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뒤로가기
검색/메뉴
검색
메뉴
문화지식카페

‘왕권·군권의 상징’ 관리 관청… 세종때 ‘병부 스캔들’로 피바람 불기도

  • 입력 2023-06-30 08:59
  • 수정 2023-06-30 09:00
댓글 0 폰트

photo이미지 크게보기 일러스트 = 김유종 기자



■ 지식카페 - (19) 옥새·병부 관리하는 ‘상서원’

병사 동원때 쓰던 ‘병부’… 군권 쥐고 있던 태종대신 세종에 병부 바치자 분노, 세종 장인 심온까지 제거
왕위계승·對中 외교문서에만 쓰던 옥새 ‘大寶’… 670개 정도 운용됐던 마패, 훔치거나 거래땐 최고 사형에 처해


photo이미지 크게보기

상서원(尙瑞院)은 왕의 도장인 옥새(玉璽)를 비롯한 각종 인장들과 병력을 운용할 때 사용되는 명패인 병부(兵符), 병권 지휘자를 상징하는 절월(節鉞), 순패(巡牌), 마패(馬牌) 등의 표식물을 관리하는 관청이다.

조선의 상서원은 고려시대의 상서사로부터 비롯되었는데, 상서사는 고려 무신정권 이후에는 정방, 지인방, 차자방 등으로 불리다가 조선 개국 때인 1392년에 다시 상서사가 되었다. 그리고 세조 대인 1466년에 상서원으로 개칭되어 1894년 갑오개혁 때까지 유지되었다.

조선은 상서사 시절엔 관직으로는 판사, 부윤, 소윤, 주부, 직장, 녹사 등을 뒀는데, 세조 대에 상서원으로 개칭된 이후 관원을 점차 축소하여 도승지의 지휘 아래 판관 1명, 직장 1명, 부직장 2명만 두었다. 말하자면 도승지 직속 관할 기관으로 변경시키고 관원을 대폭 줄인 것이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상서원에서 관리하는 표식의 종류를 새보·절월·부패(符牌)라고 규정하고 있다.

새보는 국왕의 도장으로 흔히 옥새라고 하는데, 외교문서·교명(敎命)·교서·교지·유서(諭書)·시권(試券) 및 홍패·백패 등에 찍는 것이고, 절월은 생살권(生殺權)을 부여하는 뜻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관찰사 및 병사(兵使)·수사(水使) 등 도백이나 지방의 군 지휘관에게 내려주었다. 그리고 부패는 병부와 패를 의미하는 것인데, 병부는 병력을 부를 때 사용하는 것이고, 패는 순라군이 쓰는 순패와 역마 사용에 쓰는 마패를 통칭한 것이다.

옥새의 종류

임금의 도장인 옥새는 그야말로 왕을 상징하는 도장인데, 지금도 인감도장이라 불리는 도장이 가장 중요한 법적 효력을 갖고 있듯이 조선에서도 옥새가 국가에서는 가장 중요한 도장이었다. 옥새는 넓게는 왕이 업무용으로 쓰는 모든 종류의 도장을 일컫는 말인데, 우리는 흔히 왕위를 계승할 때 물려주는 도장만 옥새라 알고 있다. 하지만 옥새에도 종류가 많다.

옥새 중에서 가장 으뜸인 것은 대보(大寶)라 부른다. 이 대보는 중국에 보내는 외교문서에만 한정해서 썼거나, 왕위를 계승할 때 나라를 물려준다는 징표로만 사용되었다.

그 밖에 임금의 명령을 내리는 교서나 교지에는 시명지보라는 옥새를 썼고, 신하들에게 서책을 줄 때는 동문지보, 물품을 줄 때에는 선사지보, 과거 합격증서인 홍패나 백패에는 과거지보를 썼다. 이 모든 인장을 통틀어 옥새라고 부르기 때문에 모든 옥새가 왕위를 물려줄 때 사용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옥새는 원래 옥으로 제작된 왕의 도장을 일컫는 것이지만 반드시 옥으로 만든 것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었다. 금으로 만든 것은 금보(金寶) 또는 금인(金印)이라 했지만, 대개는 금보도 옥새라고 통칭되었기 때문이다.

