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티’가 된 건 행운… 인간 본성 알게됐죠”

이미지 크게보기 재미 저널리스트인 안희경 작가가 지난달 말 문화일보에서 이민자로서 겪고 마주했던 차별과 혐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백동현 기자

■ ‘인간 차별’ 펴낸 안희경

사회 주류는 정체성 고민 안해
이주민 등 소수의 목소리 조명
누구나 느낄 ‘초라함’ 끄집어내

제러미 리프킨 등 석학들 만나
인류와 문명 관한 질의응답도

“저도 처음엔 맨땅에 헤딩이었어요.”

놈 촘스키, 재러드 다이아몬드, 제러미 리프킨 등 세계적인 석학들을 만날 수 있었던 비결 같은 것은 없었다. 낯선 땅 미국으로 떠난 저널리스트 안희경은 오늘날 인류의 미래와 문명에 관해 묻기 위해 정성 어린 질문을 일일이 정리해 이메일을 보냈고 응답이 오길 기다렸다. 그렇게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와 ‘문명, 그 길을 묻다’ ‘사피엔스의 마음’이라는 3부작의 인터뷰집을 통해 전문 인터뷰어로 자리매김한 그가 최근 귀 기울이는 목소리를 보면 퍽 낯설다. 경기 안산시에 사는 고려인 아나스타샤, 서울 용산구에 사는 모로코인 아미르, 미국에서 한글학교에 다니고 있는 자신의 자녀들까지. 촘스키나 리프킨과 비교하면 평범해 보이는 이름들이지만 안희경은 이제 큰 목소리에서 나아가 세계 사회에 촘촘히 박혀있는 이 소수의 목소리에 주목한다.

최근 신간 ‘인간 차별’을 출간한 안 작가를 문화일보에서 만났다. 약 10개월 만에 한국을 찾은 그에게 그사이 가장 큰 변화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등장으로 그를 포함한 한국 이민자들이 체감하는 변화가 있다. 바로 한국행 비행기 표 가격이 내려간 것. 그는 “미국을 떠나면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 같다는 이민자들과 학생들의 불안감 때문에 한국으로 오려고 하지 않는다”며 “이런 것이 트럼프라는 존재의 증명”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이후에 한국을 포함해 세계 각지의 상징적인 변화라고 볼 수 있는 정체성 정치. 마침 그가 가져온 이번 책의 주제는 이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오로지 비주류(마이너리티)만이 느낄 수 있는 ‘차별’과 다른 이들과 구분되는 ‘정체성’은 그가 미국에 살면서 피부로 겪은 세계의 쟁점이다. “주류는 정체성을 고민하지 않는다”는 안 작가는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정책을 결정하는 이들은 모두 주류이기 때문에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없다. 그래서 누구나 느끼는 초라함이라는 감정과 그것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끄집어내고 싶었다”고 책을 집필한 배경을 전했다.

소수자의 의미는 더는 인종과 젠더로 구분되지 않는다. 다국적, 다인종 사회로 변모하면서 정체성의 개념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이 때문에 차별의 양상 또한 더 복잡해졌다. 고려인 아나스타샤는 부모가 모두 한국에서 일하고 자신의 뿌리가 한국에 있다고 여기고 있음에도 자신이 태어난 우즈베키스탄과 현재 사는 한국 모두에서 외지인으로 여겨진다. 이주노동자가 늘어나면서 이제 출신 국가는 마치 계급처럼 이들을 나누고 사회적 대우와 위치도 다르게 한다. 이들의 사연을 책으로 옮겨낸 안 작가는 “인종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개인들이 개별 개체로서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려 했다”며 “우리가 어떤 범위를 갖고 사는지에 대한 고민을 확장하고 싶었다”고 했다.

지난 20여 년간 미국에서 생활하며 시대의 지성을 인터뷰할 기회가 열리기도 했지만, 이민자로서 차별과 혐오를 온몸으로 겪어내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다. 그 수많은 성취와 좌절 속에 그에게 가장 큰 행운은 “마이너리티라는 깨달음”이다. 주류는 정체성을 고민하지 않는 세계에서 비주류가 된 순간, 그의 눈앞엔 고유한 사람들과 삶들이 있었다.

“미국에 가서 비로소 우리가 언제든지 무시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제야 인간의 본성을 알게 됐고 사회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신재우 기자 shin2roo@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