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권기섭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11월 27일 서울 종로구 경사노위 사무실에서 가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노사 간 계속고용(정년연장) 합의의 시급성을 강조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 현안 인터뷰 - 권기섭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12일 대국민토론회서 공론화
이달내 공익위원 중재안 도출

노사정 대표 쟁점조율 거칠것
절실하게 사회적 대화 임해야

연공서열·노동 이중구조 심각
청년고용 영향 커 정교함 필요

연금개혁 논의 촉발된 상황서
더 늦출 수 없는 당면 문제 돼

“급속한 저출생·고령화, 2차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등으로 나타나는 여러 부작용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국가적 재도약을 이루기 어렵습니다. 노사 리더가 절실함을 갖고 사회적 대화에 임해줬으면 합니다.” 권기섭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위원장은 지난 11월 27일 서울 종로구 경사노위에서 가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노사를 대표해 참여하고 있는 한국노총과 한국경영자총협회 측에 절박함을 토로했다. 저출생·고령화 사회는 이미 눈앞에 와 있고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곳은 노동시장인데 노사 모두 ‘정년 연장(계속고용)’ 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대화에는 소극적인 태도만 보이기 때문이다. 노사정이 이 난제를 제대로 숙고·처리하지 못하고 논의가 중단되거나 여론에 떠밀려 잘못 처리될 경우 노동시장 전반, 특히 경영계에 미칠 파장이 크다.

경사노위는 지난 6월부터 노사정과 공익위원들이 참여한 가운데 총 10차례 전체회의를 열었지만 노사 간 간극만 확인했다. 양측 모두 노사 자율성을 강조하면서도 뚜렷한 리더십이 없고, 각자 내부에서 제기될 비판에 대한 부담이 커 먼저 중재안 혹은 양보안을 내기 어려운 구조다. 당면 과제인 정년 연장 문제 또한 비슷한 패턴으로 가고 있고, 그 사이 국회에서는 설익은 주장이 나오고 있다. 권 위원장은 계속고용 문제 합의가 일본보다 15년 정도 늦은 점을 고려해 노사정 대표자 간 결단도 고려하고 있다. 그는 “지금 유일하게 대화와 타협을 통해 의논할 수 있는 공간이 경사노위밖에 없다”며 “여기서도 뭔가를 이뤄내지 못하면 한국사회에서 당분간 상식과 협의·합리의 논리가 설 곳은 없다”고 강조했다.

―올해 말, 그리고 내년 초 가장 큰 노동 현안은 계속고용이다. 노사정 합의까지 고려한 타임 테이블이 있다면.

“관련 쟁점들은 다 나온 상황이라 지금부터는 결단의 문제다. 12월 12일 대국민 토론회를 하면 주요 쟁점들이 국민에게 공론화될 것이다. 또 12월 중으로 계속고용위원회에 참여한 공익위원들이 중재안을 도출할 것이다. 그 이후는 본격적인 노사정 조율 단계다. 심도 있는 대화를 해서 최대한 합의하고 쟁점을 최소화하는 과정을 거치는 게 필요하다. 노사정 대표자 회의 전 합의가 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결국 대표자들이 나서 최종적으로 결단할 필요도 있다. 경사노위에선 내년 1분기까지 마무리한다고 했지만, 1월 말까지 정리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계속고용 문제가 많이 공론화되고 국민의 기대 속도도 빨라져 더 빠르게 처리할 생각을 하고 있다.”

―한국의 저출생·고령화 현실을 고려하면 논의가 많이 늦었다.

“고령자 계속고용 논의를 해야 할 당위는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차고 넘친다. 급속한 저출생과 고령화, 2차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등으로 나타나는 다양한 부작용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국가적 재도약을 이루기 어렵다. 다만 방법의 문제다. 국민연금 수급연령보다 정년이 낮은 나라는 거의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도 한국이 유일하다. 65세 이상 고용률이 37.3%로 OECD 국가 중 최고지만 55∼65세 고용률은 주요국보다 낮다. 노인이 돼도 일하는 사람이 많지만, 일할 수 있는 시기에 은퇴자도 많은 셈이다. 일본은 2004년부터 ‘65세 고용확보조치 법적 의무화’로 준비를 해서 70세까지 고령자 고용확보 조치에 들어갔다. 그걸 고려하면 우리는 15년 이상 늦은 셈이다.”

―일본은 사용자에게 정년연장·정년폐지·계속고용(퇴직 후 계약직 재고용)을 택하게 했는데 한국은 어떤가.

