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희 베이징 특파원

“A 기업 주재원들 곧 한국 들어간다던데요.” “B 기업도 중국 사업 접을 예정이라고 하더라고요.”

최근 베이징(北京)에 주재하는 경제계 관련 인사들을 만날 때마다 한국 기업들의 중국 시장 철수 소식을 듣는다. 중국의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이러한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는데, 실제로 롯데그룹은 1994년 진출 이후 30년 만에 중국 현지에서 마지막까지 운영하던 롯데백화점 청두(成都)점을 연내 매각하기로 했고 현대자동차 역시 2021년 베이징 1공장, 2023년 충칭(重慶) 공장을 매각한 데 이어 올해 안에 창저우(常州) 공장도 매각한다는 방침이다. 한국 기업들의 탈중국 현상의 이유를 분석해 보자면 사드(THAAD) 사태 이후 한중 관계가 좋지 않고 팬데믹으로 한 차례 더 악재를 맞은 데다, 중국 제품들의 질이 좋아지고 중국인들의 애국 소비 현상이 늘면서 한국 제품들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최근 중국의 경기 침체도 이어지면서 “중국 시장은 이제 끝난 것 아니냐”는 과격한 말까지 들린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중국에서도 성공적인 매출을 올리는 기업들은 분명히 있다. SPC와 오리온, 세라젬 등이다. 2004년 처음 중국으로 진출한 SPC의 파리바게뜨는 이제 중국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베이커리 브랜드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최근 소비심리 위축에도 중국 내 330여 개의 파리바게뜨 매장 운영은 여전히 건재하다. 오리온 역시 중국 내 입지가 탄탄하다. 오리온 중국 법인의 올해 1분기 매출은 3064억 원으로 한국 법인의 매출 2716억 원을 넘어섰다. 최근 만난 30대 중국인 아이 엄마는 “바리베이톈(巴黎貝甜·파리바게뜨의 중국 이름)에서 산 빵으로 아이 아침을 챙기고 오후 간식으로는 궈쯔궈쯔(果滋果姿·마이구미의 중국 이름)나 하오리유(好麗友·초코파이의 중국 이름)를 먹인다”고 했다. 그는 궈쯔궈쯔를 만들고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기업이 모두 한국 기업이라는 사실을 전해 듣고는 놀라워했다. 외국 기업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할 만큼 중국인들의 일상에 깊숙이 스며든 것이다. 파리바게뜨와 오리온은 철저한 현지화 전략에 성공한 케이스다. 중국인들의 입맛을 공략하는 새 메뉴를 잇달아 내놓는 한편 품질 관리에도 힘쓰며 중국인들의 마음을 샀다.

현재 약 1300개의 가맹점을 중국 전역에 가지고 있는 헬스케어 가전기업 세라젬은 공격적 마케팅으로 성공한 사례로 유명하다. 세라젬은 인구가 적은 작은 단위의 시골 마을에도 의료기기 무료 체험관을 열고 현지인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그 결과, 세라젬의 지난해 중국 매출은 2020년 대비 82% 증가한 1295억 원을 기록했다. 최근에는 국내 패션 기업들도 중국 MZ세대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베이징 내 번화가인 싼리툰(三里屯) 한복판에 매장을 연 아이아이컴바인드의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 등이 그 예다. ‘글로벌 브랜드의 무덤’이라 불리는 힘든 시장이지만, 이처럼 틈새는 있다. 짐을 싸는 한국 기업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안타깝고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14억 인구를 가진 중국 시장은 놓쳐선 안 된다. 중국을 포기하면 결국 우리만 손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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