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산업부 규제 샌드박스 운영기관인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의 민병주(앞줄 오른쪽) 원장이 지난해 12월 5일 인천에 있는 아이지이 액화수소 플랜트를 둘러보고 있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 제공

■ KIAT, 규제샌드박스 700건 돌파

수소·로봇업체 등에 ‘실증 기회’
지난해만 133개 기업 특례승인

액화수소 생산 시작 ‘아이지이’
年3만t 제조 세계최대 규모 자랑

이동형충전서비스 제공 ‘티비유’
美기업과 손잡고 해외진출 나서

국내에서 액화수소와 관련해서는 현재 고압가스안전법상의 안전 기준이 완벽하게 정비되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액화수소 생산업체 아이지이(IGE)는 지난해 6월부터 액화수소 생산을 시작했다. 지난 2021년 9월부터 산업통상자원부의 ‘규제 샌드박스’ 실증 특례를 받아 사업을 준비해온 것이다. 아이지이가 인천에 세운 액화수소 플랜트의 생산 용량은 연간 3만t으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곧 다가올 수소 모빌리티라는 신시장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트럭에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해 ‘이동형 충전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 티비유는 전기차를 충전하기 어려운 교통 약자들이나 아파트처럼 충전 인프라가 부족한 곳에서 전기차를 편하게 충전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를 출시했다. 원래 전기안전 관련법상 이동형 ESS와 충전기에 대해서는 안전 검사 기준이 따로 없기 때문에 이 같은 서비스 출시는 실행이 어려웠다. 그러나 산업부 규제 샌드박스의 특례 적용을 받아 2022년부터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미국 전기차 충전 사업자 에너리지(Eneridge)와 손잡고 해외 시장 진출도 본격적으로 추진 중이다.

이미지 크게보기 티비유의 이동형 충전 서비스. 한국산업기술진흥원 제공

티비유와 아이지이가 사업 개시에 활용한 규제 샌드박스는 사업자가 신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출시하려고 할 때 시장에 먼저 출시해 실증할 수 있도록 현행 규제의 일부 혹은 전부를 적용하지 않고 잠시 유예해 주는 제도다. 규제 샌드박스를 이용하면 안전 조치, 개인정보 보호와 환경 보호 등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만 부여받고 최대 4년간 성능과 시장성을 검증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이 제도는 2019년부터 시작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금융위원회, 환경부 등 총 8개 부처가 운영 중이다.

1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산업부의 규제 샌드박스는 지난해 말 기준 승인 특례 건수가 누적 700건을 돌파했다. 이 같은 실적은 8개 부처 중 최초이며 지난 6년간의 규제 샌드박스 전체 승인 과제 1459건 중 약 절반을 차지한다. 또 산업부의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운영하는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은 지난해에만 133건의 특례 승인을 이끌어냈다. 전기차·수소·로봇·바이오 등 다양한 산업의 규제를 풀어 실증 기회를 부여한 것이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승강기 내부 CCTV 화면을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위험을 감지하여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모니터링 시스템이 KIAT의 조건부 실증 특례를 받기도 했다. 이를 통해 새로운 시장의 가능성을 점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또 산업부는 지난해 조선·로봇 분야에 기획형 규제 샌드박스를 시범 도입하기도 했다. 기존의 규제 샌드박스는 기업의 신청에 기반해 안건별로 규제를 해소하다 보니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는 덩어리 규제를 개선하는 속도가 더디다’는 의견도 있었기 때문이다. KIAT 관계자는 “이 같은 의견을 반영한 기획형 규제 샌드박스는 산업적 효과가 큰 아이템을 정부가 선(先)제안하고, 나중에 실증 사업자를 선정하는 방식의 정부 주도형 샌드박스를 새롭게 시도한 것”이라며 “이 제도는 앞으로 범부처로 확대 실시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KIAT는 또 지난해 14개 유관 기관들과 함께 규제특례지원단을 구성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규제 발굴과 기업 신청에 대한 신속 처리, 특례 기업에 대한 적합성 인증 획득과 표준화 지원 등 사업화에 필요한 후속 지원을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 기관 간 협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규제 샌드박스를 통한 사업 실증 기회 부여뿐만 아니라 금융지원도 강화된다. 지난해 산업융합 규제 샌드박스의 특례를 받은 기업들이 투자받을 수 있는 전용 펀드가 175억 원 규모로 조성된 데 이어, 올해는 특례 기업들의 연구·개발(R&D)을 지원하는 전용 사업 펀드가 20억 원 규모로 신설됐기 때문이다. 민병주 KIAT 원장은 “신시장을 빠르게 개척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불확실성을 걷어내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규제혁신이라는 도움닫기가 기업에 필요하다”며 “올해는 사업화, 법령 정비 등 특례 기업에 대한 사후 지원을 보강해 실질적인 성과를 창출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박준희 기자 vinke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