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설립 22주년 다과회에서 이근필(가운데) 퇴계 종손과 김병일(왼쪽 두 번째) 수련원 이사장을 모시고 필자(부원장 신종주·맨 오른쪽)도 함께 사진을 찍었다.

■ 추모합니다 - 이근필 퇴계 16대 종손(1932∼2024)

그 옛날 퇴계 선생이 소원한 ‘착한 사람이 많은 세상’을 이 시대에 구현하기 위해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을 설립하신 이근필 퇴계 16대 종손께서 지난 7일 향년 92세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지난 23년간 135만 명의 선비수련생을 배출하기까지 정신적 지주로서 솔선해 주셨기에 지금 우리 수련원 가족은 어버이를 잃은 것과 같이 비통한 심정을 금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종손께서는 수련생이 퇴계종택을 찾아오면 문밖까지 나와 맞이하며, 실내에 들어와서는 어린 초등학생 앞에서까지 큰 절로 인사를 나누고선 무릎을 단정히 꿇고 30분 이상 말씀을 하시곤 했습니다. 수련생들이 송구한 마음에 따라 하기라도 하면 극구 만류하고 종손 어른 자신의 오래된 습관과 건강상 이유라고 말씀하시며 수련생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셨습니다. 종손과의 대화가 끝나고 헤어질 때도 반드시 대문까지 나와서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배웅을 하셨습니다.

종손께서는 10여 년 전부터 귀가 들리지 않지만 말은 직접 입으로 하시고, 듣기는 종이나 태블릿에 써서 듣습니다. 보통 귀가 잘 들리지 않으면 청각으로 접하는 정보의 양이 감소하여 구사하는 어휘도 줄어든다고 하는데, 종손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다 보면 여느 사람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음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 종손께서는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연간 50여 권의 독서, 스크랩까지 하시는 신문 구독 등을 하고 계셨기에 비록 귀가 잘 들리지 않지만 보통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이 가능하신 듯했습니다.

자신을 낮추고, 다른 사람의 처지를 헤아리는 종손의 모습에서, 그리고 신체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온 정성을 다해 공부하고 준비하시는 모습에서, 복(福)을 타자에게 달라거나 주거나 하기보다 자신이 지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조복(造福)’을 하루 300장 쓰시는 모습에서 퇴계 선생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종손께서는 이처럼 퇴계 선생이 하셨던 것을 그대로 실천하고 계셨기에 수련생에게 살아있는 메시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수련생들도 가장 감동을 받는 프로그램은 퇴계 종손과의 대화라고 당연히 응답했습니다. 교직 생활을 40년 하고 은퇴 후 활동을 하고 있는 저에게는 하루하루가 배움의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잊을 수 없는 것은 지금부터 7년 전 수련원 실장직을 맡고 일을 시작하였을 때 종손께서 해 주신 말씀입니다. “500여 년 전 퇴계 선생의 삶과 정신이 과연 오늘을 사는 수련생들의 가슴에 와 닿을까요?”하고 종손께 말씀드렸더니, “지금 세상에 맞고 옛날과 아주 틀리지 않으면 될 것입니다”라면서 한 글귀(宜於今而不遠於古)를 써 주셨습니다. 나중에 이 글귀는 퇴계 선생의 말씀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만 ‘옛날 퇴계 선생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도 수련생들의 입장을 헤아리며 전달해야겠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김병일 수련원 이사장께서 언젠가 “우리 수련원은 세 기둥이 있기에 오늘까지 있어 왔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하나는 퇴계 선생이고, 또 하나는 이근필 퇴계 종손이며, 나머지는 뜻을 같이하는 지도위원님들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곧 우리 수련원의 세 기둥을 말씀하신 것이었는데, 그 한 기둥이 떠나셨으니 남아 있는 우리는 망연자실할 따름입니다.

종손께서 비록 유명을 달리하셨지만 생전에 보여주셨던 모습, 남겨놓으신 말씀을 결코 잊지 않고 가슴 속 깊이 고이 간직하며, 그분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앞으로 더욱 분발할 것입니다.

하늘에서 저희가 더 큰 힘을 발휘하여 종손 어른의 평소 바람이자 퇴계 선생의 소원인 ‘착한 사람이 많은 세상’이 구현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신종주(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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