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기 국제부 차장

지난주 마무리된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생사의 갈림길에서 살아 돌아온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겠지만, 분명한 존재감을 남긴 인물은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J D 밴스 상원의원이었다. 미국의 쇠락한 공업 지대인 러스트벨트에 사는 가난하고 소외된 백인 하층민을 가리키는 ‘힐빌리’(Hillbilly)로서 30년 인생을 담은 자서전 ‘힐빌리의 노래’의 저자다. 책에서 밴스 의원은 “나는 더럽게 운이 좋은 개자식”이라고 일갈하며 민주당의 위선적인 행태와 정책 실패로 가족, 이웃이 어떻게 망가졌는지,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그 삶을 버텨왔는지를 담담히 썼다. 그의 출신만큼이나 눈에 띈 것은 1984년생. 39세의 나이다. 밴스 의원과 함께 부통령 후보로 거론됐던 유일한 여성은 5선의 엘리스 스터파닉 하원의원이다. 스터파닉 의원 역시 전당대회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추켜세우고 11월 대선 승리를 역설했다. 동갑인 두 사람은 정치 초반 반(反)트럼프 혹은 중도 성향으로 시작했지만, 트럼프 행정부와 조 바이든 행정부의 8년을 지나며 열렬한 트럼프 추종자가 됐고 무게감도 커졌다. 밴스 의원은 부통령 후보가 됐고, 스터파닉 의원은 30대의 나이에 하원 서열 3위까지 올랐다. 심지어 원래 서열 3위를 자신이 직접 끌어내리고.

바이든 대통령이 물러난 민주당 대선 후보 자리가 아직 확정되진 않았지만, 59세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사실상 확정적이다. 더 눈길을 끈 것은 해리스 부통령과 함께 거론됐던 주지사들이다. 개빈 뉴섬(56) 캘리포니아 주지사, 그레천 휘트머(52) 미시간 주지사, J B 프리츠커(59) 일리노이 주지사, 조시 샤피로(51) 펜실베이니아 주지사 등 모두 50대다. 민주당으로 좁히면 23명밖에 없는, 하나하나 막강한 정치적 무게를 가진 이들이다. 뉴섬 주지사는 지난해 12월 공화당의 차기 대권 주자인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와 보수와 진보를 대변한 토론을 벌여 눈길을 끌었다. 휘트머와 프리츠커, 샤피로는 모두 대선 최대 승부처가 될 ‘스윙스테이트’의 주지사다. 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앤디 버시어(46) 켄터키 주지사, 4년 내내 바이든 행정부에서 일한 피트 부티지지(42) 교통부 장관은 40대에 민주당의 유력 정치인 자리에 올랐다. 모두 2024년은 몰라도 2028년에는 민주당 출신으로 백악관에 입성하겠다는 꿈을 갖고 있을 테다. 8월 19일 시카고에서 열릴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도 이들은 앞다퉈 대중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연설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81세의 바이든과 78세의 트럼프, 역대 미 대선 후보 중 나이순으로 1, 2위 간 대결이었던 미 대선 구도가 확 달라졌다. 바이든이 비켜서니 여야를 막론하고 30∼50대 젊은 정치인들이 확 부상했다. 물론 생물학적 나이만으로 참신하고 깨끗한 정치를 담보하는 시대도 지났다. 저들 역시 구태 정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지만 현역 대표가 90% 지지율을 이어가고 있는 한 당, 서로를 끌어내려 자해하고 자신들뿐 아니라 당과 정부마저 늪에 빠뜨리는 또 다른 당의 희한한 전당대회를 보고 있자니 그나마 젊은 정치인들의 신선한 목소리라도 듣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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