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용 전남대 명예교수·경제학, 前 한국경제연구원장

올해 노벨 경제학상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다론 아제모을루(영어명 ‘대런 애스모글루’)·사이먼 존슨 교수와 시카고대의 제임스 로빈슨 교수에게 돌아갔다. 정치·경제 체제가 각국의 흥망성쇠를 결정한다는 사실, 즉 포용적 체제를 가진 나라는 성장하고 착취적 체제를 가진 나라는 쇠퇴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아제모을루와 로빈슨은 공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여러 곳에서 한국은 포용적 체제로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는 점을 인용하고 있다.

포용적 체제라는 용어를 자유시장경제 체제로 바꿔 부르면 그 개념이 더욱 분명해진다. 시장경제가 모든 시장 참여자의 의사를 반영하고 포용하기 때문이다. 물론 수상자들이 내세운 이 가설은 지금까지 없던 것을 새롭게 창안한 건 아니다. 흔히 사람들은 한 사회가 경제적 부를 축적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물질적 부존자원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요소가 경제 체제임은 시장경제를 주창하고 옹호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익숙하다. 부존자원이라곤 바닷물밖에 없는 예전의 홍콩과 사람밖에 없는 대한민국의 눈부신 번영이 대표적이다.

이들 3인의 연구 업적이 경제학의 새 지평을 연 것은 아니지만, 자유시장경제 체제가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번영의 원동력임을 상기시켰다는 점에서 수상의 의미가 있다. 또한, 그런 체제의 유지·발전을 위해서는 개인의 자유와 국가의 강제가 적절히 조화돼야 하는데, 이는 좁은 회랑(回廊) 위에 존재한다는 점을 상기시킨 것도 수상의 의미다. 물론 필자는 국가의 강제력은 개인의 자유의 보루인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막는 국방과 치안에 국한되고, 다른 기능으로서는 노동 능력이 없거나 부족한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 등에 국한돼야 양자 간 조화가 좁은 회랑을 이탈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즉, 국가의 강제력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살아오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사회질서를 유지·보호하는 데 국한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의 연구가 추락하는 한국 경제에 시사하는 바는 명백하다. 그것은 우리 경제가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 계속 멀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가 개인의 삶을 책임진다는 엉터리 정치인들의 활보, 정치권력을 얻기 위해 벌이는 정당 간 극한 대립, 기업 환경을 해치는 각종 규제와 강성 노조, 자본 축적을 방해하는 높은 상속·증여세 등의 세금, 온갖 복지의 탈을 쓰고 등장하는 포퓰리즘 등이 그런 요소들이다. 한국의 정치·경제 체제에 포용적 요소는 감소하고, 착취적 요소는 증가하고 있다.

한편 197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의 후일담이 인상적이다. “나는 노벨상에 그다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상을 받고 나니 사람들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이더라”라는 것이다. 사실 지난 30여 년 동안 한국경제연구원과 자유기업원을 중심으로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연구·교육·홍보해 온 학자들은 그런 체제만이 한국 경제의 지속적 성장을 담보할 수 있다는 주장을 꾸준히 해 왔다. 그런데 그동안의 노력과 결실은 지금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다. 돌이키기 어려운 불행한 일이다. 이번 3인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을 계기로 국내외 시장경제학자들의 논리가 힘을 얻고 한국에 자유시장경제 체제가 굳건히 뿌리내리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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