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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시집 낸 유선혜 시인

‘공룡은 운석 충돌로 사랑했다고 추정된다／ …／ 어젯밤 우리가 멸종의 말을 속삭이는 장면／ 아주 조심스럽게／ 멸종해, 나의 멸종을 받아줘’(‘사랑과 멸종을 바꿔 읽어보십시오’ 중에서)


어려서부터 유달리 공룡을 좋아했던 소녀는 커서 철학을 전공했다. 철학을 배우는 일은 즐겁기도 했지만 종종 밑바닥을 알 수 없는 두려움을 가져다줬다. 첫 시집 ‘사랑과 멸종을 바꿔 읽어보십시오’(문학과지성사)를 출간한 유선혜(사진) 시인은 서울 종로구의 시집서점 ‘위트앤시니컬’에서 문화일보와 만나 “철학은 삶이나 선처럼 거대한 질문을 던지기만 하고 먼저 살아간 철학자들은 결코 답을 내어주지 않는다”며 “답 없는 세계, 불안한 미래는 두려움을 가져다준다”고 말했다. 그가 철학을 계속 공부해 철학자가 되기보다 첫 시집을 펴내며 시인의 삶을 먼저 살고 있는 이유다.


대학에 들어와서야 교과서 속 시를 넘어 동시대를 함께 호흡하는 시인들의 시를 접한 유 시인은 ‘시집 읽는 모임’에 들어갔다. 언젠가부터 일기를 적듯 혼자 볼 시를 적기 시작했고 어느새 화석처럼 그의 삶을 켜켜이 담고 있는 시 속에 시인이 사랑했던 공룡과 철학자들의 생각들이 모두 녹아들었다. 큰 기대 없던 첫 투고작들이 당선돼 지난 2022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빈 괄호처럼 불안한 미래를 두고 시인은 언제나 답을 찾고자 애썼다. ‘모든 것이 결국 허무하다’며 철학자의 말을 빌리는 대신 당장 나만이 할 수 있는 나만의 이야기를 쓰기로 마음먹었고 그것이 시였다. 노력과 같은 논리적 과정 없이 ‘비약만 있는 미래를 꿈꾸고’ 있었지만 비약 없는 시를 썼다. 시인은 자신의 이야기들을 구체적 장소에 구체적 화자를 통해 풀어냈다. 시에는 공룡, 뼈(화석), 별자리처럼 그가 사랑하는 것들이 잔뜩 등장한다. 유 시인은 자신이 공룡을 사랑했던 까닭에 대해서도 미지의 반대어인 ‘필연’을 이유로 들었다. “이미 지구에 나타났던 생물체의 99%는 멸종했다고 해요. 멸종하지 않고 있는 게 이상한 일이고, 이미 멸종한 공룡들을 생각할 때 인류의 멸종도 예고된 수순이라는 점이 떠오르기에 마음이 편안해져요.”


이런 시인의 감각과 문제의식은 새로운 시를 기다려 온 독자들의 마음도 이미 사로잡고 있는 듯하다. 그의 시집은 출간 직후 곧바로 중쇄를 찍었다. 인터뷰하는 동안에도 그의 시집을 방금 구매한 독자들이 찾아와 사인을 요청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시인에게 행복한 미래가 찾아왔음을 실감하느냐 묻자 그는 한참 말을 골랐다. “저는 행복이라는 감정에 무감한 사람입니다. 시집이 나와서 독자들께서 읽어주시는 일은 대단히 영광스럽지만 들뜸은 금세 가라앉아요. 다만 잘 먹고, 잘 자고 그리고 잘 쓰는 일이 오래 이어지길 바랍니다.”

장상민 기자joseph032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