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봉 전력산업연구회 회장

우리나라의 전력망 문제를 생각하면 고구마 먹고 체한 것처럼 가슴이 답답하다. 동해안의 원전과 신규 석탄발전소들의 가동을 막는 초고압 직류 송전선(HVDC) 공사와 동해안∼수도권 2변전소 사업은 동서울변전소의 옥내화·증설을 하남시가 불허하면서 각각 66개월, 78개월이 지연되고 있다. 신시흥과 지척 거리인 신송도를 잇는 지중 송전선로 66개월, 당진화력과 신송산을 잇는 송전선로 90개월, 호남의 신장성변전소는 77개월이나 늦춰지고 있다. 최근 준공된 북당진과 신탕정을 잇는 40㎞밖에 안 되는 송전선로도 150개월 지연을 기록했다. 사업에 착수한 지 21년9개월 만이다. 제10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서 건설키로 했던 송전선 31곳 중 5곳만 준공되고 26곳은 지연됐다.

송전망 건설의 지연은 전력의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 큰 피해를 준다. 효율적인 최신식 발전소를 지은 사업자도 전기를 보내지 못해 발전설비를 놀려야 한다. 수조 원의 엄청난 투자비를 갚아야 하는데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다. 반도체 공장과 데이터센터 지으려다 낙심하고 외국으로 발길을 돌린다. 일자리와 부가가치를 만드는 수출품 생산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전력생산의 효율성도 떨어진다. 값싸고 효율적인 발전소를 못 돌리므로 전기요금 상승 요인이 된다. 에너지 부족 국가가 돈 들여 어렵게 수입한 연료로 발전한 전력을 국내에서 제대로 유통도 못 하는 것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대개는 지방자치단체의 비협조와 주민들의 반대다. 이런 문제가 전국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구조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지자체가 나서서 주민들을 설득하고 인허가를 앞당길 수 있는 인센티브가 없다. 지자체가 송전망 건설 지연을 방관하거나 노골적으로 건설을 방해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 배경에는 전국적으로 똑같은 전기요금이 숨어 있다. 해당 지역에 전기요금을 깎아준다면 지자체장과 지역 정치인들도 앞장서서 송전망 공사에 협조하지 않겠는가.

사업 주체인 한전의 문제도 작지 않다. 부채 202조 원, 누적적자 43조 원에 하루 이자만 122억 원을 내는 기업이 송전망 공사에 충분한 자원을 투자할 수 있겠는가? 역대 정부에서 제대로 올려주지 않고 묶어 온 전기요금 문제가 곪아 터졌다. 공기업에 대한 지나친 감사 기준도 문제다. 민간기업 같으면 재량껏 해내고 마는 일도 공기업에 대한 ‘투입’ 감사는 절차와 지출 용도의 제약으로 작용한다. 자신의 송전망으로 전력을 독점적으로 파는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민간이 송전망을 건설하고 한전이 운영하도록 하는 것을 왜 금지하는지 모르겠다. 꽉 막힌 진입 규제와 공기업 독점 체제로 국민이 고통받는다.

‘국가 기간전력망 확충 특별법’이란 이름으로 제21대 국회에서 여당이 3건, 야당이 7건 발의한 데 이어 막판에 여야 지도부까지 합의했지만 결국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법안의 골자는 안정적인 국가 전력망 확충을 지원하는 방안으로, 범정부 차원에서 인허가 절차를 개선하고, 예산·기금을 건설 비용과 주민 보상에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번 제22대 국회에서도 여야 간 정쟁으로 상임위원회에 묶여 있다고 한다. 민생을 생각한다면 싸움만 하지 말고 국회의원들이 할 일을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

이미지 크게보기 조성봉 전력산업연구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