군대를 움직이는 데 꼭 필요한 병부

상서원에서 관리하는 것 중에 옥새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병부였다. 병부는 병사를 동원할 때 쓰던 표식인데, 두 쪽으로 쪼개어서 한쪽은 군사를 지휘하는 장수가 갖고, 다른 한쪽은 그 장수의 상관이 가지고 있다가 군사 동원명령을 내릴 때 서로 짝을 맞추어 봄으로써 증거로 삼게 했다.

병부는 군대를 발동시킬 때 이용하는 것이라고 해서 발병부라고도 하는데, 대개 나무나 금, 옥 등으로 만들었으며, 꽃이나 동물 모양이 대부분이었다. 크기와 모양은 지름 7㎝, 두께 1㎝ 정도 되는 둥글납작하고 곱게 다듬은 나무쪽인데, 한 면에 발병이라는 글자를 쓰고, 다른 한 면에는 도명과 관찰사 또는 절도사라는 칭호를 썼다. 그리고 각 지역의 병진(兵陣)에서는 진호를 썼다. 그 한가운데를 쪼개어 오른편 반쪽은 관찰사·절도사·진의 책임자가 보관했으며, 왼편 반쪽은 궐 안에 보관했다가 군대를 동원할 때 임금의 교서와 함께 내려보냈는데 오른편 반쪽과 맞추어보고 확실하면 군대를 동원했다. 군대를 발동할 때는 반드시 병부가 있어야 했지만, 진법연습을 할 때나 사신을 영송할 때는 예외적으로 발병부 없이도 군대를 동원했다.

병부가 부른 참화?

이렇듯 병부는 군대를 동원할 때 쓰는 징표이기 때문에 매우 예민한 군사 기물이었다. 그런데 이 병부 때문에 세종 즉위년인 1418년에 조선 조정엔 한바탕 피바람이 불었다. 당시 태종은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났지만 군권은 그대로 쥐고 있었는데, 병조참판 강상인이 군대를 움직이는 병부를 세종에게 바친 것이다. 이 때문에 태종이 노발대발하여 강상인의 관직을 빼앗고 관노로 삼는 한편, 병조의 관리들을 대거 교체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그런데 이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태종은 세종의 장인이자 영의정이며 소헌왕후의 아버지인 심온을 제거하기 위해 이 사건을 다시 들춰냈다. 당시 심온의 동생 심정이 병조 관료로 있었는데, 그를 강상인과 연루시키고, 다시 심정을 심온과 연루시켜 그들 모두를 반역도당으로 몰았다. 물론 반역의 수괴로 지목된 인물은 심온이었는데, 당시 중국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온 심온은 영문도 모르고 졸지에 반역도당의 주모자가 되어 목숨을 잃어야 했다.

사가들은 이 사건에 대해 태종이 세종의 왕위를 안정시키기 위해 외척 척결 차원에서 벌인 일이라고 호도하지만, 실상은 의심이 많았던 태종이 자신의 의심증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벌인 무자비한 살생극이었다. 말하자면 병부가 부른 참화가 아니라 의심증이 부른 참화였던 셈이다.

전국에 마패가 몇 개?

마패도 말을 발동할 수 있는 징표라고 해서 발마패(發馬牌)라고도 불렀다. 주로 공무로 출장 가는 관원이 역마를 이용할 때 사용하는 패였다. 이때 관원은 상서원에서 마패를 발급받았다.

마패는 고려시대부터 사용하던 것인데, 고려 원종 때 포마법을 실시하면서 제도화되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태종 10년(1410년)에 포마기발법(鋪馬起發法)을 실시함으로써 본격화되었다.

마패의 재료로는 나무, 철, 구리 등이 사용되었는데, 모양은 모두 원형을 띠고 있었다. 초기에는 나무로 만들었는데, 파손이 심해 세종 대부터는 철로 만들다가 성종 이후에는 구리로 만들었다.

마패의 한 면에는 대소 관원의 등급에 따라 마필의 수효를 새기고 다른 한 면에는 자호(字號), 즉 중국의 연호와 연월 및 상서원인(尙瑞院印)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조선 초에는 병조에서 마패를 만들어 승정원에서 발급하다가 ‘경국대전’이 반포된 성종 대 이후부터 상서원에서 발급했다.

