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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문10답 - ‘출생통보제’ 법제화

산모 주민번호·신생아 성별 등
의료기관이 14일 이내에 통보

부모가 한달내 출생 미신고땐
지자체가 직권으로 등록 가능
시스템 구축 거쳐 1년뒤 시행

미혼모 병원 출산 기피 우려에
익명 보장 보호출산제도 논의
찬반 팽팽해 국회 복지위 계류

의료기관이 아이 출생 사실을 지방자치단체에 의무적으로 알리는 ‘출생통보제’가 내년 시행된다. 이는 최근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 등 출생신고가 안 된 영아가 살해·유기되는 사건이 잇따라 터지자 뒤늦게 법제화됐다.

기폭제는 감사원의 표본조사다. 얼마 전 감사원은 보건복지부를 감사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위기 아동 조사에서도 누락된 ‘유령 아이’ 2236명을 찾아냈다. 병원에서 태어났으나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이들이다. 1%인 23명만 표본조사 했는데도 아동 4명은 숨진 상태였다. 복지부도 전수조사에 나섰다. 전수조사에 따른 경찰 수사 결과 전국에서 이미 영아 9명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출생신고 등에서 제도적 허점이 드러나자 출생통보제 입법은 급물살을 탔다. 출생통보제가 지난달 30일 법제화됐지만 ‘유령 아이’를 막을 후속 조치가 이어져야 한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임신부의 익명출산을 보장하는 ‘보호출산제’를 병행 입법해 미혼모 등 위기 임신부를 병원 밖 출산으로 내몰아서는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모성보호 정책 등 임신부터 양육까지 위기 임산부를 촘촘하게 지원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출생통보제의 실효성과 ‘유령 아이’를 막을 수 있는 보완 대책 등을 짚어봤다.

1. 출생통보제는 무엇

출생통보제는 의료기관이 출생 정보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을 통해 지자체에 알리는 제도다. 이는 태어났으나 출생 기록이 없어 존재하지 않는 ‘유령 아이’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출생통보제가 시행되면 의료기관은 산모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아이가 태어난 날짜와 시간, 성별 등을 진료기록부에 기재해야 한다. 의료기관장은 출생일로부터 14일 이내에 출생아 정보를 심평원에 의무적으로 전송해야 한다. 심평원은 이를 받아 친모의 주소지를 관할하는 지자체장에게 곧바로 통보한다. 지자체는 출생일로부터 한 달 이내 출생신고가 되지 않으면 모친 등 신고 의무자에게 7일 이내 출생신고를 하라고 독촉해야 한다. 이후 부모가 응하지 않으면 지자체장이 법원 허가를 받아 직권으로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 법안에는 119 구조, 구급 활동 상황 일지로도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는 내용도 담겼다. 의료기관 밖에서 태어난 경우 출생신고 서류를 갖추는 데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출생통보제는 의료기관과 정부 시스템 구축 등을 위해 1년 후 시행된다.

2. 출생통보제 왜 촉발됐나

출생통보제는 최근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영아가 살해·유기되는 사건이 되풀이되자 입법에 속도가 붙었다. 출생신고 등에서 맹점이 드러나면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아서다. 영아 살해와 유기 등 범죄가 되풀이되는 건 출생신고가 안 되면 태어난 사실을 확인하기 어려운 제도 탓이 크기 때문이다. 현행 가족관계등록법상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는 게 원칙이다. 부모가 신고할 수 없는 경우 동거 친족, 분만에 관여한 의사와 조산사 등도 신고할 수 있지만 현실적 여건상 힘들다. 그동안 정부와 병원은 영아의 출생신고를 확인하지 않았고, 부모는 출생신고를 안 해도 ‘과태료 5만 원’이 전부였다. ‘유령 아동’이 숨지는 비극이 잇따르는 가운데 병원의 출생 통보 의무화 등 관련 법안 15건이 국회에 수년간 계류된 것으로 드러나자 ‘직무 유기’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늑장 입법이란 비판 속에서 국회는 지난달 30일 본회의를 열고 출생통보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가족관계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의결했다.

