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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파워인터뷰

“새로움을 포기하는 순간 인생 끝나… 89세에도 실험극 연출한 이유”

최현미 기자
최현미 기자
  • 입력 2023-08-30 09:08
  • 수정 2023-08-30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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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이미지 크게보기 ‘겹괴기담’ ‘혁명의 춤’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김우옥 연출가는 연극뿐 아니라 누구나 일상에서 ‘연극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그는 인터뷰에 ‘혁명의 춤’을 상징하는 빨간 셔츠를 입고 나왔다. 문호남 기자



■ 파워인터뷰 - 연극연출가 김우옥 한예종 명예교수

‘혁명의 춤’ 화제속 전석 매진
연극계 가장 힙한 인물 떠올라
1980년대 무대 올렸지만 외면
40년 지나 대중적 열광 이끌어

배우도 연출도 이해 못하지만
정해진 서사 없어 제각각 해석

새로움을 찾는건 ‘생존의 문제’
일이 지겨워도 인생은 재밌어야


인터뷰 = 최현미 문화부장 chm@munhwa.com

구순을 바라보는 연극연출가 김우옥(89) 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는 요즘 연극계의 가장 ‘힙’한 인물이다. “연극은 죽었다”며 실험극 ‘겹괴기담’과 ‘혁명의 춤’을 차례로 올려 MZ세대 학생부터 나이 지긋한 평론가까지 세대를 가로지르며 뜨거운 박수와 환호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원로 연극인의 업적을 기리는 ‘늘푸른연극제’ 참가작으로 큰 주목 없이 출발한 ‘겹괴기담’은 입소문 끝에 한국연극평론가협회의 ‘올해의 연극 베스트3’에 선정됐고 최근 무대에 오른 ‘혁명의 춤’은 화제 속에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구순을 바라보는 연출가가 실험극이라니’ 흔히 이런 반응일 수 있지만 1980년대 이후 줄곧 ‘타성을 깨는 리버럴리스트’로 불렸던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평생 더없이 개성적이고, 집요하게 새로움을 추구해온 그의 만년 작업 앞에서 이런 말을 하게 된다. “역시 김우옥이야.”

두 작품은 김 연출가의 뉴욕대 지도교수이자 그 후 오랜 연극 동료가 된 구조주의 실험극의 대가 마이클 커비(1931∼1997)가 1970년대 오프오프브로드웨이에 올린 작품으로 당시 유학 중이던 김 연출가가 배우로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그가 1980년에 귀국하자마자 야심 차게 무대에 올렸으나 ‘이게 연극이냐’ ‘이해할 수 없다’는 싸늘한 반응을 얻었다. 그의 말대로 “관객이 마음을 열지 않았던” 그 작품들이 40여 년 만에 대중적 열광을 끌어냈으니 그의 실험 정신이 시대와 만나 새로운 ‘스파크’를 일으켰다고 할 수 있다.

‘혁명의 춤’이 공연 중이던 지난 25일 더줌 아트센터로 김 연출가를 찾아갔다. 트레이드 마크인 모자·청바지·숄더백의 그 여전한 차림, 무한히 자유로우면서도 자신이 정한 목표라면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여전한 젊은 에너지로 기자를 맞았다. 시간을 뛰어넘은 뜨거운 반응에 그도 흥미롭다며 놀라워했다.

―1981년 국내 초연 이후 40여 년, 2000년 한예종에서 초대 연극원장 퇴임 공연 이후 20여 년 만이다. 왜 다시 올리게 됐나.

“우리 연극계에 이런 것이 필요하다고 늘 생각했다. 같은 것을 반복하지 않고 다른 각도, 다른 시각에서 접근하는 새로운 방법이 절실했다.” 하지만 그가 ‘혁명의 춤’을 올린 건 필연의 선택은 아니었다. 그는 죽기 전, 한 작품을 한다면 자신의 대표작인 ‘별들’ 시리즈를 하고 싶었다. 1985년 ‘방황하는 별들’로 시작해 다섯 작품으로 이어진 시리즈는 그가 실험극에 대한 차가운 반응에 실망해 다양한 실험이 가능한 청소년극으로 방향을 돌려 만든 작품이다. 극장은 미어터졌고, 반향은 엄청났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별’ 작업이 진척되지 않으면서 ‘겹괴기담’이 선택됐고 ‘혁명의 춤’으로 이어져 의미 있는 성공을 거뒀다.

―시간을 뛰어넘어 환호받았다.

