최재훈 작가의 ‘나의 역사적 상처 시리즈’는 최 작가가 스테인리스 거울에 비친 자신을 향해 실탄을 사격한 행위의 결과물이다. 파이고 일그러진 거울 위에선 얼굴과 풍경도 자연스럽게 왜곡돼 비쳐진다. 이를 통해 작가는 자신과 타자의 상처를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 질문한다.

이용백 작가의 ‘엔젤-솔저’는 화려한 조화로 가득 찬 꽃밭 속에 꽃무늬 군복으로 위장한 군인들이 있다. 언뜻 화려하고 아름다운 공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군인들이 잠복한 전쟁터다. 전쟁의 위협이 내재한 한국 사회의 모순적 상황과 닮았다. 노영훈 작가는 친근하고 익숙한 이미지의 반전으로 무기의 위협성을 경고한다. 미키마우스 얼굴을 한 방독면(‘미키’), 앤디 워홀의 캠벨에 숨겨진 지뢰(‘M3 캠밸 스프’) 등은 개개인의 일상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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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노영훈의 ‘미키’(위)와 ‘M3 캠밸 스프’. 서울대미술관 제공

◇파괴적 기술의 목적지는 결국 어디인가 = 전시 3부의 주제는 ‘무기, 낯익은 미래’다. 무기로 인해 파괴된 땅과 고통받는 생명에 집중한다. 진기종 작가의 대표작 ‘자유의 전사’가 대표적. 작품은 전투에 임하는 두 종교인의 모습을 포착했다. 가톨릭 신자인 미군의 특수부대원과 이슬람교 신자인 알카에다 부대원이 무장한 채 서로 마주 보고 앉은 극사실조각은 오늘날 갈등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종교적 믿음이란 무엇인지 질문한다.

과테말라 출신 작가 레지나 호세 갈린도가 직접 출연해 완성한 영상 ‘그림자’도 주목된다. 여기서 그는 독일의 주력 군사수출품 중 하나인 레오파르트 탱크로부터 전력 질주해 도망치는 퍼포먼스를 펼친다. 이를 통해 작가는 독일과 같은 선진국 혹은 제조 강국의 방위산업이 내전 등으로 위험에 처한 나라들을 더 절망적인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음을 폭로한다. 또 전쟁과 군사 독재, 민주화를 겪은 한국의 세대를 조각으로 연결하는 오제성 작가의 ‘조각에 대한 기억’, 미군 사격장으로 사용된 경기 화성군 매향리의 풍경을 담은 강용석 작가의 ‘매향리 풍경’, 핵에너지에 오염된 존재들을 좀비로 은유한 방정아 작가의 ‘핵좀비들 속에서 살아남기’ 등이 평화를 파괴하는 무기와 파괴적인 기술의 목적성을 사유하게 한다.

전시는 5월 4일까지 계속되며, 큐레이터와 함께하는 전시 관람이 이달 26일과 내달 26일, 4월 24일 오후 2시부터 3시까지 진행된다. 관람은 무료.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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