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허위 대출 빙자해 개설한 휴대전화 가로챈 사기 개요. 부산경찰청 제공

자금 급한 영세상인에 허위 전세대출 받게 해주겠다고 꾀어
대출 때 필요하다며 명의 받아 휴대전화 890여 대 개통 뒤 되팔아 10억 넘게 챙겨
부산경찰청 총책 2명 구속, 모집책 85명 불구속 입건

부산=이승륜 기자

영세상인들이 불법 부동산 대출에 가담한 것처럼 속인 뒤 이들 명의로 개통한 휴대전화 단말기 890여 대를 팔아 15억 원이 넘는 부당 수익을 얻은 사기 조직이 경찰에 붙잡혔다. 조직원들은 상인들에게 대출을 받으려면 본인인증용 휴대전화 개통이 필요하다고 거짓말했는데 실제 대출은 이뤄지지 않았고 피해자들은 명의만 빼앗기고 단말기 대금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부산경찰청은 타인 명의로 개통한 휴대전화를 팔아넘긴 혐의(사기 등)로 사기조직 총책 A(40대) 씨와 모집 총책 B(40대) 씨를 구속하고 이들을 도운 모집책 8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8일 밝혔다.

A 씨 등은 자금난을 겪는 영세사업자 등 피해자를 상대로 “허위 부동산 전세 계약서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 대출 때 휴대전화 본인인증이 필요한데 이를 위한 신규 단말기를 개통해야 한다”고 거짓말을 한 혐의를 받는다. 이후 A 씨 일당은 피해자 명의로 개통한 휴대전화 단말기를 중고 거래업자에게 팔아넘긴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실제 전세계약서가 작성되거나 대출이 이뤄지지 않았는데 피해자들이 불법 부동산 대출에 가담한 것처럼 믿도록 유도한 것이다. 일부 피해자는 대출을 빨리 받기 위한 작업비 명목으로 150여 만 원을 뜯기기도 했다.

이후 A 씨 일당은 휴대전화 개통 뒤 부여 받은 유심칩을 다른 휴대전화에 꽂아 일정 기간 신규 개설한 통신망을 사용한 것처럼 통신사를 속였다. 이들은 또 피해자로부터 본인 서명 사실확인서, 위임장 등을 받아 수사기관과 통신사의 단속에 대비했다. A 씨 일당은 이 같은 수법으로 2020년 7월부터 2023년 5월까지 3년 넘게 영세상인 등 319명을 속여 신규 개통한 휴대전화 896대를 중고 거래 업자에게 팔아 15억8000만 원의 부당 이득을 챙긴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도 불법 대출 범죄에 가담한 것으로 착각한 피해자들은 경찰에 신고도 못하고 속앓이하면서 자신 명의로 개통한 휴대전화 할부 대금만 떠안았다.

경찰은 “명의를 빌려준 피해자들이 자신이 거짓 부동산 대출에 가담한 줄 알고 쉽게 신고하지 못하는 점을 악용해 범행이 이뤄졌다”며 “실제 불법 대출이 일어나지는 않았으나, 명의를 타인의 휴대전화 개통에 빌려주는 것 만으로도 처벌 대상”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