“50여 년 전 작품이 환호를 받으니 나도 이게 뭔가 싶다. 결국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보통 이야기는 똑같다. ‘옛날 옛적에 누가 어떻게’라며 줄거리 위주로 가는데 이 작품은 암시만 하고 이야기를 다 안 한다. 그러다 잊을 만하면 또 암시로 일깨운다. 기억의 에코다. 이를 통해 조각들이 맞춰져 그림이 나온다. 멋쟁이 연극이다. 그 자체의 실험성이 여전히 먹혔다. 시대를 만났다.”

―그때는 왜 이해받지 못했을까. 이번에도 어렵다는 관객이 있는데.

“‘혁명의 춤’은 왜 춤일까. 미국에서 실험극이 성행한 1960∼1970년, 무용계에도 새로운 운동이 일어났다. 현대무용도 자유롭지 못하다며 나온 후기 현대무용, 포스트모던 댄스는 춤과 일상의 움직임 사이에 차이가 없다며 움직임이 곧 춤이라 했다. ‘혁명의 춤’도 그런 춤이다. 춤은 느껴야 하는데 이해하려 하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했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이해되지 않으면 나쁜 연극이라고 한다. 이 작품을 알려고 해선 안 된다. 모두가 모른다. 배우도, 연출인 나도. 커비 선생이 썼지만 선생도 몰랐을 것이다.”

정해진 서사가 없기에 오히려 관객은 다양한 의미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이날 극장에서 만난 우연 전 남산예술센터극장장은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연극”이라고 했고, 창작그룹 노니의 김경희 대표는 “비언어적 작업의 교본, 고전의 기준점”이라며 “배우는 학생들이 꼭 봐야 할 필수 작품”이라고 말했다. 또 이 작품은 천장에 조명을 달지 않아 배우가 들고 있는 랜턴이나 소품 등만을 통해 빛을 내는 것이 인상적인데, 조명을 없앤 실험인 동시에 조명을 갖추지 않고 돈 없이도 아무 곳에서나 할 수 있게 한 작업이었지만 지금처럼 모든 것이 넘쳐나는 시대에 반자본주의적 연극, 친환경적 연극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2000년 연극원 초대원장 퇴임 후 23년, 2006년 서울아동청소년공연예술축제 예술감독의 은퇴로 계산하면 17년이다. 무대로 돌아오는 데 왜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렸나.

“개인적으로 정년의 의미가 굉장히 강해 은퇴했으니 양보하고 조심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 또 연극은 혼자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제작·운영자 입장에서 젊은 사람을 쓰지 은퇴한 사람을 쓰려 하지 않았다. 폄훼까지는 아니더라도 노년에 대한 인식이 불리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작품은 만년 예술가가 낯설지 않은 새로운 시대를 보여준다.

photo이미지 크게보기 서울 용산 더줌 아트센터에서 공연된 ‘혁명의 춤’ 무대 위에 선 김우옥 연출가. 특별한 서사도 없고, 천장 조명이 없으며 대사도 거의 없는 연극은 새로운 관극 체험을 제공했다. 문호남 기자



“연극은 가짜가 아닌 ‘진짜 울림’ … 가장 인간적이기에 사라지지 않아”

예술가의 궁극적 목표 ‘연극성’
모든 요소가 맞춰지는 것 뜻해
일상속 기분좋게 절묘한 순간
그게 연극성이자 자기삶의 연출

관객수 꾸준히 줄어들고 있지만
인간이 주체인 예술은 무시못해

젊은 세대는 ‘버릇’이 없어 편해
권위를 떠나 예술은 민주적인 것


―한 인터뷰에서 “연극은 죽었다”고 말했다. 어떤 뜻인가.

“실험극 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한다는 말이다. 억지로 엮은 연극을 못 견딘다. 너무 가짜다. 그렇다면 내 식대로 꾸며볼까. 이게 실험극이다. 그들에게 연극은 죽었다.” 김우옥 연출가도 ‘그들’ 중 한 명이다. 그는 자신의 연극 출발은 실험극, 자신의 배경 자체도 실험극이라고 했다. 경기여고 영어교사를 하다 떠난 뉴욕 유학 시절 실험극에 빠진 그는 이전에 연극 생활을 안 했기에 오히려 더 깊이 빠져들었다고 했다.

―‘실험’의 핵심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연극이라면 작가가 희곡을 써서 이야기를 얽어내면 연출이 배우를 데리고 희곡을 읽으며 한다. 실험은 이런 모두가 다 하는 연극과 다르게 접근하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 다른 것은 얼마든지 있다. 문제는 다르면서도 그 어떤 작품보다 ‘연극성’을 강하게 추구해야 한다. ‘더 연극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아이디어를 끄집어내려는 노력. 이것이 실험이다.”

