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순묵 서울 대광고 교장, 前 한국교원대 체육교육과 교수

파리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안세영 선수의 투혼 원동력이 ‘분노’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대한배드민턴협회의 낡은 관행과 비리에 대한 폭로전은, 올림픽 출전이 좌절되고 국가대표 감독 선임 과정에서 문제가 제기된 대한축구협회와 다른 종목 단체로까지 확산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조사 결과 배드민턴협회가 선수의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는 용품을 후원사 용품으로 제한하고, 후원 용품을 유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또한, 국가대표 선발 방식의 공정성 문제, 비(非)국가대표 선수의 국제대회 참가 제한, 신인 선수의 연봉 상한과 지나치게 긴 계약 기간 등의 문제점이 지적됐다. 진종오 의원은 ‘체육계비리제보센터’에 제보된 내용 중 대한사격연맹의 선수 포상금 미지급 사실을 확인하고 국정감사 때 체육회 관련 비리 의혹이 다뤄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그동안 언론에 보도된 체육계의 낡은 관행과 비리가 대부분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평생 체육교육에 몸담아 온 필자로서는 매우 안타까운 일이며 공분(公憤)을 느낀다. 그동안 체육계는 선수 육성에 관한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체육행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운운하고 선수 지원 시스템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해 왔다. 언제까지 앵무새처럼 선언만 되풀이할 것인가? 체육계는 이제 구태와 비리를 과감하게 적출(摘出)하고 대한민국 체육 발전을 위해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체육 선진국으로서의 실질적인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엘리트 선수를 육성하기 위해 1972년 체육특기생 제도를 도입한 이후 학교체육진흥법, 학생선수학습권보장법, 주말리그제, 최저학력제 등의 제도를 운영했다. 과연 이 제도들은 체육 선진국에 부합하는 학생 선수 육성 제도인가, 그리고 학생 선수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었는가?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프로팀에 입단한 신유빈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필자가 40여 년 교육자로서 터득한 것은 현장에 답이 있고,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땐 기본으로 돌아가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운동선수들이 경기력 향상을 위해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대한체육회와 종목 단체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 이 질문에 체육인들이 지혜를 모아 응답해야 한다.

모든 스포츠 구단은 천문학적인 연봉을 주며 최고의 스타 선수를 영입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스타 선수 영입이 스포츠 구단에 막대한 이익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손흥민 선수의 경기에 열광하고 오타니의 50-50 클럽 가입 여부에 관심을 두는 것은, 스타 선수의 경기력뿐만 아니라 팬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스포츠 문화가 대중과 해당 종목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 때문이다.

하나의 스포츠가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스포츠 스타가 해당 종목에 얼마나 중요한 자산인지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우리는 2002한일월드컵 때 ‘붉은악마’가 국민에게 미친 영향력과 스타 선수들이 축구를 얼마나 성장시켰는지를 경험했다. 우리가 어렵게 쌓아 올린 위대한 스포츠 유산들이 왜 전승되지 못하고 사장(死藏)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체육회장과 종목 단체장들은 응답해야 한다. 그 응답이 ‘분노’의 불길을 잠재우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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