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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면 또 문이 있고 또 문을 열면 또다시 문이 있고 또다시 문을 열면 느닷없이 문이 있고 느닷없이 문을 열면 자꾸 문이 생긴다 문 안의 방은 문을 만드는 방 여자는 오늘도 그 문을 열고 연다’

-최규승 ‘거울 속 거울’(그림 시집 ‘달의 뒷면을 본 여자들’)

J가 뉴욕에서 돌아왔다. 방학을 틈타 머무르는 것이지만. 그가 유학을 목적으로 출국할 적에 나는 그를 다시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었다. 작별인사를 위해 만난 J가 한 번만 안아보자고 했을 때 불현듯 다시 만날 수 없을까 겁이 났던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좀체 하지 않는 J지만, 그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신산한 삶을 살아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J는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의 격차에서 하루하루를 아슬하게 견디고 있었다. 학업과 일의 병행. 일정할 수 없는 주거. 불안한 미래. 그러나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격려도 응원도 결국, 말 이상의 것이 될 수 없으니까. J를 떠올릴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찾아들었지만 한 치 앞도 알 수 없게 사는 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장학금을 받았다고, 유학을 갈 수 있게 되었다고 기뻐하며 서점에 찾아온 J를 보면서 안도감과 후련함을 느낀 것은 그 때문이었다. 한편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곳에서의 삶이 만만치 않을 것은 불 보듯 뻔했으니까. 어쩌면 더 힘들고 외롭기까지 한 생활이 아니겠는지. 말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럴 자격이 내겐 없었다.

이 년 만에 마주한 J는 건강해 보였다. 낯빛도 환했다. 나의 걱정은 기우, 아니 오해였다. J는 그저 용기 있게 자신 앞에 놓인 문을 차례차례 열며 나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분명 어떤 문 너머에는 그간의 어려움을 잊을 수 있을 만한 환한 빛이 있을 것이다. J의 확신을 나 역시 믿을 수 있었다. 이번에 헤어질 때는 내가 먼저 포옹을 요청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인·서점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