―그렇다면 ‘연극성’은 무엇인가.

“연극성은 연극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예술에 있다. 음악·무용·미술 등 모든 예술을 살려주는 것이 연극성이고, 예술가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데 배우의 대사가 조금도 늦거나 빠르지 않고 시간을 탁 맞춰 들어오고, 모든 요소가 절묘하게 딱 맞춰지는 것이다. 그런 지점들이 연결됐을 때 감동이 생긴다. 나는 학생들에게 늘 일상에서도 연극성을 찾으라고 말한다.”

―일상 속 연극성은 어떤 것인가.

“일상에서 어떤 순간 모든 게 딱 맞아떨어져 ‘아, 멋있다’ ‘와, 기분 좋다’ 하는 순간이 있지 않나. 그런 것이다. 예를 들어 상을 당한 친구를 위로할 때 특별한 생각 없이 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가 더 위로받을 수 있도록 무엇을 언제 어떻게 할지 짜는 것, 그게 연극성이다. 자기 삶의 연출이다.”

―하지만 연극은 죽지 않았다. 연극이란 무엇인가.

“연극 인구(관객)는 몇 명일까. 극장에 가면 같은 사람들이 품앗이하듯 돌아가며 본다. 무시할 만한 수치다. 1984년 시애틀에서 열린 아동극 회의에 참석했을 때 한 미래학자가 미래엔 연극이 없어진다고 예측했다. 미래엔 집에서 TV를 통해 모든 것을 본다고 했다. 꽤 맞았다. 하지만 연극은 안 죽었다. 연극의 힘은 무엇일까. 결국 세상이 아무리 발달해도 발달의 주체는 인간이다. 인간이 살아서 나오는 예술은 무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화려한 장치도 필요 없이 빈 무대에 배우 한 명이 나와 마음에 꽂히는 한마디를 하면 ‘와’ 한다. 인간 대 인간의 만남이다. 생명체가 가슴속 이야기를 했을 때의 울림, 가짜가 아닌 진짜의 울림, 그것이 연극이다.”

―인공지능(AI)·영상시대에도 연극은 가장 인간적이기 때문에 살아남지 않겠나.

“집에서 혼자 AI를 상대하며 지내던 어느 날 어떤 인간이 찾아와 모든 것을 다 끄고 둘이 앉아서 오손도손 이야기한다. 이게 진짜다. 그게 바로 연극이다.”

그와의 인터뷰는 이제 세대 간 소통으로 옮겨갔다. 노 연출자 작업이 관심을 끄는 또 다른 부분은 여러 세대와 함께 작업을 해 나간다는 점이다.

―‘혁명의 춤’을 하면서 배우들이 굉장히 고생했다고 들었는데.

“(반복되는 몇 마디 빼고) 대사가 없다. 배우들이 대개 무대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이유는 대사인데 대사가 없으니 기댈 데가 없다. 순전히 연기를 해야 했다. 고생을 많이 했다.”

연극 작품에 관한 한 엄청나게 밀어붙이는 스타일인 김 연출가는 이번에도 배우들에게 “내 성에 안 차면 안 올리겠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그는 배우들에게 서비스론을 폈다. “연극은 서비스다. 우리가 식당에 갔을 때 음식이 맛있고, 친절하고, 좋은 서비스를 받으면 기분 좋듯이 우리도 정성을 다해 맛있는 공연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소리치고, 이것도 못 하냐고 다그치며 그는 공연 전날까지 “그렇게 하지 않을 거면 안 올리는 게 낫다. 벌금을 물고 비난을 받고 하더라도 나는 NO다”라고 했다. 진짜 그럴 생각이었냐고 묻자 “흔히 ‘그래도 막은 오른다’는 말이 있지만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작품이 안 되면 당연히 그럴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예종 연극원에서도 엄격한 호랑이 선생님으로 유명했다. 수업시간 땡 치면 문을 닫고, 수업에 두 번 못 들어오면 어김없이 F를 날렸다. 수업에서도 작품에서도 호통치고 끝까지 밀어붙이지만 학생들에겐 언제나 엄청난 에너지로 존경받았다. 선생과의 작업에선 전체에 흔치 않은 에너지가 넘쳐 젊은 학생들이 오히려 에너지를 받는다고 알려졌다.

―어떤 선생님인가.

“엄격하고 무서운 선생이다. 천직이라 생각하고 내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했고, 좋은 선생이 되려고 애썼다. 선생으로서 인기도 굉장히 많았다. 선생은 열심히 가르치고 학생들은 열심히 배워야 한다. 이 두 힘이 합쳐 불꽃을 일으키는 게 교육이다. 그 원칙을 지키려 애를 썼다. 열심히 안 들으면 내쫓고 벌을 줬다. 또 다른 원칙은 공정이다. 모든 학생을 공정하게 대했다.”