그런데 지방에서는 마패를 감사나 병사, 수사 등이 내줬다. 지방에서 역마를 이용할 때마다 상서원으로 올라올 수 없었기 때문에 병사, 수사, 감사 등이 일정 수의 마패를 발급받아 뒀다가 필요시에 이용하도록 했던 것이다.

이렇듯 마패는 중앙과 지방에 모두 배치되었기에 당시 사용하던 마패의 숫자도 만만치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당시 사용하던 마패의 숫자는 몇 개나 되었을까?

영조 대인 1730년의 실록 기록에 따르면 마패는 중앙에 500여 개, 지방에 160여 개가 있었다고 한다. 이렇듯 조선에서는 약 670개 정도의 마패를 운용했다.

마패로 술을 사 먹어?

마패는 숫자가 많다 보니 때론 파손되거나 도둑맞는 경우도 많았을 법하다. 그래서 마패를 파손하거나 훔치는 경우엔 매우 중한 형벌로 다스렸다.

마패를 파손한 자는 장 80에 도 2년, 즉 80대의 매를 맞고 2년 동안 감옥에 갇히는 형벌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마패를 훔치거나 거래하는 경우 최고 사형에 처하기도 했다.

이런 엄한 형벌이 기다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마패를 훔쳐다가 팔아먹는 간 큰 자가 있었다.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마패를 훔친 인물이 있었는데, 바로 중종 대의 상서원 서리 최맹손이었다.

그는 마패를 훔쳐다가 기생집에 가서 술과 음식을 사 먹었다.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여러 차례에 걸쳐 상습적으로 한 짓이었다. 그리고 이 일이 발각되자, 중신들이 모여 그를 극형에 처할 것인지 아닌지 논의했는데, 대부분의 중신들은 마패를 훔쳐다가 말을 사용하는 데 쓰지 않았으니 사형은 과하다고 결론지었다.

최맹손은 이렇듯 유독 술에 관대했던 중신들 덕분에 목숨은 건졌지만, 많은 매질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고 한다.

작가

■ 용어설명 - 경국대전(經國大典)

나라를 경영하는 큰 법전이라는 뜻을 가진 조선시대 기본 법전이다. 조선은 개국 후 전대의 법 규정을 정리해 ‘경제육전’을 반포했지만 규정이 없거나 규정 사이에 모순이 확인되는 경우가 많아 그때마다 새로운 규정을 추가했다. 세조는 이러한 단점을 보완한 경국대전 편찬을 시작했고 성종 재위 시기에 완성됐다.

이 기사를 친구들과 공유해 보세요.