3. 수원 영아 살해는 어떻게 드러났나

얼마 전 감사원은 2015년부터 2022년까지 태어났지만 출생신고가 안 된 영·유아 2236명을 발견했다. 이 중 1%인 23명을 표본조사 했는데 수원 영아 2명을 포함한 아동 4명이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이 같은 사실은 감사원이 출생신고 제도의 허점을 파고들면서 드러났다. 감사원은 복지부 정기 감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영·유아들이 정부의 위기 아동 조사에서도 빠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후 감사원은 ‘임시 신생아 번호’와 출생신고 자료 등 공공 데이터를 처음으로 맞춰봤다. 임시 신생아 번호는 의료기관에서 출생한 신생아에게 출생신고 전 예방접종을 위해 부여하는 7자리 번호다. 감사원은 주민등록번호로 전환되지 않은 임시 신생아 번호에 주목한 것이다. 감사원은 임시 신생아 번호와 공공 데이터를 조합해 아이를 낳기 위해 병원에 온 임신부 정보를 찾아낼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감사원은 고위험군 23명을 추려냈다.

4. 출생 미신고 사건 수사 상황은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을 계기로 정부가 출산 기록은 있지만 출생신고는 되지 않은 아동 2123명에 대해 전수조사를 벌이면서 관련 사건의 실체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경찰청은 지자체 등으로부터 수사 의뢰가 들어온 출생 미신고 영아 사건이 3일까지 96건에 달하며, 이 중 영아의 소재·생사 여부가 확인된 일부를 제외하고 80여 건을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경기 과천시에서는 지난 2015년 9월 다운증후군이던 남자 아기를 출산한 친모 A 씨가 아기가 숨지자 시신을 유기한 사건이 뒤늦게 수사 대상에 올랐다. 경찰은 50대 친모 A 씨에 대해 아동학대 및 사체 유기 혐의로 수사를 벌였으나 공소시효가 만료됐을 가능성에 따라 긴급체포는 이뤄지지 못했다. 20대 여성 B 씨는 2019년 4월 대전에서 출산한 남자아이를 홀로 살던 빌라에 방치해 숨지게 한 뒤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태국 국적의 불법체류자가 지난 2015년 아이를 출산하고도 출생신고는 하지 않은 채 태국으로 동반 출국한 사실도 드러났다.

5. 출생통보제 시행 관건은

출생통보제의 시행 관건으로는 아이 출생 사실을 지자체에 통보할 의무가 있는 의료기관의 신고 누락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일이 꼽힌다. 출생통보제는 출생신고와 관련한 책임을 기본적으로 일선 의료기관이 지도록 하는데, 인력 및 비용 문제 등으로 신고 누락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관련 법안들이 국회에 계류돼 있을 때 의료계에서 “정부의 행정편의적 발상”이라며 반발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또 출생통보제는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동이 발견되면 부모에게 신고를 요구하고, 그 후에도 신고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지자체장 직권으로 가족관계등록부에 올리도록 하고 있다.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출생신고 실무를 담당하는 지자체, 이를 관리·감독하는 행정안전부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어 관련 기관들의 인력·예산 운영 계획이 보다 촘촘해질 필요가 있다.

6. 해외는 어떻게 시행하나

미국과 독일, 영국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상당수가 의료기관에서 행정기관에 출생 내용을 통보케 하는 제도를 시행 중이다. 영국의 경우는 아기가 병원에서 출생하면 병원 내 등록시스템을 통해 의료보장번호(NHS)가 발급되는데, 이 번호를 산부인과 병원 통계와 연동해 통계청에서 관리한다. 독일은 가족관계등록법에 따라 신생아 출생 후 1주일 이내 부모와 의료기관의 출생신고를 법적 의무로 두고 있다.