그렇다면 이번에 20대부터 60대에 이르는 배우들과의 작업은, 특히 젊은 세대와의 소통은 어땠을까. 그는 의외로 젊은 친구들과의 호흡이 언제나 더 편하다고 답했다. “젊은 학생들은 ‘버릇’이 없기 때문”이라는 말이었다. “10년, 20년 연극계에 오래 있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카르텔 같은 것이 생긴다. 나이가 많으니, 외국 유학을 했으니, 상을 받았으니 이런 것이 덕지덕지 붙어 권위를 찾으면 정말 힘들다. 예술은 언제나 민주적인 것이다.” 그래서 그는 현장에서 모두에게 똑같이 대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감각을 찾아 78세에 혼자 뉴욕으로 떠났을 때, 많은 사람이 놀랐다. 한 평론가는 “평생 새로움을 추구하고, 첨단의 예술을 탐험했고, 젊은 사람과 소통하며 감각을 단련해 왔다”고 했다. 어떻게 그런 새로움을 변치 않고 가질 수 있나.

“재미있게 살기 위해서다. 생존의 문제다. 삶이 풍요롭고 흥미로우려면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한다. 똑같은 것은 지겹지 않나. 새로운 것이 없을까 찾으려 노력하고, 새로운 것을 보면 열광하고. 또 내가 작품을 만들 때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도록 하려 했다.”

―나이 들면 안주하게 되는 것 아닌가.

“그러면 안 된다. 그러면 인생이 끝나는 거다.”

그래도 혹시 주저앉고 싶거나 지겨울 때가 없냐고 묻자 “기댈 건 그것밖에 없는데 그럴 일 없다”고 했다. 그래도 ‘직장이 지겹다’ 이런 말을 하지 않냐고 하자 그는 이런 대답을 들려줬다. “직장은 지겨울 수 있지만 ‘인생이 지겹다’ 이것은 아니다. 인생 자체에 가능성이 얼마나 많은데 지겨울 수가 있나.”

―에너지가 놀랍다.

“나도 놀랍다. 지난 6월 한예종에서 학생들과 6주간 연습해 레퍼토리 공연을 했고, 이번에 ‘혁명의 춤’을 올렸다. 10월에는 극장 쿼드에 ‘겹괴기담’을 다시 올린다. 올해 세 작품을 하는 셈인데, 나도 한 해 세 작품을 하기는 처음이다. 2012년부터 5년간 뉴욕에 머물면서 본 공연에 대한 기록을 묶어 책도 낸다. 나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에너지가 넘친다.”

―마지막으로 젊은이들에게 나눠주고 싶은 지혜를 부탁드린다.

“진짜가 되어야 한다. 진짜로 살아야 한다. 요만큼의 꾸밈도 없이 나 그대로 진짜로 남는 것. 그게 인생의 최종 목표다. 그러려면 상대를 진심으로 대하고 진짜로 살아야 한다. 이를 위한 첫 준비 단계는 헛소리하지 말아야 한다. 실천하지 못할 말은 하지 말고 이야기했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 그것이 진짜가 되는 첫 번째 길이다.”

photo이미지 크게보기 연극 ‘혁명의 춤’의 한 장면. 최용석 제공



美 유학때 구조주의 실험극 대가 ‘마이클 커비’ 만나 본격 연극의 길로

■ 김우옥은 누구


김우옥 연출가는 연세대 영문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경기여고에서 영어교사를 하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연극의 길로 들어섰다.

연극반을 지도하긴 했으나 연극을 제대로 해본 적이 전혀 없었다. 시애틀 워싱턴대학원에서 연극연출 석사를 받았지만, 막상 연극을 해보니 재미가 없어 저널리즘으로 전공을 바꿀까 고민하다, 뉴욕대로 간 것이 그의 삶을 바꿔놓았다. 교사 시절 하와이에서 영어교수법 연수를 하다 잠깐 들른 뉴욕에 반해 언젠가 꼭 뉴욕에서 연극 공부를 하겠다는 자신의 오랜 결심을 지킨 결과였다. 이곳에서 그의 지도교수이자 동료였던 구조주의 실험극의 대가 마이클 커비를 만났다. 커비는 스토리 대신 구조를 통해 연극의 본질과 기능을 강조하는 ‘구조주의 연극’을 주창한 인물이다. 그는 그곳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며 커비의 구조주의 극단 스트럭추얼리스트 워크숍에서 배우로 활약했는데, 커비는 그의 담백한 연기를 높이 평가했다

