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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와 클래식이 만나자… ‘작가의 세계’가 완성됐다

이정우 기자
이정우 기자
  • 입력 2023-09-18 09:04
  • 수정 2023-09-18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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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키부터 톨스토이까지… 작품을 살린 ‘클래식 음악’

무라카미 하루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 러시아 5인조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야나체크
앤서니 버지스 ‘시계태엽 오렌지’ - 베토벤 교향곡 9번
톨스토이 ‘크로이처 소나타’ - 베토벤 동명 소나타


클래식 음악은 문학에 영감의 씨앗을 뿌리고 자연스레 분위기를 만드는 촉매제가 되기도 한다. 특히 소설 속에 클래식 작품이 구체적으로 적시되는 건 흥미로운 순간이다. 음악이 작품과 화학 반응을 일으켜 그 세계를 깊고 풍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클래식 음악을 작품 속 모티프로 주요하게 쓰는 작가를 꼽는다면 그 첫 줄에 이 작가가 있다. 음악 애호가로 클래식 레코드 486장을 엮어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라는 책을 내기도 했던 무라카미 하루키. 지난 6일 출간돼 서점가를 강타하고 있는 신작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문학동네)에도 ‘당연히’ 음악이 등장한다. 클래식 음악은 어떻게 하루키 세계를 완성했을까. 하루키를 시작으로 클래식 음악을 주요하게 쓴 작가들, 소설에 영감을 준 클래식 음악들을 따라갔다.

# 하루키

전작 ‘1Q84’의 도입부, 결정적인 장면에 체코 작곡가 야나체크의 관현악곡 ‘신포니에타’를 썼던 하루키는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선 비발디, 모차르트 그리고 ‘러시아 5인조’를 등장시킨다. 러시아 5인조는 19세기 중엽 차이콥스키, 루빈슈타인 형제 등 서구파에 맞서 러시아 본연의 음악을 추구한 작곡가 모임으로 러시아 국민음악 확립을 목표로 활동했다. 화학자였던 보로딘을 비롯해 발라키레프, 림스키코르사코프, 무소륵스키, 큐이까지 정식 음악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소설 속 ‘나’는 라디오에서 보로딘의 현악 4중주를 듣고, 최근 만나게 된 커피숍 ‘그녀’와 함께 있는 중에 뜬금없이 ‘러시아 5인조’를 떠올린다. 하지만 끝내 큐이를 기억하지 못한 ‘나’는 ‘내 마음에는 내가 충분히 알지 못하는 영역이 아직 조금은 남아 있을 것’이라고 독백한다. 이를 통해 주인공의 어렴풋한 감정의 공백이 드러난다. 음악은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어야 할지 알지 못하는 그의 운명을 감각적으로 드러낸다.

하루키는 이처럼 작품의 분위기와 청각적 심상을 적절히 조응시켜왔다. ‘1Q84’에서 정체된 택시 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신포니에타’의 불안한 선율은 주인공 앞에 펼쳐질 거대한 불행을 암시했고, 소설 ‘노르웨이의 숲’에선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 바흐의 ‘인벤션’이 나왔다. 소설 제목과 비슷한 내용의 클래식 음악을 활용하기도 했다. 소설 ‘태엽 감는 새’엔 슈만의 ‘숲의 정경’ 중 ‘예언하는 새’가, ‘양을 쫓는 모험’엔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 중 파파게노의 아리아 ‘나는야 새잡이’가 언급된다.

# 밀란 쿤데라

지난 7월 작고한 체코 소설가 밀란 쿤데라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클래식 활용 도사다. 그의 대표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전체적 구성은 음악적 구조와 유사하다. 특히 베토벤의 마지막 현악 4중주인 16번 4악장 악보를 그대로 삽입한 대목은 흥미롭다. 베토벤은 악보에 ‘그래야만 하나?(Muss es sein?)’ ‘그래야만 한다!(Es muss sein!)’는 수수께끼 같은 문구를 써놓았는데, 이는 갈림길에 선 남자 주인공 프란츠의 고민을 반영한다. 남녀 주인공 프란츠와 사비나의 음악적 견해 대립은 공산주의 사상에 대한 둘의 가치관 충돌로도 이어진다. 소설을 영화화한 ‘프라하의 봄’엔 쿤데라와 동향인 야나체크의 작품이 4곡이나 들어가 있다. 야나체크는 쿤데라의 아버지이자 피아니스트였던 루드빅 쿤데라의 스승이기도 했다. 쿤데라는 생전에 “예술의 세계를 처음 열게 했던 건 야나체크의 음악”이라고 고백한 바 있다.

# 앤서니 버지스

스탠리 큐브릭이 연출한 동명의 영화로도 유명한 앤서니 버지스의 소설 ‘시계태엽 오렌지’엔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이 주요하게 쓰인다. 250여 곡을 남긴 작곡가이기도 했던 버지스는 음악이 주는 쾌락과 본능적 속성에 주목했다. 몹쓸짓을 일삼는 주인공 알렉스는 클래식 음악을 광적으로 좋아하는데, 벌거벗고 누워서 ‘황홀한 9번’을 들으며 음악을 탐닉한다. 이후 알렉스는 루드비코 요법(약물로 범죄 생리를 소멸시키는 소설 속 기법)에 따라 잔인한 장면을 강제로 보며 ‘합창’을 듣는다. 그에게 쾌락을 안겼던 ‘합창’의 선율은 루드비코 요법 이후엔 구역질을 일으킨다. 음악이 즐거움이 아니라 내면의 고통을 끄집어내는 도구가 되는 셈이다.

#그리고 톨스토이

톨스토이 단편 소설 ‘크로이처 소나타’는 제목부터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 소나타’를 활용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격렬한 대립이 돋보이는 이 곡은 아내를 살해하는 남편 이야기인 소설의 비극적 내용을 예고한다. 크로이처 소나타 연주 장면이 주요하게 등장하는데, 음악의 흐름에 따른 주인공 포즈드니셰프의 감정 변화가 세밀히 묘사된다. 그는 말한다.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타’의 첫 악장 프레스토를 아세요? 정말 무시무시한 음악입니다.”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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