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선택적 속도전’과 마은혁 논란

이영조 시장경제와민주주의연구소 이사장

독일의 사회학자 고(故) 니클라스 루만은 “민주주의는 결정되지 않은 결과에 대한 동의”라고 했다. 결과가 미리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결과에 이르는 절차와 과정이 정당하다면 좋든 싫든 이를 수용하는 체제라는 것이다.

절차적 정당성이 사실상 전부인 것은 사법적 판단도 마찬가지다. 이런 점에서 각종 탄핵 사건과 위헌심판 사건으로 세간의 이목이 쏠리고 있는 헌법재판소의 최근 행보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한둘이 아니다. 스스로 절차적 정당성을 훼손하는 선택을 거듭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상한 점은 마치 헌재의 시계가 2개인 것처럼 선택적인 속도전을 벌이는 모습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심리는 지금까지는 오후 2시부터 3∼4시간 진행했으나, 오는 6일부터는 변론기일에 오전 10시부터 종일 진행한다고 한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특별기일까지 잡아 우원식 국회의장이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지 딱 한 달 만이던 지난 3일 위헌 여부를 선고할 예정이었다.

윤 대통령 탄핵심리나 마 후보자 건은 더불어민주당이 빠른 진행을 원하는 것이다. 반면,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과 같이 민주당이 그간 정략적으로 추진한 무수한 탄핵 건은 결론이 뻔한데도 시간을 끌었다. 민주당 구미에 맞는 사건에만 속도를 내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특히, 마 후보자 건 선고를 서두른 건 법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았다. 최 권한대행이 마 후보자를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하지 않은 일을 심판하는 일인데, 그에 앞서 한덕수 전 권한대행 겸 총리 탄핵심판부터 다루는 게 맞다는 것이다. 한 총리가 탄핵소추되지 않았다면 최 권한대행 사건은 없었을 텐데,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이 적법한지는 따지지도 않고 ‘대행의 대행’이 한 행위의 위헌 여부를 가리려고 하니 순서가 바뀌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선택적 속도전이 아니더라도 헌재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가진 사람이 많다. 좌 성향 법관 모임 ‘우리법연구회’ 출신인 문형배·정계선, 우리법연구회 후신 격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 이미선 재판관 등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의 친분이나 북한 관련 SNS 글, 남편·여동생의 소속이나 정치적 활동 등으로 편향성 시비에 휘말려 있다. 마 후보자 역시 우리법연구회 출신으로, 사회주의 혁명조직 가담 경력이 있다고 한다. 국민의 신뢰를 받기 어려운 헌재 구성이다.

이 때문에라도 헌재는 절차적 정당성의 확보에 더 신경 써야 한다. 그러잖으면 헌재가 선고해도 국민이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 그때는 정말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도 법치도 다 무너지는 두려운 상황이 빚어질 것이다. 다행히 마 후보자 건 선고는 미뤄졌다. 예정된 선고 2시간 전에 최 권한대행의 요청을 받아들여 오는 10일 변론을 재개하기로 했다. 윤 대통령 탄핵 건도 국민 다수가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공정한 절차를 밟아 심리해야 한다.

국정 혼란을 하루속히 끝내기 위해 헌재가 서두르는 것은 좋다. 그렇다고 졸속이나 절차적 흠결로 국민이 헌재의 판단을 받아들이지 않아 더 큰 혼란이 야기되는 일은 피해야 할 것이다. 헌재는 “천천히 서두르라”(Festina len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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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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