1980년에 귀국해 서울예대에서 교편을 잡은 김우옥은 ‘내·물·빛’ ‘혁명의 춤’ ‘겹괴기담’ 등 커비의 작품 세 편을 잇달아 선보였으나 관객과 평단 모두의 차가운 반응을 얻었다. “개혁은 정치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연극계에 더더욱 절실하다” “한국 연극계의 문제는 획일성이다” “과잉 선전, 초대권 남발로 자살행위를 하고 있다” 등 쓴소리를 날렸던 그는 오히려 청소년극에서 기존의 틀을 벗어난 실험이 가능하다며 1985년 동랑청소년극단을 창단, 뮤지컬 ‘방황하는 별들’ ‘꿈꾸는 별들’ 등 별들 시리즈로 큰 성공을 거둔다. 1994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대 연극원장을 맡아 연극원의 기틀을 닦고, 2000년에 퇴임했다.

그 뒤 2012년 78세에 늘 보던 것 말고, 뭔가 새로운 것을 보겠다며 혼자 뉴욕으로 떠나 5년간 머물면서 공연장과 미술관을 누볐다. 그리고 돌아와, 대도시가 아닌 곳으로 가자며 교토(京都)를 찾았으나 새로운 것이 없어 20여 일 만에 짐을 싸 들고 다시 돌아왔다.

연극원 출신 연출가 김태형은 한 인터뷰에서 가장 영향을 받은 인물로 김우옥 선생을 꼽으며 “합리적인 사고방식, 타인에 대한 관용적 태도, 모든 장면을 흥미롭게 만드는 집요함”이 그 이유라고 답했다. ‘겹괴기담’과 ‘혁명의 춤’에 이어 커비가 김 선생을 위해 쓴 ‘내·물·빛’을 올릴 수 있기를 바라며, 오랫동안 꿈꿨던 ‘별들’ 시리즈의 6번째 무대도 여전한 버킷리스트로 갖고 있다.

photo이미지 크게보기 ‘혁명의 춤’ 연습 모습. 최용석 제공



“나의 오늘을 있게한 건 속보와 ‘말러’의 교향곡”

■ 구순 앞둔 연출가의 건강비결


김우옥 선생의 오늘을 있게 한 두 가지를 꼽는다면 ‘속보(速步)’와 ‘구스타프 말러’다.

김 선생은 늘 “모든 것에 앞서 먼저 운동”이라고 말한다. 일을 제대로 하려면, 자신이 좋아하는 술을 마시려면 일단 운동으로 체력을 다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50대에 들어서 운동을 시작해 40년 가까이 매일 아침 빠지지 않고 헬스장에서 트레드밀을 달렸다. 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이것이 불가능해졌고, 마침 원인 모를 두통까지 겹쳐 컨디션이 바닥을 쳤다. 이때 그를 살린 것이 ‘속보’였다. 헬스장을 갈 수 없어 우이천 옆을 빠르게 걷기 시작했는데 실내 헬스장보다 우이천이 훨씬 좋았다. 걷는 것이 좋았고 물새가 노는 우이천 풍경을 보는 것도 행복했다. 속보를 하면서 신체 변화가 느껴졌고, 결국 3년 가까이 그를 괴롭히던 두통도 나았다.

그는 일주일에 닷새, 오전 5시에 일어나 5시 30분에서 6시 사이에 우이천을 향해 걷는다. 1㎞당 평균 9분 16초. 옛날만큼 빨리는 걷지 못하지만 최고 기록은 8분 22초다. 영하 15도 추위에도 걷고, 더워도 걷고,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라도 걷는다. ‘혁명의 춤’ 공연 중에도, 배우, 스태프와 밤늦게 자리를 한 다음 날도 걷는다. 이와 함께 그를 일으킨 것이 말러의 교향곡이다. 코로나 기간 집에서 꼼짝없이 머무른 시간이 아이러니하게 그에게 말러를 선물했다. 교향곡 10개를 들으며 얻은 에너지는 어마어마하다고 했다. 특히 교향곡 2번 부활을 들으며 눈물 흘렸다는 그는 종교에서 부활을 외쳐도 믿지 않았지만 말러의 교향곡을 들으면서 부활이 있는 것 같이 느꼈다고 했다. 그는 ‘겹괴기담’과 ‘혁명의 춤’을 통해 일종의 부활을 했다며, 이게 말러의 힘이라고 했다. 많은 연주 중에서 그는 특히 클라우디오 아바도 지휘의 연주를 최고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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