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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늘 무언가를 잃는다. 무엇 하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게 인간의 운명이다. 우리는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줄 모르는 채로 잃기도 하고, 시간이 지난 뒤 잃어버렸다는 것을 겨우 깨닫기도 한다.

잃어버린 대상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이때 상실감은 일생일대의 사건이자 회복 불능의 사고가 된다. 어느 저녁, 식사를 마친 남편이 앉은 자리에서 쓰러져 죽는 일. ‘상실’(책읽는수요일)은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조앤 디디온이 남편 사망 후 1년 동안의 일을 묶은 회고록이다. 회고의 형식이지만 슬픔은 생생하다.

“삶은 빠르게 변한다. 삶은 순간에 변한다. 저녁을 먹으러 자리에 앉는 순간, 내가 알던 삶이 끝난다. 자기 연민이라는 문제.”(9쪽)

이 책은 이 문장에서 출발해, 이 문장에 도착한다. 온 마음을 다해 걷지만, 다시 제자리에 도착할 수밖에 없는 일, 상실이다.

어느 평범한 날, 특별한 조짐이나 예고도 없이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 일어난 일 앞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방황, 생각, 그리고 글쓰기다. 사후 1년 동안 슬픔으로 방황했다면, 그 후 글쓰기에서 조앤 디디온은 자기가 겪은 감정과 여러 정황, 당시의 부조리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에 대해 차분히 톺아본다. 글쓰기는 기억을 복기하는 일을 넘어, 그 일을 다시 제대로 겪는 일이다. 그의 육성은 단단하고 뜨겁다.

떠난 자가 죽음 이후의 시간(그런 게 있다면)을 어떻게 보내는지, 혹은 어떤 상태에 도달하는지 우리는 모른다. 그것을 증언한 ‘죽은 사람’은 없고, 세상엔 남겨진 사람만 가득하기 때문이다. 남겨진 사람은 남겨진 후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누군가는 애도의 시간, 회복의 과정이라 하지만, 조앤 디디온의 글은 그보다는 ‘묻는 자의 간절한 목소리’로 들린다. 이 글은 소리에 가깝다.

무언가를 헤아리고, 따져 묻는 사람은 알고 싶은 자, 이해를 구하려는 사람이다. 납득할 수 없는 상태에서 납득 가능한 상태로 옮겨가고 싶은 사람이다. 상실을 겪은 자는 그 일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 작가에게 글쓰기는 이 과정에서 유일한 길이 되어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진심으로는 믿지 못한 채 사는지도 모른다. 누가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가. 죽음은 닥치는 것이다. 때가 되면 올 줄 알았지만, 정말 올 줄은 몰랐다는 듯. 사랑하는 자를 잃는 일은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겪는다. 어느 평범한 저녁에.

박연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