“쉽게 보면 일본처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한국 노동시장의 특수성이 있다. 일본은 과거부터 근로자 정년이 정착돼 있었고 대기업과 원·하청 간 문제도 심하지 않다. 하지만 한국은 연공서열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연공급이 강하고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심하다. 이 두 가지 때문에 청년고용과 정년연장 간 상관관계가 크다. 대체로 기업 규모가 클수록 정년연장이 청년고용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문제 때문에 해법이 정교해야 한다. 특히 2013년 60세 정년연장을 하면서 임금피크제를 둘러싼 갈등으로 노사 모두 트라우마가 있다. 이런 문제들이 정년연장 논의 속도를 늦춘 면이 있다. 하지만 연금개혁 논의가 촉발됐고 저출생·고령화 문제가 당면해 더는 늦출 수 없다.”

―노사 간 이해관계 격차가 심해 논의 속도를 늦추고 있는데.

“노사정 모두 해법을 마련하자는 데는 공감하지만 구체적 방법론으로 가면 간극이 매우 큰 상황이다. 노동계는 선택적 재고용에 따른 고용연장·임금조정 등에 대한 고민이 크고, 경영계는 법적 정년연장 시 비용부담과 생산성 저하에 따른 기업경쟁력 약화, 청년세대와의 갈등 등을 우려한다. 다만 사회적 대화는 본질에서 절충과 타협의 미학이기 때문에 ‘이기고 지는’ 극단적 방식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노동계와 경영계 모두 리더십을 발휘할 때다. 리더의 의지, 절실함을 보여줘야 한다. 지금 경제가 위기 상황이고 변화 시기에 법과 제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은 모두 인식하고 있다. 노동시장 약자를 보호하고 노동이 존중받고 국가 경제가 살길을 찾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부탁드린다. 지금 유일하게 대화와 타협을 통해 논의할 공간이 경사노위 외에 없다. 여기서도 뭔가를 이뤄내지 못하면 한국사회에서 당분간 힘의 논리가 아닌 상식과 협의·합리의 논리로 정리될 곳이 있을지 의문이다.”

―국회에서도 계속고용에 대해 논의하지만 논의 내용이 좀 빠른 면이 있다.

“국회에서 관심을 갖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다만 2013년 논의되고 2014년 시행된 60세 정년연장 당시에도 임금체계 개편(임금피크제) 등 조처를 하도록 명시했지만, 입법적 미비로 시행되지 않거나 시행됐더라도 법적 분쟁에 시달려 법 취지가 훼손된 점을 상기할 필요도 있다. 경영계 입장에서는 최근 국회에서 논의되는 내용이 일방에게 유리한, 소위 말하는 포퓰리즘으로 인식할 수 있다. 기업의 임금부담 및 청년과의 일자리 충돌, 계속고용 제도화에 따른 정년 사각지대 해소 등 많은 고려사항을 인식해 노사정 대화를 통해 충분한 공론화와 쟁점 조율로 노사와 모든 국민이 지지할 수 있는 대타협을 도출해야 한다.”

―계속고용 외에도 경사노위에서 다루는 의제가 많다. 역대 정부에서 개혁을 외면했던 것 아닌가.

“개혁을 외면했다기보다 ‘개혁의 수순’이었다고 본다. 그만큼 개혁이란 것이 어렵다. ‘노동개혁 빅딜’ 이야기도 있지만 관련 시도는 2015년 ‘9·15 노사정 대타협’이 마지막이었다. 지금은 그때 같은 방식의 합의는 어렵다. 일단 노사정이 타협의 물꼬를 터야 한다. 지금과 같은 여소야대 상황에서는 노사정 합의가 더 중요하고, 조그만 것이라도 합의를 통해 해결하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여야 합의도 어려운데 노사정이 뭔가에 합의를 이뤄내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합의 과정들이 축적되고 공개되는 것도 중요하다. 여기서 충분한 협의를 하면 나중에 여야가 정치적 합의를 하는 상황에서 시행착오나 실수를 줄일 수 있다. 정부의 남은 2년 반 동안 설정된 의제 중 합의 가능한 것은 합의하고, 합의되지 않는 것은 안 된 대로 논의 결과를 도출해 정부나 국회에 전달하겠다.”

―경제 상황이 어려워 경영계 중심으로 근로시간 유연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근로시간 규제 면제) 이야기도 나온다.

“현 정부 초반에 추진했던 근로시간 개편과 관련해 정부도, 노사도 트라우마가 있다. 근로기준법(근기법)은 최소한의 기준을 정하는 것인데 법을 바탕에 두고 나머지 부분은 노사가 자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열어줘야 한다. 산업구조 변화 및 선진국 수준의 경제규모는 고용 형태 다양화와 근로 형태 유연화를 가져왔다.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에 대한 문제를 포함해 좀 더 유연한 근로시간 제도개선 문제는 근로자의 근로시간 선택권·건강권을 전제로 노사 간 충분한 협의를 통해 근로자와 기업이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방향으로 검토될 필요가 있다. 근기법을 적용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노사가 자율적으로 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 또한 계속 논의할 필요가 있는데.

