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구 체육부장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도 벌써 2년이 넘었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전쟁은 그사이 우크라이나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전 세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기습으로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도 이미 반년째 계속되고 있다. 하마스의 근거지로 지목된 가자지구는 이스라엘의 엄청난 공습으로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그런데 이것도 모자라 지난 13일엔 이란이 이스라엘을 향해 드론과 미사일로 보복 공격을 감행해 중동은 전면적인 확전의 위기에 빠졌다. 끊이지 않는 전쟁 속에서 전 세계는 큰 고통을 받고 있다. 당장 유가와 환율이 들썩이고 치솟은 물가는 내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갈수록 험악해지는 국제 정세 속에서 심리적 불안감이 극대화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올림피즘(Olympism)’이 간절해진다. 올림피즘이란, 올림픽 정신을 뜻한다. 피에르 쿠베르탱이 근대올림픽을 창설하면서 내세운 이념이다. 신체 단련을 통해 성실한 삶의 자세를 키우고 사회적 연대를 높이는 것, 그리고 스포츠를 통해 조화로운 인류 발전과 평화에 이바지할 것을 강조한다. 즉, 스포츠에 의한 인간의 완성과 경기를 통한 국제 평화의 증진이다.

하지만 이런 이상적인 정신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은 전쟁과 테러의 위협에서 그다지 자유롭지 못했다. 제1·2차 세계대전 때는 올림픽이 열리지 못했고, 1972년 뮌헨올림픽 때는 팔레스타인 테러 단체가 이스라엘 선수들을 납치·살해해 충격을 줬다.

오는 7월 26일 개막하는 2024 파리올림픽도 예외가 아니다. 앞으로 개막까지 꼭 100일을 앞두고 있는데 전쟁과 테러 우려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비판받은 러시아와 우호국 벨라루스는 개인 중립 자격으로만 올림픽 출전이 허용돼 반발이 거세다. 유럽 어느 도시보다 개방적인 파리는 곳곳이 테러에 노출돼 있다. 특히, 개회식이 문제다. 센강과 그 주변에서 열린다는데 너무나 오픈된 장소라 걱정이 많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에 대해 “(만일의 경우) 개회식은 센강 전체가 아닌 트로카데로 광장에 국한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 누구도 전쟁과 테러로 올림픽이 훼손되는 상황을 원치 않을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그 어느 때보다 올림피즘이 절실하다. 비록 올림픽이 세계대전을 막지는 못했지만, 국지전 등에서 일시적 휴전 효과를 가져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실제로 1993년 유엔총회에서 올림픽 휴전에 관한 결의문이 통과됐고, 1994년 수단 정부군과 인민해방군 사이의 내전이 잠시 중단된 적이 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의 평화 메시지도 북핵 문제 등으로 한껏 고조됐던 한반도의 긴장을 누그러뜨리는 계기가 됐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일이 점차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멀어져 가고 있다지만, 올림픽 정신에 대한 시대적 요구는 더욱 뚜렷해지는 것 같다. 스포츠를 통한 소통과 연대, 화합과 배려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오해와 갈등이 범람하는 시대에 이보다 더 확실한 억지력이 있을까? 파리올림픽 전까지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든 전쟁과 테러가 최소한 멈춰지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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