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규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지난 19일 대법원이 대법관 13명 전원일치 의견으로 11년 만에 기존 판례를 뒤집는 판결을 내렸다. 기업들이 재직 중인 사람에게만 지급하는 것처럼 일정한 조건을 붙인 정기상여금도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된다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내용이다. 통상임금은 각종 수당과 퇴직금 등을 산정하는 기준으로, 총급여 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이번 판결로 근로자의 실질임금이 장기적으로 증가할지는 알 수 없다.

재계는 이번에 결정된 방식으로 통상임금을 산정하면 기업들이 부담해야 하는 인건비가 연간 6조 원 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 대법원 역시 이례적으로 이번 판결에 대해서는 선고 시점 이후의 통상임금 산정부터 적용된다고 밝혔다.

고용주와 근로자 간 노동계약은 국가 경제의 근간을 형성하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며, 더 나아가서는 국가 경제의 장기적 글로벌 경쟁력도 좌우할 수 있다. 이렇게 중차대한 사안을 결정할 때는 국가적 특성 및 역사적 변천 과정도 고려하는 포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한국 기업들이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현재 급여 수준이 경제 규모에 비해 과연 적정한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현재 대·중소기업 구분할 것 없이 국내 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의 상대적 급여가 비슷한 경제 규모를 가진 외국에 대해 높은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근로자의 급여는 시장경제의 원칙에 입각해 결정되는 게 바람직하다. 총액 연봉이라는 단일 금액만 계약하는 외국 기업들과 달리, 한국 기업들이 임금을 결정할 때는 다양한 요인을 고려한다. 근로자를 채용하면 정년까지 고용을 보장해야 하고, 시장 상황에 따라 해고를 하기도 어려운 등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로계약상의 임금을 탄력적으로 경영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대기업에는 외국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다양한 복지 혜택도 있다. 자녀들의 대학 학자금을 4년간 지원하는 게 대표적이다. 이런 복지 혜택 역시 직원들 때문에 발생하는 비용이나, 근로계약에서는 임금으로 책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상여금 또한 상당히 다르다. 외국 기업들은 1년 동안 그 직원이 창출한 성과를 기반으로 일회성 지급을 하지만, 우리 기업들은 설과 추석 연휴에도 특별상여금 또는 명절 휴가비 등을 추가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정들 때문에 한국 기업들이 사용하는 총급여의 세부 항목들은 매우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우리 경제에서 통용되는 근로계약 및 급여 구조는 역사와 문화적 산물이기 때문에, 마치 칼로 무를 베는 것처럼 통상임금이라는 단어를 해석하는 법률적 판단만으로 결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마지막으로, 한국 기업들이 이번 대법원 판결을 완전히 수용해서 통상임금을 실질적으로 확대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기업들은 무한경쟁에서 생존해야 하기에, 이번 판결로 발생하는 경제적 비용을 감당하기 위한 다양한 해결 방안들을 강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궁극적으로 기업의 대응 방식에 따라서 이번 새 판례는 근로자들의 처우가 나빠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노동시장 역시 상품 및 서비스 시장처럼 정부의 간섭이나 법적 규제를 최소화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이미지 크게보기 박남규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