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리소설로 철학하기
백휴 지음│나비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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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식으로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는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의해 결정돼. 그 사람이 그런 죽음을 맞이한다면 그건 모두 그 사람의 방식이 그랬기 때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어.”

일본 추리소설의 간판 히가시노 게이고의 ‘붉은 손가락’ 속 주인공의 대사는 독자의 마음에 진한 여운을 남긴다. 하지만 가슴속 품은 명문장을 알려달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선뜻 추리소설을 말하기 주저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철학을 전공한 백휴는 추리소설을 집필하면서도 철학책을 놓지 않았다. 추리소설에 ‘오락에 불과한 잡문학’ 꼬리표가 붙을 때마다 그는 질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 속 한 문장을 잡고 버텼다. “철학은 부분적으로 추리소설적이어야 한다.” 추리소설가이자 비평가로 활동해 온 작가 백휴가 20년간의 비평을 ‘추리소설로 철학하기’에 한데 모았다. 작가는 인간의 사유와 추리소설이 ‘극단’에서 만난다는 점에서 시작한다. 사유는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는 극단적 사색이며, 추리소설은 인간 행위의 극단인 살인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두 극단이 겹쳐지는 지점에서 추리소설에서 철학을 추리한다.

저자는 근대 추리소설의 시조 에드거 앨런 포부터 정유정에 이르기까지 추리소설 속 철학자들의 사상을 찾아낸다. 포가 우주의 기원에 대해 쓴 ‘유레카’에서 주장한 우주의 발산과 수축이 그의 소설에서는 탐정이 범인이 되어 추리하는 것으로 녹아있다고 분석한다. 또한 애거사 크리스티 작품 속 빅토리아 시대를 간직한 탐정 미스 마플을 통해 니체를 발견한다. 한편 일본의 정치학자 마루야마 마사오의 철학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저작들을 관통한다는 분석도 내어놓는다. 정유정의 작품에서 범인과 탐정이 사회의 주변부에 위치한다는 점을 통해 저자는 조르조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가 연상된다고 평가한다.

저자는 마지막 장에 이르러 사건과 밀실, 탐정과 범인 등 추리와 연관된 모든 것의 철학적 구도를 검토한다. 추리소설에 대한 저자의 역사적, 철학적 비평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추리소설의 무게는 전보다 묵직해진다. 하지만 가끔은 독서를 위한 독서가 필요하고 ‘추리소설로 철학하기’는 추리소설을 읽는 새로운 눈을 열어주기에 충분하다. 다 읽은 뒤에는 추리소설 속에서 더욱 진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454쪽, 2만7000원.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