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연탄 교체 강추위가 찾아온 21일 오전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에서 장순분 할머니가 연탄난로에 연탄을 교체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 백사·구룡마을 한파 르포

“수입은 지원금 24만원이 전부
한달에 전기세만 15만원 나와”
“연탄난로로 겨우 거실만 난방”
노령층만 남아 겨울과 사투중

서울 기온이 영하 14.4도로 올겨울 최저치를 기록한 21일 오전,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노원구 백사마을에 거주하는 박건평(85) 씨는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며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체감온도는 영하 22.3도까지 내려가 한파특보까지 발효된 상태지만 그에겐 이불 한 개와 전기장판이 전부였다. 테이프 등으로 창문틀을 막았지만 바깥 찬 공기가 연신 방 안까지 스며들었다. 박 씨는 “연탄을 제공 받지만 위험할 수도 있어 기름보일러로 난방을 대신하고 있다”면서도 “교회에서 지원받은 기름이 다 떨어져 가고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82세 아내를 보살피며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티는 그가 기름통을 살피자 절반이 채 남지 않아 보였다. 정부에서 매달 24만 원을 지급 받고 있는 박 씨는 “겨울에는 한 달에 전기세만 15만 원이 나온다”며 “이 정도 추위가 계속된다면 이번 겨울을 어떻게 나야 할지 걱정”이라고 했다.

이 동네 주민 대부분은 재개발사업으로 마을을 떠나 100가구 정도만 남아 있는데 거주자들은 겨울 한파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주민 강경순(77) 씨는 “어젯밤에는 너무 추워 잠을 설치다 결국 새벽 4시쯤 깼다”고 했다. 그는 기름보일러가 고장 나 3년째 3구짜리 연탄난로로 추위를 이겨내고 있었지만 살을 파고드는 칼바람까지는 버티기 힘들다고 했다. 강 씨는 “거실은 연탄난로로 난방을 하지만 다른 방에는 난방이 없다”고 했다. 보일러 수리비용 30만 원도 부담이어서 기름 난방 수리는 꿈도 꾸지 못했다. 오래돼 색이 바랜 털 잠옷과 반팔 티셔츠, 전기장판이 한파를 견딜 강 씨만의 방한 장비들이었다. 강 씨는 “그나마 있는 전기장판도 전기세가 무서워 잘 때만 틀고 아침과 낮에는 연탄난로만 때고 있다”며 “주민들은 연탄값을 아끼기 위해 한집에 모여 추위를 피하기도 한다”고 했다.

이날 서울 마지막 판자촌인 강남 구룡마을에서도 주민들이 한파에 잠을 설쳤다. 오전 집 앞 천막에서 만난 김모(71) 씨는 “눈이 쌓이면 언제든 천막이 무너질 수 있어 걱정이 돼 잠을 설쳤다”고 했다. 김 씨는 물을 틀어놓은 수도를 보이며 “집 안과 밖 온도가 다를 바가 없다. 한 시간만 물을 잠가 놓아도 수도가 얼어 다 터진다”고 했다. 다른 거주자 A(65) 씨도 “천막 문을 타고 얼음이 군데군데 얼어 아침에 문을 열고 나오는 데도 한참이나 걸렸다”고 말했다.

출근하는 시민들도 롱패딩과 목도리, 핫팩 등 ‘중무장’을 하고 출근길에 올랐다. 광화문역 인근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20대 여성은 “춥다고 해 평소보다 조금 늦게 출근했다”며 “성탄절에는 기온이 영상이라길래 오늘도 따뜻할 줄 알았는데 방심했다”고 했다. 일부 시민들은 택시 출근을 택했지만 잡히지 않는 택시에 발을 동동 굴렀다. 동대문역사공원역 인근에서 만난 베트남 관광객 차빈느엔(여·25) 씨는 “너무 추워 어제 강남 지하상가에서 급하게 귀도리와 어그부츠를 샀다. 이 정도로 추울 줄은 몰랐다”고 했다.

조율·노지운·장상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