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정일우는 “소극장의 장점은 관객도 배우들의 에너지를 느끼지만 배우 또한 관객들의 에너지를 느낀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레드앤블루 제공

■ 연극 ‘거미…’ 몰리나役 맡아

자신이 여성이라 믿는 男수감자
동성 키스신까지 소화하며 열연

“배우라면 안주하지 않아야 롱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연극뿐 아니라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캐릭터에는 얼마든지 도전하겠습니다.”

배우 정일우는 지난 1월 21일 개막한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에 자신이 여성이라고 믿는 남성 수감자 ‘몰리나’로 출연하고 있다. 꽃무늬 로브, 푸른 스카프에 화장을 하고 여성스러운 말투로 앙탈을 부리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간 로맨틱 코미디와 사극 장르에서 보던 정일우는 찾아볼 수 없다. 설득력 있는 몰리나를 연기하고 있는 그는 지난 20일 문화일보와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나 “정일우가 아닌 여인이 보인다는 평가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연극은 아르헨티나 작가 마누엘 푸익의 1976년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이념과 사상이 전혀 다른 ‘몰리나’와 반정부주의 정치범 ‘발렌틴’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교도소에서 만나 서로를 받아들이며 피어나는 우정과 사랑을 다룬다. 두 주인공의 대화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2인극이다.

최근 정일우는 영화 ‘고속도로 가족’에선 심리적으로 불안한 노숙자 가장을, 이번 연극에선 동성 키스신까지 소화하며 파격적인 변신을 연이어 시도 중이다. 정일우에게 파격적인 변신을 계속 시도하는 이유를 묻자 “스타는 한순간이고 배우는 평생”이라며 “나도 20대 초반엔 스타를 갈망하고 데뷔작인 ‘거침없이 하이킥’이 너무 큰 사랑을 받아 지금의 정일우가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비슷한 캐릭터만 연기하면 퇴보할 것이기에 나는 내 스타일대로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여성스러운 캐릭터 연기를 위해 영화 ‘대니쉬 걸’의 에디 레드메인, 영화 ‘패왕별희’의 장국영을 참고했다고 한다. 발렌틴 역의 배우에 따라 그의 몰리나도 변한다고 한다. 정일우는 “2인극이기에 호흡이 잘 맞아야 극이 잘 흘러간다. 발렌틴 배우에 따라 그 연기를 받아서 연기하려 노력한다”며 “발렌틴에 따라 나한테 너무 터프하게 키스해서 깜짝 놀라기도 한다. 그 순간에는 나도 여자이기 때문에 발렌틴이 리드하는 대로 사랑을 표현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은 지난 2019년 연극 ‘엘리펀트 송’에 출연한 후 5년 만의 연극 무대. 정일우는 “‘엘리펀트 송’ 때보다 무대가 편해지긴 했다”며 “배우라면 무대에 서서 2시간가량을 끌고 나가는 역량이 있어야 하는 것 같다. 새로운 것을 느끼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릴 때 배우로서 살아 있다고 느낀다”고 했다.

편해진 부분이 있지만 방심은 금물이라며 “가끔 내 영혼이 빠져나가서 객석에서 공연하는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저절로 대사가 나간다”며 “하지만 이럴 때를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들었다. 방심하지 않고 끝까지 무대에 집중해 마지막 공연까지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연극은 오는 31일까지 계속된다.

유민우 기자 yoom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