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뒤로가기
검색/메뉴
검색
메뉴
오피니언뉴스와 시각

문화 강국 가로막는 문산법

임대환 기자
임대환 기자
  • 입력 2023-12-04 11:40
댓글 0 폰트
임대환 산업부 차장

지난 2011년 청소년보호법 개정으로 오전 0시부터 6시까지 청소년들의 게임을 강제로 금지하는 ‘게임 셧다운제’가 도입된 적이 있었다. 청소년들의 ‘게임 중독’에 따른 사회문제를 해결한다는 좋은 취지에서 시행됐지만,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으며 시행 10년 만에 폐지됐다.

게임 셧다운제와 비슷한 길을 가는 법안이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문화산업 공정유통법’(문산법)이 주인공이다. 문산법은 지난 3월 있었던 이른바 ‘검정고무신 사건’이 발단이 돼 발의된 법안이다. 1990년대 인기를 끌었던 만화 검정고무신을 그린 고 이우영 작가와 출판사 간의 저작권 분쟁이 2019년 발생했다. 이 작가는 저작권 일부를 출판사에 양도했지만, 그에 따른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했다며 ‘불공정 계약’을 주장하다가,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등졌다. 거대 기업에 비해 불리한 위치에 설 수밖에 없는 작가들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문산법이 발의됐다.

법안 취지는 좋았다. 그러나 기업들은 이 법의 지나친 규제 조항이 불공정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업계는 제13조 1항 ‘금지 행위’ 항목들을 문제 삼고 있다. 그중에서도 ‘판매 촉진에 소용되는 비용 또는 합의하지 않은 가격 할인에 따른 비용 등을 문화 상품 제작업자에게 부담시키는 행위’를 금지한 것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가령, 유료 웹툰 연작을 시작할 때 독자를 모으기 위한 판촉 활동으로 보통 1∼3화 정도는 무료로 볼 수 있게 해 준다. 이 비용은 일종의 판촉비로 대개 웹툰 업체와 작가가 공동으로 부담한다. 그런데 법안이 제정되면 이런 비용을 모두 웹툰 업체가 부담해야 한다. 이럴 경우 비용 부담을 걱정하는 웹툰 업체는 검증이 안 된 신진 작가 작품보다는 이미 검증된 유명 작가 작품만을 연재하려 할 것이고, 결국 기업의 이런 위축은 신진 작가 발굴을 어렵게 할 것이라는 게 업계 주장이다.

또, ‘문화 상품을 납품한 후 해당 문화 상품의 수정·보완 또는 재작업을 요구하면서 이에 소용되는 비용을 보상하지 않는 행위’를 금지한 것도 문제라고 주장한다. 가령, 신진 작가가 작품을 납품했을 때 예상보다 품질이 좋지 않으면 업체가 보완·수정을 요청할 수 있는데, 이때 드는 추가 비용을 모두 업체가 부담하라는 얘기다. 역시 이렇게 되면 업체들은 검증된 유명 작가나 감독 작품에만 투자할 것이라는 게 업계 주장이다.

일리 있는 말이다. 상대적으로 힘없는 작가들을 법으로 보호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그에 따른 모든 비용 부담을 기업에만 떠넘겨서도 안 된다. 결국, 진흙 속의 진주를 캐내는 작업을 하는 것은 보석업체이기 때문이다.

지금 전 세계는 ‘K-컬처(culture)’에 흠뻑 빠져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이 바라던 ‘문화 대국’의 꿈이 실현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은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 작가의 노력과 함께 ‘보석’을 캐낼 수 있는 기업의 힘이 더해져야만 한다. 작가와 기업은 수레바퀴와 같은 두 축인 셈이다. 수레바퀴 한쪽에만 기름칠을 해서는 결코 수레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photo이미지 크게보기 임대환 산업부 차장

이 기사를 친구들과 공유해 보세요.

가장 많이 본 뉴스
안내 버튼

최근 12시간내
가장 많이 본 뉴스

문화일보 주요뉴스
기사 댓글

본문 글자 크기를 조절하세요!

※ 아래 글자 크기 예시문을 확인하세요.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본인에 알맞은 글자 크기를 설정하세요.

닫기
좋은 기사는 친구들과 공유하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