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노년의 아빠(왼쪽)와 엄마가 서로를 바라보는 다사로운 시선은 우리 삼 남매에게 사랑과 우애의 자산으로 다가온다.

■ 사랑합니다 - 아버지 박수철· 어머니 김영주

엄마가 “나훈아를 보고 싶다”고 했다.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엄마의 지나가는 듯한 말이 귀에 박혔다. 그러고 보니 엄마 생신이 얼마 안 남았구나. 마침 나훈아는 전국 순회공연 중이었다. 아, 이거구나. 남동생 둘과 그의 공연일정을 찾아 예매경쟁에 투신했다. 다른 공연 예매도 해보며 연습까지 했다. 입장권 판매 창구가 열리는 날 대한민국의 효자·효녀들이 부모를 위해 박 터지는 경쟁을 벌이던 와중, 드디어 막내가 두 자리, 내가 네 자리를 선점했다. 둘째는 느리고 또 바빴다. “난 못 잡았어. 누나는 어때?” 속이 터진다. ‘아이고, 이놈아.’ “나랑 막내랑 잡았으니 신경 쓰지 마.” 멋쩍어하는 동생의 옅은 웃음소리를 들으니, 우리 엄마·아빠가 삼 남매를 키우느라 고생한 세월이 떠오른다.

엄마와 아빠는 그렇게 넉넉하지 않은 형편 속에서 우리 남매를 구김살 없이 키웠다. 나는 첫째라 생일에 꼭 잔치를 열어주셨지만, 동생들은 미역국 한 그릇으로 생일 축하를 대신 할 때도 잦았다. 어느덧, 나와 동생들도 불혹에 접어들었고 생활도 비교적 넉넉해졌다. 아빠가 환갑을 맞았던 2010년 3월, 우리 가족은 처음으로 다 같이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 제주도에 그렇게 비가 많이 왔는데, 우리 가족은 그저 좋았다. 둘째와 나는 들떠 공항에 있는 청소 카트에 올라 사진을 찍기도 하고, 제주에선 수평선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했다. 비가 오면 보이는 건물로 들어가고, 그치면 바다로 나가 익살스러운 자세로 사진을 찍었다. 안개 낀 한라산을 오르기도 했다. 그렇게 1박 2일은 우리 가족의 설렌 추억이 됐다.

2018년 겨울, 환갑을 맞은 엄마를 모시고 강원도 설악산을 올랐다. “목돈 쓰지 말 거라.” 엄마의 당부에 난 답했다. “얼마 안 들어요. 갈 수 있을 때 가야죠.” 나와 동생들, 조카들이 설악 바위산에 올랐다. 설악산 초입에 있는 절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 곳이었다. 높은 봉우리가 보였다. 더 오르고 싶었지만 방정맞은 아이들의 안위가 걱정됐다. 하산길에 나섰다. 야트막하고 아슬아슬해 보이는 사슬 난간이 우리의 체중을 견딜 것 같지 않아 사뿐사뿐 돌계단을 밟아 아슬아슬하게 내려왔다.

이듬해 3월, 칠순을 맞은 아빠를 위해 모두가 일본 오키나와(沖繩)를 다녀왔다. 일제(日製)에 대한 불매 운동이 일어나고 있던 참에 일본에 가서 돈을 쓰고 온다는 것이 영 찜찜했지만, 예정된 여행 일정을 취소하기 아쉬워 여행을 결행했다. 오키나와는 우리나라처럼 식민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었다. 대한민국에 해방이 없었다면 이런 모습이었을까?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할 무렵 창밖을 보니 군용 항공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호텔에 들어갈 때마다 읽지도 못할 일본 신문을 펴들었다. 마이니치(每日) 신문, 아사히(朝日) 신문…. 눈에 들어온 것은 류큐(琉球) 신문이었다. 유구, 오키나와의 옛 이름이다. 이미 사라진 왕조가 다스린 나라였다. 마지막 저녁 식사 날 우리 가족은 석양을 배경으로 무용수의 전통공연을 관람했다. 꿈결 같은 광경이었다.

우리 가족이 언제까지 함께 여행을 다닐 수 있고, 언제까지 서로의 생일을 축하해줄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엄마, 아빠 사랑의 결실인 우리 삼 남매는 항상 우애 속에 서로를 위로하고 다독이며 살 것이라고.

맏이 박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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