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신간 ‘다문화, 영화에서 길을 찾다’

"다문화 국가로 진입을 앞둔 현재, 종족적 민족주의는 자칫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누군가는 발칙한 주장이라며 손사래를 칠 법하다. ‘한민족’을 강조했던 대한민국의 정서와 좀처럼 접점을 찾기 힘든 주장인 탓이다.

하지만 2025년 대한민국은 이미 다문화 사회의 정착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2023년 기준 국내 외국인 수는 246만 명으로, 국내 총인구 대비 역대 최고치인 4.8%에 이른다. 대한민국 원주민의 감소와 다문화 이주민의 증가로 이르면 올해 안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다인종, 다문화 국가(총인구의 5% 이상)로 진입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더 나아가 2030년, 대한민국 인구의 10% 정도는 다문화 가족의 구성원이 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 13일 나온 신간 ‘다문화, 영화에서 길을 찾다’(저자 고규대·슬:B 펴념)의 저자는 "국가 간 이동이 자유로워진 지금, 우리는 획일적인 민족 정체성을 강조하는 대신 다민족·다문화 국가로서의 민족주의 개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겉으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안으로는 뿌리 깊이 자리 잡은, 이민자의 국가와 인종, 피부색, 출신 등에 순위를 매기는 사고방식도 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머리로 받아들이는 당위와 가슴으로 품는 이해의 온도차는 크다. 국제 난민 문제와 국내 외국인 범죄를 다룬 뉴스에 몹시 겁먹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이 가질 수밖에 없는 무서움과 불안함에 공감하면서, 대중에게 익숙한 영화·드라마 콘텐츠를 통해 대한민국이 왜 다문화 사회로 가게 되는지, 다름은 왜 틀림이 아닌지, 낯설 뿐이지 무서운 건 아니라는 것을, 더 이상 ‘한민족’이 ‘한 민족’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넌지시 알려주고 공존하기 위해 우리가 새롭게 세워야 할 국민 정체성은 무엇인지를 자분자분 설명한다. 아울러 실제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합리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방향을 제시한다.

이 책은 총 5개 챕터로 구성된다. 다문화 가정 아이의 이야기를 담임 선생님과의 관계 속에서 풀어낸 ‘완득이’와 국제 결혼에 대한 편견을 담은 ‘하노이 신부’를 통해 우리 곁에 부쩍 가까이 다가온 다문화 가족의 삶을 들여다보고, ‘나의 올드 오크’와 ‘방가? 방가!’를 통해서는 대한민국을 찾아오는 외국인들을 난민 혹은 이민의 관점으로 나누어 바라본다.

이미지 크게보기 고규대 영화 평론가 겸 이데일리 디지털미디어센터장.

아픈 한국 현대사 속에 다문화 코드를 녹인 ‘국제시장’을 다루면서는 연출자인 윤제균 감독의 이야기도 들어본다. 주인공이 파독 광부, 간호사로 일했던 설정을 넣은 것에 대해 윤 감독은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반세기 전 머나먼 타국에서 땀 흘려 돈을 벌어 고국의 가족들을 부양한 우리의 부모님,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를 생각해본다면 그들을 경시하거나 차별하는 마음은 조금은 없어지지 않을까"라고 되묻는다.

‘무질서 혹은 타질서, 다양성의 공간’이라는 제목의 네번째 챕터에서는 이방인에 대한 심리적 경계를 담은 ‘범죄도시’에 대해 이야기한다. 실제 대림동에서 발생했던 중국 동포 범죄를 소재 삼은 이 영화에 대해 강윤성 감독은 "영화 중·후반부에 마석도와 형사들이 식당에서 중국 동포에게 ‘피해사례와 용의자 목격 시 신고’를 당부하며 "저도 여기 주민이에요 아시잖아요"라고 말한다. 이 장면에서 얘기하고자 했던 것은 결국 가해자, 피해자, 경찰 모두 같은 커뮤니티에 속한 주민이란 것이다. 마석도의 진정 어린 설득에 결국 피해자들도 용기를 내서 경찰을 도와주기로 하는데, 이게 진정한 다문화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이데일리 디지털미디어센터 센터장이자 영화평론가인 저자는 30여년 간 주간지, 월간지, 스포츠지, 경제지를 넘나들며 영화, 방송, 음악 등 대중문화를 취재했다. 호기심 많은 성격 덕분에 인공지능(AI), ESG, 다문화, 시니어 등 변화하는 트렌드에도 관심을 가졌고, 그 중 현실로 다가온 다문화 사회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이 책을 집필하게 됐다.

"다문화 시대에는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은 모두 ‘한국인’이라는 점이다. 어떤 민족이냐, 어떤 피부색이냐, 어떤 나라 출신이냐 하는 것은 공존의 시대에 갖춰야 할 국민 정체성의 조건으로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 스스로 긴 세월 확고하게 지녀온 단일 민족 국민 정체성의 껍질을 깨고 연대의 손을 내밀 때 대한민국과 우리 모두의 미래가 더욱 굳건해진다."

안진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