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종 고려대 국제대학원 특임교수, 前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

최근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는 중국산 철강 중 후판에 대해 잠정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기 위한 검토에 착수했다고 한다. 지난 7월 현대제철은 중국산 철강의 덤핑 행위를 제소하고 산업부가 10월 산업 피해 조사를 시작했다. 코로나19가 수그러드는 시점부터 지금까지 중국산 철강재는 국내에서 시장점유율을 크게 늘려 왔는데, 이번 조치는 이런 상황에 대한 대응으로 파악된다. 2025년 1월쯤 예비 판정이 나오게 되면 늦어도 2월에는 잠정 반덤핑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올해 1∼10월 중국에서 수입된 철강재는 735만5000t으로 2022년과 비교하면 37.3% 급증했으며, 수입량이 많은 후판의 경우 올해 수입량이 2년 전과 비교해서 80.5% 급증했다. 중국산 철강재가 국산보다 10% 이상 가격이 낮고, 특히 후판의 경우에는 25% 이상 낮은 가격으로 유통되기 때문이다. 그 여파로 현대제철은 지난 11월 포항 2공장 가동을 중단했고, 포스코 그룹도 7월 포항제철소 제1제강공장을 폐쇄했다. 동국제강도 일부 라인을 폐쇄한 바 있다. 중국발 철강 밀어내기 수출에 우리나라 철강회사들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중국의 철강 생산량은 압도적인 세계 1위일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나라의 생산량을 합친 것보다 많다. 세계철강협회에 따르면, 2023년 중국의 철강 생산량은 10억t에 이르는데, 2위인 인도는 고작 1억4000만t에 불과하다. 일본이 8700만t, 미국이 8000만t의 철강을 생산하니 한 거인에 여러 난쟁이가 뒤따라가는 형국이다. 중국은 생산된 대부분의 철강을 내수용으로 사용하고 10%만을 수출한다고 하는데도 수출량은 1억t에 이른다. 특히, 올해 중국은 내수경기 침체에 따라 1억1000만t의 철강을 밀어내기 수출하고 있다. 중국의 밀어내기 수출은 당연히 주변국의 큰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올해 튀르키예와 인도네시아는 중국산 철강 수입에 대해 반덤핑관세를 부과했으며, 올 한 해에만 총 28건의 중국산 철강에 대한 무역구제조치가 단행됐다. 이는 지난 3년 동안 8건에 그친 것과는 크게 대비된다.

중국의 밀어내기 철강 수출 공세가 격화된 가장 큰 이유는 국내 경기침체다. 특히, 건설 및 부동산 분야의 침체는 철강재에 대한 수요를 떨어뜨려 남은 철강이 해외로 저가 수출된다는 게 관련국들의 판단이다. 중국산 철강은 지금 중남미와 중동 및 동남아시아 시장을 초토화하고 우리나라에서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게다가 내년 1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 다시 불붙을 것으로 예상되는 관세전쟁으로 미국에 수출되지 못하는 철강은 우리나라와 같은 제3국으로 향할 것이다. 철강 수요처인 조선회사들은 품질은 엇비슷하나 가격이 저렴한 중국산 철강재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2000년대 초반에, 외환위기 때 파산한 한보철강 당진제철소를 방문한 적이 있다. 마치 에일리언처럼 생긴 제철 구조물이 그대로 방치돼 경악스러운 몰골이었다. 잠정 반덤핑 조치로 더 높은 가격으로 구매해야 할 전방산업에서는 불만이 커지겠지만, 포항과 광양에서 그런 모습을 본다는 것은 차라리 공포에 가깝다. 세계 각국이 중국의 과잉생산에 대한 공동 대책을 세워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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