이미지 크게보기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출생통보제 도입 등을 위한 ‘가족관계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7. 출생통보제 시행 시 우려점은

의료기관에서 출생신고를 의무로 둘 경우 출산을 꺼리는 임신부가 병원을 기피할 수 있고, 병원을 찾지 않는 임신부와 아기 모두의 피해가 더 클 수 있다. 관계 당국은 매년 수백 건의 ‘병원 외 출산’이 이뤄지는 것으로 보고 있는데, 출생통보제 이후 그 수가 더 늘어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익명으로 출산하는 ‘보호출산제’도 거론되고 있다. 보호출산제는 원치 않은 임신 또는 준비되지 않은 채 임신을 한 미혼모 혹은 미성년 임산부 등에게 익명의 출산을 보장하고 정부가 아동의 출생신고를 맡는 제도다. 아이의 알 권리가 제한된다는 우려가 있지만, 독일에서는 익명으로 출산한 아이가 16살이 되면 부모 정보를 열람할 수 있도록 하는 ‘신뢰출산제’를 보완책으로 두고 있다.

8. 보호출산제 무엇, 왜 도입 안 됐나

출생통보제의 부작용을 보완하기 위해 함께 논의된 보호출산제 특별법은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의결된 출생통보제와 달리 상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도 통과하지 못했다. 보호출산제가 아동의 부모를 알 권리를 침해하고 양육 포기를 조장할 수 있다는 야당의 우려 때문이다. 마땅한 지원 체계가 없는 상황에서 보호출산제를 도입하게 될 경우 임산부의 양육 포기를 조장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 해당 법안에 따르면 아동이 성인이 되면 친생부모의 동의하에 산모의 기록을 열람할 수 있어, 아동이 친생부모를 알 권리를 침해당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의료계와 시민단체에서도 보호출산제를 놓고 찬반 논쟁이 있다. 위기에 놓인 임산부의 신원을 보호하면서 유기 아동을 막을 수 있다는 찬성론도 있지만 보호출산제가 오히려 산모의 양육 포기를 조장한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여야는 보호출산제 논의를 소관 상임위인 보건복지위원회에서 계속 이어갈 예정이지만, 육아 포기 우려 등을 놓고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당분간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9. 해외 보호출산제도는

해외에서는 프랑스와 독일에서 보호출산제와 비슷한 ‘익명출산’ 개념의 법안을 시행 중이다. 프랑스의 ‘익명출산제’는 익명출산 이후 친모의 동의가 있을 경우에만 관련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완전한 익명출산제다. 임산부가 공립병원에서 본인의 신원을 밝히지 않고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이 1941년 제정되면서 시작됐다. 독일에서는 베이비박스에 영아를 유기하는 것을 둘러싸고 사회적 논란이 발생해, 2014년 신뢰출산제를 도입했다. 친모가 익명 보호를 원하는 경우 신뢰출산을 할 수 있도록 한다. 독일의 신뢰출산제는 익명출산 이후 혈통증서를 공공기관 등에서 보관해 자녀가 일정 연령에 이르면 이를 열람할 수 있도록 한다. 친모가 정보 공개를 거부하더라도 가정법원의 판결에 의해 공개가 가능하도록 했다.

10. 아동 복지 위한 남은 과제는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출생통보제, 보호출산제 등 제도 도입도 중요하지만 미혼 부모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없애고 보편적 임신, 출산, 양육 지원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제아동인권센터,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등 20개 비영리단체가 모인 보편적출생신고네트워크는 “위기 임신과 출산의 발굴이 아니라 여성의 성과 재생산권 관점에서 보편적인 지원 체계가 구비돼야 한다”며 “아동이 원가정에서 자라날 수 있는 최대한의 정책적 지원이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모든 임산부에게 임신·출산 관련 의료서비스 제공, 상담·지원, 산후조리 등 탄탄한 모성보호 정책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또한 예기치 않은 임신, 준비되지 못한 출산으로 어려움에 처한 위기 임산부가 경제적 걱정 없이 직접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양육 지원 체계를 강화하는 것도 요구되고 있다.

권도경·인지현·정철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