가장 많이 본 뉴스
안내 버튼

최근 12시간내
가장 많이 본 뉴스

문화일보 주요뉴스
이재명 구속영장 기각…정치적 날개 단 이 대표, 충격에 빠진 檢
이재명 구속영장 기각…정치적 날개 단 이 대표, 충격에 빠진 檢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여러 의혹의 정점으로 이 대표를 지목한 검찰의 계획에도 제동이 걸리게 됐다. 그동안 사법 리스크에 시달렸던 이 대표는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고 날개를 달게 됐다.서울중앙지법 유창훈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전날 이 대표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심사) 뒤 27일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유 부장판사는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 필요성 정도와 증거인멸 염려의 정도 등을 종합하면 불구속 수사의 원칙을 배제할 정도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우선 위증교사 혐의를 제외한 ‘백현동 개발사업 특혜 사건’, ‘대북송금 사건’에 대해선 혐의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유 부장판사는 판단했다.유 부장판사는 백현동 사건에 대해 “성남도시개발공사의 사업 참여 배제 부분은 피의자의 지위, 관련 결재 문건, 관련자들의 진술 등을 종합할 때 피의자의 관여가 있었다고 볼 만한 상당한 의심이 들기는 한다”고 밝혔다. 다만, “직접 증거 자체는 부족한 현시점에서 사실관계 내지 법리적 측면에서 반박하고 있는 피의자의 방어권이 배척될 정도에 이른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봤다.대북송금 사건에 대해서는 “핵심 관련자인 이화영의 진술을 비롯한 현재까지 관련 자료에 의할 때 피의자의 인식이나 공모 여부, 관여 정도 등에 관해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보인다”고 결정했다.검찰의 증거인멸 우려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위증교사 및 백현동 개발사업의 경우 현재까지 확보된 인적·물적 자료에 비춰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대북송금 사건과 관련해서는 “이화영의 진술과 관련해 피의자의 주변 인물에 의한 부적절한 개입을 의심할 만한 정황들이 있기는 하다”고 지적했다.그러나 “피의자가 직접적으로 개입했다고 단정할 만한 자료는 부족한 점, 이화영의 기존 수사기관 진술에 임의성이 없다고 보기는 어렵고 진술의 변화는 결국 진술 신빙성 여부의 판단 영역인 점, 별건 재판에 출석하고 있는 피의자의 상황, 피의자가 정당의 현직 대표로서 공적 감시와 비판의 대상인 점 등을 감안할 때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검찰은 이 대표가 성남시장이던 2014년 4월∼2017년 2월 분당구 백현동 개발사업 과정에서 민간업자에게 전례 없는 특혜를 몰아줘 1356억 원의 이익을 독차지하게 하고, 사업에 배제된 성남 도시개발공사에 최소 200억 원의 손해를 끼쳤다고 판단했다. 이 대표가 자신의 성남시장 선거를 물심양면 도와준 ‘선거 브로커’ 김인섭(구속기소) 씨에게 보답하고자 그의 청탁에 따라 각종 인허가권을 행사해준 ‘권력형 지역토착비리 사건’이라는 것이 검찰 시각이다.이 대표는 경기도지사였던 2019∼2020년 이화영(구속기소)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와 공모해 김성태(구속기소) 전 쌍방울그룹 회장에게 자신의 방북 비용 등 총 800만 달러(약 100억 원)를 북한에 대납하도록 했다는 혐의도 받는다. 대권이라는 정치적 꿈을 위해 그룹 사업 확장을 노리던 김 전 회장을 ‘해결사’로 활용했다는 것이 검찰 주장이다.이밖에 2018년 12월 김병량 전 성남시장의 수행비서였던 김진성 씨에게 자신의 ‘검사 사칭 사건’ 관련 공직선거법상 허위 사실 공표 혐의 재판에서 위증해달라고 요구한 혐의도 적용했다.두 차례의 구속영장 청구 끝에 국회를 통과했음에도 법원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됨에 따라 검찰의 이 대표에 대한 수사는 급제동이 걸리게 됐다.특히, 헌정 사상 처음으로 국가 의전 서열 8위인 제1야당 대표에 대해 법원의 영장심사까지 받게 했지만 검찰은 뜻을 이루지 못해 충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9시간 넘는 심문을 마친 뒤 다시 7시간 동안 고심을 거듭한 끝에 유 부장판사는 이 대표 측의 불구속 수사 주장을 받아들였다. 영장이 기각됨에 따라 서울구치소에서 대기하던 이 대표는 회복 치료를 받던 녹색병원으로 돌아갔다.극적으로 구속을 피한 이 대표는 당내 리더십을 회복하고 검찰을 향해 ‘정치 보복을 위해 검찰권을 남용했다’며 대대적인 반격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이 대표는 이날 오전 3시 50분쯤 서울구치소를 나서며 “인권의 최후 보루라는 사실을 명징하게 증명해주신 사법부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역시 정치는 정치인들이 하는 것 같아도 국민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검찰은 수사 정당성에 큰 타격을 입고 수사 계획을 전면 재수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남아있는 관련 수사도 동력을 잃고 한동안 표류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검찰은 일단 영장 기각 사유를 면밀히 분석한 뒤 추석 연휴가 지나면 이 대표에 대한 수사 방향을 다시 세울 것으로 보인다.검찰은 “법원 판단은 앞뒤가 모순됐다”며 반발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이 대표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직후 이같은 입장문을 냈다. 임대환 기
waterpik
기사 댓글

본문 글자 크기를 조절하세요!

※ 아래 글자 크기 예시문을 확인하세요.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본인에 알맞은 글자 크기를 설정하세요.

닫기
좋은 기사는 친구들과 공유하세요!
닫기