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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살의 언어
크리스티안 뤼크 지음│김아영 옮김│북라이프

매년 지구 위 약 80만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리고 우리,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세상은 하루하루 살아내기 바쁘다. 더는 살 가치가 없다고, 스스로 세상을 등진 이들을 소환하는 건 무슨 의미일까. 죽은 자는 말이 없는데. 책은 이 민감하고 금기시되는 주제를 정면으로, 그리고 열정적으로 풀어낸다. 복지의 나라로 손꼽히지만 높은 자살률로 악명 높은 스웨덴에서 20년 넘게 자살 문제를 연구해 온 저자는 “어둠과 빛은 늘 함께한다”면서 “죽음을 통해 삶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 수 있다”고 강조한다. 무엇이 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삶을 고통스럽게 만드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무엇이 삶을 가치 있게 하는지에 대한 물음과 닿아 있으니까. 즉, 책은 ‘죽음’이 전하는 말을 통해, ‘유의미한 삶’을 찾아내는 여정이다.

저자는 열한 살에 경험한 고모의 죽음이라는 개인적 이야기로 시작해 수많은 사람의 증언과 연구, 그리고 역사·문화적 맥락을 거쳐 조력 사망이라는 첨예한 사회적 논쟁으로 나아간다. 무엇이 우리를 죽음으로 내모는가, 죽은 자와 남겨진 자의 심리는 무엇인가, 자살에 뒤따르는 최악의 결과는…. 저자가 자살을 ‘탐구’하며 발견한 이야기들은 하나의 거대한 서사가 돼 인간 존재의 연약함을 드러낸다. 동시에, 아름다움과 슬픔이 공존하는 생에 대한 깊은 이해로 우리를 이끈다. 그 안엔 자신의 자살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공개한 24세의 벨기에 여성이, 104세에 스위스에서 가족의 도움으로 생을 마감한 호주의 식물학자가, 또 캘리포니아 금문교에서 뛰어내렸으나 기적적으로 살아나 자살 방지 운동을 하는 10대 소년이 있다.

책은 자살이나 조력 사망에 대해 특정한 주장을 펼치지 않고, 이들의 죽음과 삶을 둘러싼 풍경을 담담하게 묘사하며 줄곧 거리를 둔다. 그것이 오히려 울림과 공감을 불러일으키는데,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 풍경 속에 자리한 아픈 감정과 고뇌가 무엇인지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독자들에겐 더욱 와 닿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지난 20년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에 살고 있으니까.

올해 초 스웨덴에서 출간된 책은 즉시 반향을 일으키며 종합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어려운 주제에 대해 놀라운 통찰력과 자유로운 명료함으로 섬세한 글을 완성했다”는 평과 함께 북유럽 대표 문학상 ‘아우구스트 상’ 후보에도 올랐다. 다만, 지나치게 사색적·관조적인 문체가 간혹 생경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몸은 펄떡인다”고, “우리의 모든 조직은 살고자 한다”는 꾹 눌러 쓴 듯한 이 한마디에 책과 저자가 바라보고 또 간절히 소망하는 바가 선명해진다. 바로, 절망의 늪 건너, ‘삶의 편’에 서는 그것이다. 292쪽, 1만7500원.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