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에마뉘엘 마크롱(왼쪽) 프랑스 대통령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지난 2022년 1월 25일 베를린 총리 관저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AP 연합뉴스

■ Global Focus - 독일·프랑스, 자국 혼란 수습 급급

존재감 없는 독일 숄츠
작년 G7 중 홀로 마이너스 성장
극우정당 지지율 2위로 반사이익

위기 허덕이는 프랑스 마크롱
연료 보조금 삭감에 농민들 시위
극우 국민연합에 지지율 뒤처져

점점 커지는 유럽 자강론
외교·안보 ‘전략적 자율성’ 대두
유럽 각국 각자도생 펼칠 가능성

유럽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과 반이민·반녹색 기치를 내건 극우세력 확장 등에도 제대로 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다. 2020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이후 ‘유럽의 두 맏형’으로 평가받던 독일과 프랑스가 리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서 70년을 자랑하는 유럽통합의 역사에 균열이 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16년 동안 유럽을 진두지휘한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의 바통을 이어받은 올라프 숄츠 총리는 내부 극우화 등에 허덕이느라 유럽 질서 유지는 뒷전인 모양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반이민주의와 농민 시위 등으로 얼룩진 국내 정치 혼란을 수습하는 데만 급급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포스트 메르켈 없는 유럽=최근 유럽 각국 혼란 상태에 대해 이코노미스트는 독일·프랑스 양대 지도자의 리더십 부재가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숄츠 총리는 국제 사회에서 유럽을 대표하던 메르켈 전 총리와 달리 사실상 존재감이 없는 상태다. 경기 부진과 그가 이끄는 연립정부(사회민주당·자유민주당·녹색당 연합)에 대한 여론 악화로 EU를 챙길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최대 강점으로 꼽히는 제조업 부문 부진 등으로 지난해 독일 경제성장률은 -0.3%를 기록하는 등 3년 만에 역성장으로 돌아섰다. 주요 7개국(G7) 중에서 유일한 마이너스 성장국일 정도로 경제 상황이 안 좋다. 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 에너지 위기 속에서 연정이 3개 원전을 해체하기로 하고, 연정을 구성하는 녹색당이 주택 소유자들에게 값비싼 열펌프를 설치하도록 하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농가 보조금 삭감 정책도 연정에 대한 부정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그사이 반사이익을 누린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지지율 20%를 기록하며 보수 야당인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30%)에 이어 2위로 치고 올라갔다. 이러한 독일 국내 정치 위기가 EU에서 숄츠 총리의 협상 능력을 약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무티(엄마) 리더십으로 16년간 유럽을 진두지휘했던 메르켈 전 총리와 대조된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국면 전환을 위해 총리 교체 등 개각을 단행했던 마크롱 대통령도 국내 정치적 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농업용 연료에 대한 국가보조금을 줄이겠다는 방침에 반발한 농민들이 최근 2주 넘게 수도 파리를 봉쇄했다. 이에 마크롱 대통령이 기존 계획을 철회하는 한편 살충제 규정 완화 등을 약속했다. 나아가 반이민 정서까지 고려해 외국 학생들에게 보증금을 징수하는 조항 등 이민법 개정안을 내놓았지만 무리한 ‘우클릭’에 사법기관에서 제동이 걸렸다. 이에 과거 연금개혁을 과감히 추진했을 때와는 달리 쉽게 여론에 휘둘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 결과, 여당인 중도 르네상스 지지율은 극우 국민연합에 10%포인트가량 뒤처지고 있다.

◇유럽 자강론 목소리 커지지만=EU 27개 회원국 중 15개 국가에서 극우 포퓰리즘 정당 지지율이 20%를 넘어설 정도로 유럽에서는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극우 바람이 거세다. 이탈리아와 핀란드, 헝가리, 스웨덴, 스위스 등에서 극우 정당이 정권을 잡거나 연정에 참여 중이다. 네덜란드도 최근 극우성향 정당이 원내 1당으로 등극해, 연정을 협의하고 있다. 이처럼 극우 바람에 유럽국가들은 유럽 자강론을 의미하는 ‘전략적 자율성’을 새로운 외교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다. 전략적 자율성이란 외교·안보 정책과 군사작전에서 강대국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인 선택을 추구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극우 바람에 고개를 든 자국 우선주의를 활용해 전략적 자율성을 내세워 국제사회에서 유럽이 움직일 공간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올 11월 미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하면 1기 때보다 훨씬 강력한 고립주의 정책을 펼칠 경우 전략적 자율성에 대한 목소리가 더욱 커질 전망이다. 그간 ‘세계 경찰’ 역할을 자처했던 미국이 강력한 글로벌 장악력을 내려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에 대한 안보 의존도가 높던 유럽 국가 사이에서 전략적 자율성이 더 주목받을 것이란 전망이다.

하지만 유럽 전체를 이끌 리더십이 부재한 상황에서 자칫 전략적 자율성이 유럽에 양날의 칼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세력이 대거 의석을 차지할 경우 전략적 자율성이라는 명목하에 유럽 각국이 제각각 움직이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친환경 정책과 우크라이나 지원 등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어려워지고 반이민 정세가 강화될 수 있는 것이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가 최근 유럽의회 선거와 관련해 5개국(폴란드·이탈리아·네덜란드·독일·프랑스)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폴란드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에서 극우 정당이 우세할 것으로 전망됐다. 자칫 유럽의회 선거 이후 유럽 전체가 분열될 위험이 커질 수 있다. 또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느라 무기고가 텅 빈 상황도 전략적 자율성에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유럽 최대 무기·군수품 생산업체 중 하나인 독일 라인메탈의 아르민 파페르거 CEO는 13일 BBC 인터뷰에서 유럽 탄약고가 현재 “텅텅 빈” 상태라며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싸우기를 원하는 공격자”로부터 대비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현욱 기자 dlgus300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