“한국의 기업별 노사관계 특성에서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쉽게 해결하기 어렵다. 그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곳이 경사노위다. 노동계는 5인 미만 사업장의 근기법 전면적용·비정규직 남용 제한 및 차별 개선·초기업 단위 연대교섭체계 구축 등을 우선 논의주제로 제안한다. 경영계는 임금체계 개편을 위한 법 제도 개선 등 임금제도의 공정성 제고를 위한 개선을 제안한 상황이다. 양측의 근본적 논리 맥락은 ‘하후상박(下厚上薄)’과 ‘동일노동 동일임금’, 사회적 연대다. 대기업 임금인상을 자제하고 하청기업 임금을 올리자는 사회적 합의를 한다면 충분히 경사노위에서 할 수 있다. 노사 이견을 조율해 세부 의제가 확정되면 특위 산하 전문위원회에서 내년 2월까지 집중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다.”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기법 적용 문제도 큰 이슈다.

“현재 노동계가 경사노위 내 ‘지속 가능한 일자리와 미래세대를 위한 특별위원회’에 의제로 제안해 논의 예정이다. 다만 소상공인을 중심으로 비용증가 부담과 지급 여력 및 관리능력 부족 등을 이유로 반대 뜻을 확실히 밝히고 있다. 노동 약자의 보편적 권리 보호를 위해 필요한 조치이지만, 영세 소상공인의 어려움이 큰 만큼 향후 노사 및 이해관계자, 전문가 의견을 다양하게 청취하면서 신중하게 논의를 추진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하신다면.

“내년 한국경제가 어려울 것이며, 정치·사회적으로도 그러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뭔가 희망의 메시지를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사회적 합의라고 생각한다. 그건 경사노위 위원장이 아니라 노사정 리더가 하는 것이다. 지금 절실함을 갖고 사회적 대화에 임해줬으면 한다. 현 상황은 사회적 대화의 마지막 골든타임이라고 생각한다. 노사정 리더들이 경제주체의 역할을 다 할 수 있는 장이 열린 만큼 합의를 통해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기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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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부 30년’ 정통 관료… 尹정부 출범하면서 ‘노동개혁’ 정책 설계 주도

■ 권기섭 위원장은…

권기섭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위원장은 1992년 행정고시(36회)에 합격해 고용노동부에서 30년간 일한 정통 관료 출신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고용부 차관을 지냈고 지난 8월부터 경사노위 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권 위원장은 경북 예천 출신으로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고용부 외국인력정책과장, 기획재정담당관, 장관 비서관, 직업능력정책국장, 근로감독정책단장, 고용정책실장, 노동정책실장 등을 역임했다. 특히 노무현·이명박·문재인 정부 등 진보·보수 정부를 망라해 관료 출신 인사 중 최장기간(6년) 청와대에서 근무한 이력도 갖고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권 위원장은 고용부 차관으로 발탁돼 노동개혁 정책 설계를 주도했다. 고용부 내에서는 드물게 노동·고용·산업안전 등 3개 부문의 정책실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며 누구보다 노동 현안에 정통하고, 조직 내에서도 신망이 두텁다.

권 위원장은 2021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고용부에 산업안전보건본부가 신설되자 초대 본부장을 맡아 중대재해 예방 컨트롤 타워를 이끌었다. 산업안전보건 부문은 어느 분야보다 노사 간 쟁점을 두고 공방이 치열했는데 초대 본부장으로 법 시행 전후 노사갈등을 잘 조율했다는 평가다. 경사노위가 계속고용(정년연장) 문제를 비롯해 근로시간·임금체계·노동시장 이중구조 등 여러 현안을 다루는 만큼 노동시장 구조개혁 전반에 정통하다는 점이 발탁 배경으로 전해졌다. 노동계에서는 권 위원장 취임 초 관료 출신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지만 최근 공무원·교원 근로시간 면제합의 이후 노정 간 대화 분위기가 강화되면서 우려를 불식시켰다는 평가다.

정철순 기자 csjeong1101@munhwa.com

△경북 예천(1969년생) △대전 보문고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뉴욕주립대 경영학석사 △고용부 외국인력정책과장 △고용정책총괄과장 △청와대 일자리수석실 선임행정관 △고용정책실장 △노동정책실장 △산업안전보건본부장 △고용부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